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의 변화, 내겐 어려운 일인가?

3월 개학을 하고 3주째다. 새로 만난 교실, 새로 만난 아이들과 호흡을 만드느라 절치부심이다. 매년 의욕을 가져보지만 나의 의지보다 더 먼저 가로막는게 있다. 아이들이 갖고 있는 기존의 관성력이다. 이 습성은 거대한 힘으로 작용하다 못해 교사의 의욕을 꺽는다. 기존방식은 칠판 앞에서 교사 1인의 원맨쇼를 요구하는 것이다.

수업을 바꾼다는 말은 수업의 주변에 밀어놓은 아이들을 중심으로 끌고 오자는 말이다. 흥미를 잃고 자는 아이를 깨워 수업의 중심에서 움직임을 만들자는 것이다. 2014년 들어 새삼 던지는 화두는 아니다.

"아이들의 표정이 너무 어둡다" 아이들은 수업에서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학교가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 영문 모르게 끌려와 앉아 있는 표정들이다. 그런 아이들을 앉혀놓고 수업을 풀어간다는 것은 쇼무대에나 흥미있는 애들을 교실에 앉혀놓고 민방위교육장에 끌어다놓은 어른들에게 딴청을 피우는 꼴이다.

변하는 세상을 앞서가는 교사에게 '수업'은 평생 열등감이다. 만족도 높은 수업을 완성하는게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학급당 수업인원이 축소되지 않은 이상, 교사 1인 중심의 수업방식은 가장 효율적이다. 그래도 이것을 바꾸고 싶다는 고백이다.

교사가 칠판 앞에서 던지는 지식을 40명의 아이들이 똑같이 또박또박 받아먹는 낡은 방식이다. 이는 입시성과주의에 가장 효과적인 코드이지만 오히려 많은 아이들이 흥미를 갖지 못할 뿐만 아니라 혜택받는 사람보다도 희생자들이 많다는 점이다.

새롭게 시도하고 싶은 방식은 아이들이 수업을 주도하는 방식이다. 그럴 때 수업을 이끄는 교사는 아이들이 중심이 되도록 보조한다. 그렇게 해온지가 언젠데 하고 말하겠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지적 탐구를 끌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도전이다.

개념이 모호하고 원리가 소화되지 않고 더 나아가 자기 공부의 필요가 약한 아이들이 시간이 만만치 않게 소비되는 일을 스스로 조사하고 준비해온다는 것은 쉽지 않다. 수업을 바꾼다는 말은 장기적인 작전이 필요한 시도다.

솔직히 입시를 앞둔 교실에서 장기적인 수업변화 프로젝트는 발붙일 곳이 없다. 미래 시대를 위해 강조하는 창의성은 한낱 구호에 갇힐 수밖에 없다. 입시는 모든 교육적 시도를 녹이는 불랙홀이다. 입시일정에 쫓기면서 무시되는 경우들이 다반사다.

사실 고등학교는 추론적 사고능력이 생명이다. 지식의 암기로, 내용을 이해하는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기본 자료를 재구성해 새롭게 추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 스스로 수업을 준비하고 스스로 학습내용을 정리해 가는 방식은 추론적 사고력의 핵심이다.

찾아봐야 할 것이 너무 많아 기가 꺽이기도 하고 찾는 방법도 난감할 수밖에 없을 뿐더러 시간마저 만만찮게 소요될 수 있다. 그런 사정이더라도 바꿔야 한다.

물론 몇 가지 하드웨어적인 요소가 진짜 장애가 부담이다. 교실 안의 학급당 정원이 너무 많다. 아이들에게 짊어진 다른 교과부담이 너무 많다. 사전류의 공구적 환경이 태부족이다. 교육청의 업무경감은 눈에 띄게 줄지 않는다.

읽어오기, 개념찾아보기, 핵심내용을 생각해보기를 바탕으로 수업을 구성하는 것이 새 방식이지만 낡은 방식의 위협은 여전하다. 교사는 과거 요점을 칠판에 써주고 설명하는 방식보다는 몇 갑절 준비하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 토요일, 일요일까지 매달려야 한다. 귀찮은 주문이 더 많다.

나보다 아이들이 먼저 저항했다. 기존의 습성이 훨씬 편하다는 의견이다. 시킨대로 정해진 범위 안에서 움직이면 성가실 일이 없다는 것이다. 과연 이 시도는 성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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