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찾으러 엄마도 갈께

엄마! 엄마!

세상을 하직하면서 우리 새끼들이 마지막으로 부른 것은 누구였을까. 하느님이였을까. 대한민국이었을까. 대통령이었을까.

난 안다. 엄마! 엄마! 우리 애들이 마지막 숨이 지면서 목매게 부른 것은 ‘엄마’하는 한 마디라고. 애들이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오직 ‘엄마’라는 말 이외에는. 우리 새끼들은 자신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엄마’를 불렀을 것이다. “엄마. 살려 주세요”

▲ ⓒ민중의소리 갈무리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더니 지금 엄마들이 자식을 가슴에 묻으며 울지도 못한다. 엄마는 안다. 수백억의 살점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아픔이 엄마의 고통이다. 무엇으로도 표현할 길이 없다. 나이를 먹어 죽을 날이 가까워질수록 왜 이렇게 어머니가 그리워지는 것일까. 죄송스럽게도 아버지는 아니고 어머니는 늘 가슴속에 그리움이다.

6.25 때 피난 가서 먹을 게 없어 ‘아카시아’순을 따서 된장에 묻혀 먹을 때, 그 마저도 어머니는 나를 먹이려고 드시지 않았다. 병이 들어 고열에 헛소리를 하며 잠간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면 어머니의 눈이 내 얼굴 위에 있었다.

유치장에 갇혀 있는 나를 면회 오셨던 어머니의 입술은 새까맣게 탄 채 갈라져 있었다. 돌아가시기 전 치매증세로 날 알아보지 못하시던 어머니. 그냥 어머니가 그립다. 새벽 2시. 글을 쓰면서 어머니가 그리워 눈물을 흘린다.

‘내 새끼 못 찾으면 나두 여기 바다에 빠져 죽어요. 내 새끼 불쌍해서 어떻게 살아요.’
‘죽어 귀신이 돼서라도 내 새끼 찾을거에요’

울면서 몸부림치는 어머니의 통곡을 들어야 하는 국민들은 모두가 엄마다. 자식 낳아 보지 않고 길러보지 않은 여성이 어떻게 통곡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있으랴. 70을 넘긴 아내가 내 눈치를 보며 눈물을 흘리면 함께 운다. 내 자식은 다 길러 놨으니 걱정이 없는가. 손주새끼는 자식이 아닌가.

‘엄마. 이민 가요. 무서워서 이 나라에 못 살겠어요’ 어느 여학생이 했다는 말을 들으며 할 말을 잃는다. 국민을 보호해 주지 못하는 나라가 왜 존재 하는가. 세금 걷어다가 월급 받아먹고 부정 저지르고 남의 귀한 자식들 물에 빠져 죽게 하는 이런 나라에 왜 살아야 하고 왜 세금을 내는가.

등 돌린 국민

전쟁터에서 중대장, 대대장 잘못 만나면 다 죽는다. 월남전에서 중대장 하던 친구 말이 자신이 앞 장 서지 않으면 사병들이 절대로 싸우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 너만 살고 우린 죽으라는 말이냐 다. 애들은 물에 빠져 죽는데 저만 살겠다고 내복 바람에 구명보트 타는 선장과 선원들. 저것들을 믿고 배를 탔다니 기가 막힌다.

6.25 때 국민들 두고 새벽에 도망친 이승만이나 다를 것이 무엇인가. 그러면서 이승만은 서울시민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세월호 선장이 이승만한테 배웠는가.

시청 앞 광장에 노란종이로 접은 종이배 수 백 개가 풀밭에 떠 있다. 아 아 저 배를 타고 우리 새끼들 영혼이라도 돌아 와 소리를 쳐라. ‘엄마, 나 여기 왔어. 엄마 보고 싶었어.’ 도대체 이런 놈의 나라가 어디 있단 말인가.

수백 미터가 넘게 늘어선 조문객들 손에 들린 꽃 한 송이. 꽃은 활짝 피었지만 그 꽃을 받을 우리들 새끼는 피지도 못한 꽃이다. 꽃 한 송이 영전에 바치고 하염없이 눈물짓는 수백 수천의 엄마들. 저 엄마들의 까맣게 탄 가슴을 어떻게 풀어 줄 것인가.

이미 대통령이 아니라고 한다. 통치권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이 등을 돌려버린 대통령이 자리에 앉아 있어서 뭘 하겠다는 것인가. 흔히 인간에게 망각이라는 재주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는 잊을 수가 없다.

집 안에서 전철에서 길가에서 매일처럼 보는 우리의 이쁜 새끼들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어머니의 힘은 위대하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엄마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눈물을 흘리는 것뿐이다.

대통령에게 하야를 하라고 한다. 하야를 하면 엄마가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인가.

어차피 당한 일인데 원망하면 뭐하느냐고 할 것이냐. 원망도 하지 말고 울기나 하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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