이 보다 더한 치욕과 조롱이 어디 있으랴.

‘미디어오늘’에게 양해를 구한다. 제목을 허락도 없이 썼다. 질책을 달게 받겠다. “조선·동아·MBC는 ‘기레기’ 아닌 ‘양아치’”란 기사를 보고 해당 언론사의 기자들은 얼마나 참담할까. 아니 자랑스러울까?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그러나 한 마디 한다. 이 기사를 본 ‘기레기’에게 물었다. 기분이 어떠냐.

“어쩝니까. 처자식 데리고 먹고 살아야 하는데 자존심 같은 건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바로 해당 언론사 ‘기레기’의 고백이다.

▲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청와대는 응답하라, 특별법 제정 촉구 국민대회’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세월호국민대책회의

‘기레기’는 ‘기자 쓰레기’의 줄인 말이다. 이제는 이 말을 모르는 국민이 별로 없을 것이다. (여기에 양아치를 더해)‘양기레기’라고 하나 덧붙이자. 영광스러워 진 것이 아니라 그만큼 더욱 걸레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후배 녀석은 친구들의 모임에서 명함을 내놓지 않는다고 한다. 되도록이면 모임에도 참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친구들의 눈길이 여간 거북하지 않은 것이다. 그들이 속으로 말하는 ‘기레기’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했다. 고위간부니까 거물 ‘기레기’다.

‘기레기’들이 저지른 해악을 일일이 지적하다가는 밤이 새도 모자란다. 그런 기사를 쓰면서 참아내는 기자가 용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쓰지 않으면 안 될 처절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왜냐면 인간의 양심이란 저 깊은 땅속에서 솟아나는 샘물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기자들이 이승만 독재시절 언론자유을 위해 어떻게 싸웠는지 잘 알고 박정희 독재 때도 열심히 투쟁했다. 개처럼 길거리에 끌려 나가 내동댕이질을 당하면서도 기개를 꺽지 않았고 살인이나 다름없는 해직을 당하고도 굴하지 않았다. 그들은 가족을 굶기고 책을 들고 월부장사를 하고 안주도 없이 깡소주를 들이키다 암에 걸려 죽었다. 타살이다. 살해당한 것이다.

‘기레기’들은 독재에 아부아첨을 한 덕에 장관을 하고 국회의원을 했다. 지금도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있는 인간들 가운데 ‘기레기’들은 쌔고 쌨다. 청와대 대변인을 한 ‘기레기’ 출신들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가? 그들은 속이 편한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인생을 살아 왔는지는 유감스럽게도 내가 잘 안다. 빨리 잊어야 하는데 잊어지지가 않는다. 그 중 대표적인 인간들이 앵커 시켜 달라고 꼭두새벽부터 사장 집 대문 앞에서 기다린 ‘길레기’들이다. 기개를 먹고 산다는 기자가 개똥을 먹고 산 것이다.

‘기레기’들을 살펴보면 좋은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그 어려운 언론고시에 합격한 똘똘한 인간들이다. 시험 칠 때 사회정의를 위해 어떤 권력에도 굴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을 했을 것이다. 또한 그들 자신도 그런 각오로 기자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기레기’가 되는 과정은 참혹했다.

견습 딱지를 떼고 비장한 각오를 하고 기사를 써서 올리면 함흥차사다. 물어 볼 수도 없다. 다시 열심히 기사를 써서 올린다. 역시 함흥차사다. 코가 대자나 빠진다. 내가 실력이 없나보다 낙담을 하고 잇는데 선배가 기사를 보자고 한다. 보고 나서 한다는 소리가 ‘너 이렇게 쓰다가는 평생 기사 한 줄도 못 쓴다’ 끼적끼적 몇 줄 고치더니 올려 보란다. 데스크에 올렸더니 통과. 내용은 차마 말 못하겠단다. 그야말로 철저하게 왜곡되고 빨아주는 기사다. 이것이 ‘기레기’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그렇게 ‘기레기'가 됐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여전히 고통스러운 나날을 살아가는 기자도 있다. 그러다가 견디지 못하고 짐을 싼다. 훨씬 못한 언론사로 옮기는 기자들이 있다. 이유는 하나다. “‘기레기’가 싫다. 나도 기자다운 기자가 되자!”

'기레기'들아! 니 새끼들이 세월호에 탔으면 어쩔 뻔 했느냐.

인간사 눈썹 앞에 일도 모른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누가 아느냐. 대통령도 비서실장도 경호실장도 앞일은 모른다. 돈이면 다 해결이 될 것 같은 재벌도 예고 없이 처 들어오는 불행에는 속수무책이다. 자식을 잃고 처연해 하는 재벌의 모습과 권력자의 모습을 보며 인간의 능력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무상한지 잘 알았을 것이다.

새벽에 배달되는 한겨레신문 오른쪽에는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아픈 얘기가 실린다. 죽은 자식들에게 쓰는 편지다. 그 편지를 읽을 때 마다 눈물이 쏟아진다. 그래서 나의 새벽은 눈물로 시작되고 그 애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알아야 하는 절치부심 부모 마음이 된다.

유민이 아버지가 46일 동안 단식을 하는 동안 ‘기레기’들이 만든 조중동을 비롯해서 종편과 MBC를 보면 하늘도 참으로 무심하구나 하는 원망을 한다. 도대체 그 놈들이 사람인가. 지 새끼가 죽었어도 저런 기사를 쓸 것인가. 자식이 앞 서 죽으면 '慘慽(참척)'이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비극이다.

새끼를 잃은 원숭이 배를 가르니 내장이 다 없어졌더란다. 미물도 그럴진데 하물며 인간이야 더 말 해 무엇하랴. 그런데 조선 동아 종편들은 뭐라고 천벌 받을 소리를 지껄였는가. 제 놈들이 썼으니까 알 것이다. 자식 앞세우고 살기 힘든 부모의 가슴에 다시 칼질을 해대는 ‘기레기’와 언론이 천벌을 받지 않으니 가톨릭 신자인 것도 잊은 채 하늘을 원망한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민주언론시민연합,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등 8개 언론시민사회단체들이 29일 동아일보 앞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단식을 하는 김영오를 왜곡하고 폄훼하고 세월호 민심을 왜곡하는 기레기 언론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보수언론의 치욕스러운 만행은 단순히 부끄러운 언론인이라는 비난을 넘어서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이라며 “언론이라면, 인간이라면, 아버지라면 도저히 이럴 수 없다. 반성하고 제대로 보도하라”고 덧붙였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옳은 말이 통하지 한국 언론과 ‘기레기’들이기에 나라가 이 꼴이고 사회정의는 사라졌다.

기자가 썩은 나라치고 되는 나라가 없다. 반드시 망한다. 왜냐면 기자가 감시견인데 도둑이 들어도 짖지를 않으니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당연하지 않은가. '기레기'들이 나라를 망친다.


‘기레기’들도 느꼈을 것이다. 취재현장에서 조중동을 비롯해 KBS MBC 등 걸레언론의 ‘기레기’들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잘 알 것이다. 카메라에 회사 로고를 달지 못하고 어느 기자냐고 물으면 대답을 못한다. 옛날 ‘기레기’들은 신분을 물으면 ‘한겨레’기자라고 했다.

요즘 세월호 참사 규탄 현장에서 ‘기레기’를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슴 웅크리고 쫄아있는 애들은 ‘기레기’고 가슴 펴고 고개 들고 다니는 기자들은 한겨레 경향을 비롯한 JTBC 기자다. 얼마나 부러울 것인가. 카메라가 부셔지고 쌍욕을 들으며 취재 현장에서 쫓겨나는 '기레기'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더러워서 못해 먹겠다’는 비명이다. 왜 안 그럴 것인가.

광화문 광장에서 분노한 시민들의 함성을 들으며 문득 눈을 둘러보면 동아일보 조선일보가 보인다. 4·19 때 분노한 국민들에 의해 불타버린 서울신문과는 지척이다.

세월호의 비극이 왜 일어났는지 왜 이유를 밝혀야 하는지 그래도 먹물 잔뜩 먹은 ’기레기‘들이 왜 모르랴. 지금 “조선·동아·MBC는 ‘기레기’ 아닌 ‘양아치’”라고 매도되고 얼굴에 가래침을 받아야 하는 자들도 가슴속으로는 통곡을 할 것이다. ‘기레기’들은 광화문 광장과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비닐을 덮고 노숙을 하는 유가족들이 가엾지도 않으냐. 눈물도 없느냐.

정권이 바뀌고 언론이 제 자리를 잡으면 ‘기레기’들은 카멜레온처럼 재빨리 변신을 할 것이다. 바퀴벌레 같은 끈질긴 생명력이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국민의 말이 있다.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애비가 되라. 지사가 되지는 못할지언정 자식새끼들한테는 떳떳하게 애비소리를 듣고 살아야 할 것 아니냐.”

며칠 지나면 추석명절이다. 명절이니 ‘기레기’들도 좋은 일 한 번 해라. 사람의 목숨 언제 죽을지 모른다. 죽은 다음에라도 욕은 먹지 말아야지. 아무개 ‘기레기’ 자식이라는 소리는 듣지 않도록 해야 될 것 아니냐. 광장에 나가 세월호 진상규명 서명이라도 해라. ‘양기레기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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