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전문]

KBS 언론노동자의 총파업투쟁을 지지한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와 KBS노조의 총파업투쟁을 지지한다. KBS 노동자의 총파업투쟁은 권력의 방송장악이라는 케케묵은 먼지를 떨어내는 일이다. 이것은 진실보도를 외면해온 데 대해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작은 몸부림이다.

세월호를 버린 박근혜 정부의 일차 충격에 KBS 언론노동자들이 가한 걷잡을 수 없었던 이차 후폭풍, 이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의 몸짓이다. KBS 언론노동자의 총파업투쟁이 길환영 사장 퇴출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나아가 방송을 정권의 품에서 국민의 품으로 돌려놓는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는다.

길환영은 이병순과 김인규와 이름만 달랐다. 길환영 사장은 세월호 참사 앞에 괴이하고 추잡스런 몰골을 드러내놓고 말았다. 진실탐사 대신 진실은폐, 방송독립 대신 방송통제 임무 완수를 위해 만들어진 로봇이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이번에 길환영 퇴출은 줄 세워진 로봇 하나를 처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의의는 자못 심대하다. 엠비정권 등장 이후 극한으로 치달은 낙하산 방송장악 행진, 언론노동자와 시민단체가 방송장악에 맞서 총파업 투쟁과 수많은 제도개선 투쟁을 벌였지만 옴짝달싹 하지 않았다.

그렇게 손 쓸 수 없이 강고해보이던 로봇이 세월호 유족들의 침묵의 분노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KBS 언론노동자의 총파업투쟁은 세월호 유족과 국민의 추상같은 명령을 받고서 뒤늦게나마 자성하고 쇄신하겠다는 최소한의 의지 피력, 실천 행동인 것이다.

문제는 길환영 다음에도 이름만 다른 똑같은 로봇이 줄지어 서 있다는 점이다. 방통위, 방심위, 공영방송 관리감독기구의 구성과 운영에 관한 골격을 다시 세우지 않는 한 이 로봇 행진은 끝나지 않는다. 평소에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이들도 새로운 임기를 앞두게 되면 앞 다투어 줄서기 하는 풍경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 동안 사장후보 자격기준 강화, 특별 다수제, 국장직선제, 소환제 도입, 사장추천위원회 등 사장선출 제도에 대해서는 여러 방안이 제안되고 다루어졌다. 그러나 18대국회, 19대국회는 제스처만 취하고 방치해놓았다. 여당은 방송을 계속 주무르기 위해 회피했고, 야당은 수적 열세를 들어 기권했다. 제도 개선은 불가피하지만, 이를 수행할 정치권은 스스로 무력한 상황임을 고백할 뿐이다.

해법은 단순하다. 단순한 만큼 어렵고 힘들다. 언론노동자와 시민사회가 현실을 직시하고 대안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것이다. 언론노동자는 길환영 사장 퇴출에 머무르지 않고 독립성, 자율성, 공정성 등 그간 뒤틀려 관성화된 규범들까지 부정하는 과감한 시도에 나서야 한다.

이에 시민사회는 언론노동자의 투쟁을 지지하며 궁극적으로 제도 개선을 가능케 할 힘을 모아내는 데 앞장서야 한다. 지금처럼 독립성, 자율성이 메아리 없는 제도 개선 구호로, 공정성이 기계적이고 양적인 것으로 다루어지는 이상, 참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는 저널리즘 회복은 기대하기 어렵다.

길환영 사장 퇴출 직후, KBS 언론노동자는 있던 자리로 다시 돌아가는 익숙한 모습 대신 스스로 관성과 관행을 혁파하는 저널리즘 실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역시 단순하며, 그만큼 어렵고 힘들다. 박근혜 정권은 폭력적인 공권력에 기대어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시민권을 앗아가는 배제의 통치를 자행하고 있다.

언론노동자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해서는 바로 이 곳, 가장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현장, 매일매일 위험과 공포로 가득한 세월호 같은 가장 낮은 곳을 찾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만이, 실추된 시민의 지지를 회복하는 길이요, 궁극적으로 언론노동자로서의 자긍심을 얻을 수 있는 길이다. 이번 길환영 사장의 퇴출은 그러한 노력의 시작일 뿐이다.

2014년 6월 3일

광주전남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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