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 남기는 괴로운 풀 같은 이야기

고추는 고초(苦草) 남초 왜초 등으로 불리는데 전래된 시기는 대략 임진왜란 전후쯤으로 추정한다.

중국의 문헌에도 16세기 이전의 중국문헌에도 나와있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이수광이 남긴 지봉유설(1613년)에 왜겨자로 처음 소개된 기록이 보이기 때문이다.

고추의 열대성 작물로 원산지는 중 남미쪽이라고 하는데 아마 콜롬버스에 의해 서양으로 유입되고 그것이 다시 일본이나 중국을 거쳐 들어왔지 않았나 싶다.

사전에 의하면 고추에는 캡사이신이라는 매운 성분이 들어있는데 이는 기름의 산패를 막아주면서 젖산균의 증식을 도와준다고 한다.

▲ 차를 빼낸 자리와 보일러 실에 고추를 널었으나 오랜 비에 고추 색은 밝지 못하다. 마을에 고추 건조기를 가진 집이 없어 부탁할 수도 없다. 그저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빛깔이 좋지 않아도 우리 가족이 먹을 양은 나오면 충분할 것이다. ⓒ홍광석

지금은 고추 없는 김장을 생각할 수 없지만 정작 그런 고추가 우리국민의 밥상에 대중화된 시기는 18세기 말쯤으로 보는 견해가 통설인 것 같다.

고추는 국내에도 수 백종이 재배되고 있다는데 지역마다 고추의 특성이 조금씩 달라 요즘은 단순한 양념의 선을 넘어 기호식품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처럼 우리가 김장에 사용하거나 양념으로 쓰는 붉은 고추는 일단 매운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매운 고추의 특성을 시집살이에 비유하기도 하고 괴로운 풀이라는 뜻을 담은 苦草라고 이름을 남겼을 것이다.

고추는 매운 맛만큼 기르기도 쉽지 않은 작물이다. 새해가 되면 바로 보온자리를 만들어 씨앗을 넣고 싹을 틔운다. 싹이 자라면 하나하나 상토를 담은 포트에 옮기거나 보온 잘 되는 하우스에 옮겨 심어 관리한다.
그렇게 키운 모종은 4월 중순경 본 밭으로 옮기는데 옮겨 심은 후 바람에 쓰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세우고, 지주 사이에 줄을 묶어 고추 묘목을 고정하는 작업을 한다.

단 몇 줄의 글로 끝나는 일이기에 별 것 아닐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하루, 아니 몇 시간만 그 일을 시키면 고추 가격이 비싸다는 엄살이 쏙 들어가고 말 것이다.

고추가 열리기 시작하면 풋고추를 먹을 수 있고 고추 잎을 따서 데쳐 나물로 먹을 수 있어 좋지만, 고추 무게를 고려하여 고추나무를 두 번 세 번 묶어주는 일도 빼놓을 수 없음을 알아야한다. 고추가 열리기 시작할 무렵부터 달려드는 노린재의 습격은 또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많은 농민들이 약을 뿌려야하나 말아야하는 심한 갈등을 겪는 시기이기도 하다.

패트병을 들고 다니며 손으로 일일이 잡아보지만 솔직히 ‘언 발에 오줌싸기’란 말이 그 격이다. 우리도 금년에 딱 한 번 그 시기에 약을 쳤다. 친환경 살충제라고 해도 찝찝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고추가 자라기 전에 구멍이 뚫리는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탄저병 약은 치지 않았다. 이미 모든 고추에 내성이 생겨 한 두 번 뿌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하필 고추가 자라서 익을 무렵에 병이 오는데 그 병을 막자고 독한 약을 뿌리게 되면 그 약성분을 결국 우리가 먹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아마 “살충제건 제초제건 안 뿌리는 작물이 얼마나 있느냐. 그렇게 해서라도 키워야만 수확량도 늘고 빛깔 좋고 태깔이 반듯한 농산물만 선호하는 도시 소비자들에게 팔 수 있지 않느냐”는 농민들의 탄식을 도시민들은 모를 것이다.

하긴 “제초제와 살충제도 조금씩만 먹으면 우리 몸속에 들어가 구충제 역할을 한다.”고 무식한 이론을 용감하게 주장하는 도시민들도 있다고 들었다. 그 농민에 그 소비자라는 말밖에 더 할 수 없을 것이다.

바람도 통하지 않은 여름날, 땡볕에서 고추를 수확하는 작업이 얼마나 힘든지는 농활 다녀온 대학생들이 남긴 기록에서 보았던 적이 있다.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이 농민들의 고충을 조금이라도 대변해주는 것 같아 웃음이 나왔기에 잊히지 않는다.

수확한 고추를 말리는 작업도 신경이 쓰이고 잔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건조기로 말리면 간단히 해결할 문제이다. 하지만 우리처럼 소규모 농사에 고추 건조기를 장만하는 것도 여러 측면에서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태양초와 건조기에 말린 고추가 영양적인 면에서 어떻게 다르며 맛은 또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내는 고추는 햇볕에 말려야만 태양초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맛도 좋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렇다보니 여러 날 뜨거운 볕을 찾아 널고, 이따금 갈퀴로 뒤집어 주고, 해지면 거두어들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다 소나기라도 내리는 날이면 허겁지겁 거두어 들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고추농사는 속된 말로 ‘도로00타불’이 되고 만다.

우리는 해마다 200주 쯤 심어 여름 철 풋고추 좀 먹고 마른 고추 20근 정도를 목표로 한다. 금년에도 하우스에 120주 노지에 80주 심었는데 하우스 안에 심은 고추가 문제였다. 연작의 피해가 나타난 것이다.

성장이 더디고 싱싱한 푸른색이 아니어서 걱정했는데 한참 자라던 고추가 시들시들 마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거름기를 보충하려고 깻묵 삭인 물을 주고 친환경 복합비료까지 주변에 뿌렸지만 첫물 고추도 먹을 수 없는 것들이 20여주가 넘었다. 더구나 노린재까지 겁 없이 달려들었다. 마른 고추대를 치우고 벌레를 털어 잡았지만 몸으로 터진 강물막기나 다름 없는 짓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의 선택인 것을.

농사기술이나 종자와 기후 토양 등에 차이가 나겠지만, 대체로 익은 고추 1관정도 따서 말리면 마른 고추 1근 정도 얻을 수 있다고 들었다. 실제로 첫물에 익은 고추 5kg을 수확하여 말렸더니 900g을 얻었다. 시골 농민들의 경험에 의한 통계가 크게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었다.

현재 우리는 목표치의 절반인 10근 남짓 거두었다. 그리고 지금 10근 정도 될 수 있는 분량을 말리는 중이다. 그런데 날씨가 문제다. 지난 주 금요일부터 비가 내렸는데 금주 금요일까지 또 내릴 것이라니 고추 말리기는 비상사태나 다름없다.

차고를 비우고 고추를 널었으나 축축한 날씨에 고추에 습기가 많아 상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래저래 고추농사는 힘들기만 한데 금년도 고추가격도 그리 좋을 것 같지는 않다. 이미 시장에 나온 고추 가격을 보니 완전 태양초가 1근에 13,000원 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고추 생산량과 수요량을 잡은 통계는 찾지 못했다. 하긴 우리나라 농업 통계는 사실상 엉터리라는 것이 통설이기에 생산량과 수요량을 집계해놓은 자료가 있다고 해도 믿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공급량이 수요량에 절대적으로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중국에 다녀오는 관광객들이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들고 오는 농산물이 참깨라는 사실을 모르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 고춧가루를 들고 오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정부가 고춧가루 수입을 막으면 악덕 수입업자들은 고추 양념을 만들어 들어와 국내에서 건조시켜 다시 고춧가루로 판매하다가 들켰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 고추 공급량이 얼마나 부족한지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하여튼 실제 시골 장에서도 수입 고추가 버젓이 싼 가격에 팔리고 있으니! 인터넷에서 “우리나라 고추 자급률이 40%정도”라며 “농산물 수입만 막으면 농촌에서도 살만하다”는 주장의 글을 읽었다. 절대적으로 공감하는 이야기다.

날씨가 수상하다. 실제 농사에는 가뭄도 문제지만 비가 많이 오는 날씨는 더 큰 문제다. 옛날부터 7년 가뭄은 견뎌도 3달 장마는 사람이 못 산다는 말이 있다. 1주일만 비가 내려도 농작물은 녹아버리거나 병에 걸리고 만다. 빨래는 마르지 않고 집안에는 곰팡이가 기승을 부린다. 끓인 음식도 쉬 상하고 사람들은 각종 질병에 노출되기 쉽다고 한다.

봄철의 가뭄, 마른 장마에 이어 햇볕이 필요한 시기에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날씨가 일주일째 지속되고 있다. 이런 날씨는 고추 말리기에도 치명적이다.

작년에 비해 오를 것이라는 일부 전망도 있지만, 오른다고 한들 생산량이 감소하면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별로 없을 것이다. 수확량이 줄면 정부는 부랴부랴 수입할 것이다. 이래저래 죽어나는 것이 농민이요 우리 농촌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아프다.

고추농사! 참 어려운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수고에 비해 제값 받는 농산물이 얼마나 있으랴만 마른 고추 가격은 농민들이 들인 공력과 투자한 자본에 비해 가격은 참 싸기만 하다.

노인들만 남은 농촌. 그렇게 노동력이 부족한 현실에서 고추의 생산량을 해마다 감소할 수밖에 없다. 중국도 고추 생산량이 한 없이 늘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가 뜨겁고 매운 맛을 볼 날이 멀리 않다는 예상이 가능하다.

농약 방부제에 찌든 고추, 거기에 알 수 없는 인체에 우해한 재료를 섞은 고춧가루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지금도 그렇게 먹고 살지만 괜찮지 않느냐?”고 말하는 안전불감증에 걸린 환자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 미래가 걱정이다.

이 비가 그치면 고추 역병은 더 번지리라고 한다. 고추농사의 위기다. 날마다 고추 없는 밥상을 생각할 수 없는 우리 국민의 건강이 걱정이다. 좀 더 건강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한다. 전원으로 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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