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범모 책임 큐레이터 사퇴 성명 [전문]

<달콤한 이슬> 전시 파행에 책임을 지고 책임큐레이터직을 사퇴합니다.

<광주비엔날레 20주년기념 특별프로젝트 : 달콤한 이슬, 1980 그 후>에 출품한 홍성담 작가의 걸개그림 <세월 오월>의 전시 파행 사태에 대해 이 전시의 총괄 책임을 맡은 큐레이터로서 입장을 밝힙니다.

1.
광주비엔날레 20주년 기념 특별전은 <세월 오월> 작품과 관련하여 결국 전시 파행 사태를 맞았습니다. 이에 전시 책임큐레이터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참여작가, 특별프로젝트 관련 인사, 광주시민, 그리고 국내외 미술을 사랑하는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2.
홍성담 작가는 이번 걸개그림의 기획과 진행 과정 전체를 시민과 공유하기 위하여 ‘시민참여 공개모집’을 진행했고, 망월동에서 퍼포먼스를 벌였고, ‘작업실 집들이 축하 겸 첫놀이’, ‘작업실 가운데놀이’, ‘판갈이 퍼포먼스 살풀이’, ‘진도 팽목항 진씻김 배 띄우기 퍼포먼스’ 등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또한 ‘100인의 릴레이 아트’, ‘5.18 아트버스’ 등의 연계프로그램으로 시민과 함께하는 걸개그림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3.
홍성담 작가와 광주시각매체연구회 구성원들이 시민과 함께 진행한 이번 일은 광주정신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하여 최대한 열린 구조와 과정 속에서 추진했습니다. 시민참여와 협업 과정을 거쳐 탄생한 <세월 오월>은 80년 5월 광주의 시민군과 주먹밥아주머니가 세월호를 들어올려 시민 학생들을 구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시대의 상처를 치유하고 공동체정신으로 광주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그림의 일부 형상에 대한 정치적 해석으로 인해, 수정논의를 거쳤습니다. 책임큐레이터로서 정치적 해석으로 인한 논란의 최소화와 이 프로젝트의 취지를 살리려는 생각으로 부분적 수정을 제안했고, 작가도 이에 일부 동의하여 수정작업을 거쳤습니다. 무엇보다 작품 수정작업은 특별전의 파행을 막고, 작품 전시를 위한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4.
<세월 오월>의 최종 완성작은 8월 8일 오후 전시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이 작품을 살펴본 협력큐레이터와 저는 전시여부에 대하여 치열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4명의 큐레이터들 입장은, 전시 가능 2표, 전시 불가 1표, 그리고 의사표시 유보 1표였습니다. 다수결에 의해 전시여부를 결정하자는 제안도 있었습니다만, 큐레이터끼리의 합의된 결론이 없다는 이유로 전시 불가로 몰아가는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이에 저는 책임큐레이터로서 ‘전시 가능’을 주장하고, 관객의 객관적 평가를 받자고 제안했습니다. 개막행사 시간이 다가오도록 전시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평행선을 이루게 되자, 회의석상에 비엔날레재단 간부들이 합석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저는 광주비엔날레의 명예를 환기시키고, 예술탄압이라는 오명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광주정신의 예술적 구현과 특별전의 원만한 개막입니다.

이에 따라 저는 작품 완성을 위한 작가의 다양한 시도와 수정 과정을 소개했습니다. 제출된 최종 완성작은 문제가 되는 부분의 특정인이 없음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때문에 전시하지 않을 명분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저의 의견은 수용되지 않았습니다. 전시여부를 결정하는 회의 자리에서 저는 전시 총괄 책임자로서의 역할에 한계가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말로만 ‘책임’큐레이터이지 무엇을 ‘책임’지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에 저는 불행한 사태를 맞이하여, 또 전시기획을 관철하지 못한 한계 때문에, 사퇴 표명하고 회의장을 나왔습니다. 따라서 <세월 오월>의 ‘전시 유보’라는 결정은 책임큐레이터의 불참 속에서 강행된 결정입니다.

5.
<세월 오월> 사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한 사례로 기록될 수 있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일과 광주정신은 별개의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예술적 표현의 자유는 그 어떠한 문제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이며 그것을 지키는 것이 광주정신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6.
이번 <세월 오월> 사태를 맞이하여 책임 큐레이터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점,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작품의 전시유보 결정 이후 상황 변화가 없어 저의 사퇴 의사표명은 지금도 유효함을 확인합니다.

전시 파행에 따른 도의적 책임을 간과할 수 없고, 또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했던 광주비엔날레의 전통과 명예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입장 표명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이번 <세월 오월> 사태 특별전의 특징과 내용이 상대적으로 묻힐까봐 안타깝습니다.

이번 특별전은 노신의 목판화 운동, 케테 콜비치의 작품, 나눔의 집 위안부할머니들의 그림 등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세월 오월> 사태 때문에 훌륭한 출품작들이 상대적으로 조명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아무쪼록 이번 사태 이후 불행한 일이 이어지기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4. 8. 10

광주비엔날레 20주년기념 특별프로젝트 책임큐레이터 윤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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