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비우면 잃을 것도

대한민국 언론에 나오는 시사평론, 정치평론가들이 참 많다. 자격시험 치르는 것도 아니고 돈 주고 사는 것도 아니고 자기 마음대로 붙이는 명칭인데 왜 시비냐고 할지 모르나 느닷없이 천둥에 검둥개 뛰어들듯이 정치평론가랍시고 나타나 된소리 안 된소리 지껄이니 진짜 평론가들이 속이 상할 것이다. 국민들도 같다.

오랫동안 정치평론가로 활동하던 후배에게 물어 봤더니 대답이 기막히다. ‘앵벌이’라는 것이다. 정치평론 한답시고 권력 잔등에 달라붙어 열심히 긁어주던 평론가는 얼마 후 벼슬 한 자리 했다. 앵커 한 명도 원 풀고 한 풀었다. 이번에도 큰 감투 한 개 얻어 쓴 언론사 사장이 있다. 그러나 대신 잃은 것은 무엇일까. 잃을 것도 없다. 원래 가진 게 없었으니까. 애인도 없는데 무슨 실연이냐? 틀린가.

▲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本來無一物何處惹塵埃(본래무일물하처야진애). 본래 아무것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가 앉을 것인가. 달마의 제자인 흥인대사의 말씀이다. 천박한 내 지식으로 해석을 한다면 비렁뱅이가 잃을 것이 뭐가 있느냐. 바탕이 없는데 무슨 그림을 그리느냐는 말과 같다.

선거는 끝났다. 생기는 것은 없어도 뒷말은 많은 게 선거다. 그야말로 모두가 선거전문가고 평론가다. 왜 할 말이 없겠는가. 선거는 바로 국민들의 행복과 직결되는 정치행위다. 누가 당선되고 낙선되느냐는 지대한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고 나름대로 한 마디씩 평가를 하게 되는 것이다.

맞고 틀리고는 차치하고 저마다 예측을 한다. 이번에는 여당이 승리할 것이다. 아니 야당이 승리할 것이다. 맞은 사람은 그것 봐라 하고 쾌재를 부를 것이고 틀림 사람들은 유권자의 판단이 틀렸다고 할 것이다. 모두가 자기 본위다. 여기에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이 필요한 것이다. 그 기준은 상식과 원칙이다. 상식을 벗어나면 헛소리다.

안철수가 잃은 것

새누리와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양쪽에서 안도의 한숨과 실망의 탄식이 함께 쏟아진다. 새누리야 두 말 할 것도 없이 안도의 한숨이다. 경기와 인천은 물론이고 부산까지 떨어진다는 위기의식은 급기야 당 대표감이라는 김무성, 서청원은 물론이고 대통령의 눈물까지 또 등장했다.

이번에는 눈물이 흐르는 얼굴이 길가에 등장한 것이다. 대통령의 품격이나 체통은 상관이 없었다. 발등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너무 거세였기 때문이다. 부산을 간신이 건졌다. 거기다 인천과 경기까지다. 눈물이 성공한 것이다.

새정치는 어떤가. 분노가 타오르는가 하면 한 쪽에서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왜 분노하며 왜 안도하는가. 박근혜 정권을 심판해야 된다는 국민감정에도 불구하고 꼴이 말이 아니다. 이유는 무엇인가. 절절함이 보이지 않았다. 간절한 호소가 없었다. 당의 대표라는 안철수, 김한길은 오로지 광주의 출마한 윤장현에게만 목을 매고 있었다.

사람들이 말한다. 안철수, 김한길이 윤장현에게 쏟은 정성의 20%만 경기 인천에 쏟았다면 양 쪽 모두 당선했을 것이라고 한다. 근거 있는 말이다. 왜냐면 당의 대표인 안철수는 윤장현에게 자신의 정치생명 전부를 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대의이고 명분인지 분별을 못하는 행동이다. 심판을 다짐했던 국민에게 좌절과 모멸감만 안겨줬다.

안철수는 펄펄 뛴다. 무슨 소리냐. 내가 광주에는 몇 번 가고 경기 인천에는 몇 번 갔는지 아느냐. 숫자까지 발표했다. 왜 이리 유치한가. 애들 키재기 하는가. 이것이 바로 안철수의 현주소다.

‘세월호 책임론’과 박근혜 정권 중간평가 까지 포함된 선거였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분노는 더 컸다. 안철수 공동대표가 광주시장 선거에만 집중한 탓이라는 책임론이 제기된다. 땀 흘린 만큼 얻는 것이다. 충청을 보라. 사실 아닌가. 안철수는 입 닫고 있었어야 한다.

혹자는 안철수가 광주에서 윤장현이 당선됨으로서 정치적으로 살아났다고 한다. 윤장현 하나 살리고 경기 인천은 죽었는데 안철수의 당대표 정치생명만은 살아남았다는 평가에 어떤 생각을 할까. 과연 그럴까.

고승덕은 흔히 말하는 3관왕이다. 머리 좋은 수재다. 고승덕의 얘기는 더 할 것 없다. 나름대로 가슴이 아프니까. 다만 그가 고시 3관왕의 오만으로 대의와 명분. 상식을 잃었다는 사실만은 머리 좋은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자식도 잃었다.

안철수는 지지율 5%의 박원순을 서울시장으로 당선시킨 힘이 자신이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다. 사실일지 모른다. 그 후 북콘서트를 통한 전국 순회 토론을 통해 얻은 명성으로 대통령 후보로 출마를 했고 문재인과 대등한 지지율을 기록했다고 믿는 것도 자유고 일정부분 사실이다.

▲ 김한길(왼쪽).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김한길이 망쳤다는 민주당과 통합함으로서 누가 정치적인 이득을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안철수는 제1야당의 공동대표라는 정치입문 이래 최대의 공식적인 큰 직함을 얻었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이 때 안철수는 처신을 확실히 바르게 정립됐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국민의 기대와는 다르게 기존의 낡은 정치의 틀에서 한 치도 비켜가지 않았다.

5대5라고 했던가. 나눠 먹기다. 당내 직책도 나누었고 공천도 나눴고 모두가 반씩 나누는데 유감스럽게도 안철수에게는 절반을 감당할 인물이 없었다. 밭은 마련이 됐는데 제대로 된 씨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씨에게 양보라도 해야 하는데 안 했다. 못 된 기존의 정치는 고대로 따라 배운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이럴 때 원칙을 따르는 게 살아 남는 것이라는 알았어야 했다. 안철수는 윤장현을 얻었지만 많은 것을 잃었다.

안철수의 새출발

인생길 가시밭길이라고 했다. 더구나 정치의 길은 험난하기 그지없다. 어찌 한 번만 넘어지겠는가. 넘어지고 일어나고 넘어지고 또 일어나고, 그야말로 칠전팔기다. 안철수도 이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충고를 한다면 안철수는 자신과의 싸움을 더 치열하게 해야 할 것이다.

안철수가 처음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받은 뜨거운 국민들의 성원은 어디에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안철수는 다를 것이다. 기존의 정치인들과는 다를 것이라는 바로 그것이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게 없었다. 이번 6.4 선거에서는 기존의 정치인들 뺨치는 구태를 보여주었다.

날이 갈수록 평가가 좋아지는 인물과 나빠지는 인물의 두 유형이 있다. 조희연 서울교육감 당선자의 경우 출마선언 이후 평가가 점점 긍정적으로 변했다. 오늘의 안철수는 어떤가. 새삼스럽게 언급하기도 난감하다. 처음 정치에 입문했을 때를 돌아보면 자신도 감회가 깊을 것이다.

국민의 마음은 떠나가고 안철수도 이를 인정해야 한다. 이제 당내에서 치열한 책임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광주에 몇 번 갔고 경기 인천에 몇 번 갔다는 숫자나 보여주는 유치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입에 넣어준 밥도 삼키지 못한 새청치의 무능이다. 솔직하게 사과하면 된다. 많은 국민들이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안다.

안철수도 소중한 자산이다. 기대를 모았던 정치인이기에 쉽게 망가지는 것이 안타깝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냉정하게 반성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정치도 배우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이번에 마신 독배를 치유할 해독제를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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