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치'는 백신 실험이 아니다

프라스틱 병이라면 높은데서 몇 번 떨어져도 상관이 없고 내 던져도 끄떡없다. 그러나 유리병은 다르다. 한 번 깨지면 방법이 없다. 버리고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만들어 지는 신당(새정치연합)이 그렇다. 신당은 연습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 아니다. 실패하면 깨진 병처럼 아무 쓸모가 없다. 무척 망설이다가 이 글을 쓴다. 병을 깨트리지 마라. 신당은 안철수 위원장의 ‘새 정치’ 실험장이 아니다. 신당은 실패하면 다시 해 보는 백신실험이 아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 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중 략-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미당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옮기는 의미를 이해해 주기 바란다. 세상에 어떤 일이든 완성에 이르는 과정은 탈도 많고 말도 많다. 그냥 쉽게 되는 일이 없다. 하물며 국가 장래를 걱정하는 정치인들의 정당창당이야 말을 해 무엇 하랴. 그래서 국민들은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의 창당을 지켜보면서 걱정도 하고 격려도 하고 비판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꼭 어린아이 물가에 내 보낸 심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훤한 신작로도 맨발로 걷기란 힘이 들다. 자갈밭은 더 힘들다. 서로 이질적인 요소가 너무나 많은 안철수의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이 통합을 한다고 했을 때 국민들은 환영을 하면서도 우려가 깊었다. 그것은 김한길 대표나 안철수 위원장이 서로 만만한 단수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경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머리 돌리기에 ‘달인’이다. 국정원 특검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직을 건다던 호언장담과는 달리 초라한 ‘거짓말쟁이’가 되었을 때 과연 어떻게 변신을 해서 위기를 탈출할 것인가 관심이 집중됐다.

안철수 위원장의 경우도 사정이 딱하기는 마찬가지. 새정치의 대명사로 욱일충천 하던 지지가 한 풀 꺾기고 신당창당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주위 사람들마저 하나 둘 떨어져 나가자 처신이 막막해졌다. 뭔가 탈출구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지경에 이르렀다.

두 사람의 탈출구는 ‘신당창당’이였다. 탈출이 성공하는 줄 알았다. 인기도 솟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주춤주춤 미끄러져 내려간다. 이유는 뭔가. 진정성의 부족이다. 신뢰가 안 보이기 때문이다. 서로 믿지도 못하면서 무슨 백년가약이냐.

김한길의 탈출구는 처음부터 가시밭길이었다. 안철수만 바라보는 눈빛에는 생기가 없었다. 뭐든지 니 맘대로 하라는 김한길을 안철수가 제대로 대접할 리가 없다. 이것저것 요구가 많다. 뭐든지 오케이다. 안철수에게는 호박이 넝쿨 채 굴러들어 온 것이다. 126석의 의원을 거느리는 거대 야당의 위원장이다. 비록 공동위원장이라 해도 안철수에게 금년은 운수대통이다.

‘새 정치’가 무엇인지 설명 좀 해라

그런대로 굴러가는 거 같았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어느 누구도 헛발질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 버릇 개주랴. 안철수가 던진 한 방에 신당이 벌컥 뒤집혔다.

“6·15 남북공동선언, 10·4 남북정상선언, 4·19 혁명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같은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이념 논쟁을 피하는 게 좋겠다.”

역사를 뒤집어 엎어버리는 난폭투구였다. 이게 무슨 철부지 같은 소린가.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남북정상선언은 통일의 염원을 담은 민주당의 기본정신이다. 4·19 혁명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민주당만이 아닌 온 국민의 자부심이다.

독재를 몰아 낸 국민의 피로 새긴 역사다. 이를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이념 논쟁이라고 깎아내린 안철수의 역사인식은 어디서 굴러먹던 개뼉다귄가. 정체성을 버리는 것이 새 정치란 말인가. 화들짝 놀란 안철수는 어마뜨거라 소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러나 불을 끄기에는 너무나 불길이 거세다. 유치한 책상물림이다.

"저의 역사 인식은 확고합니다."

안철수의 다급한 고백이다. 안철수는 역사 인식이 있기나 한 것인가. 참여정부에서 주요직책을 맡았던 사람이 지금 안철수의 핵심이라고 한다. 그가 바로 이번 파동의 진원지라고 하지만 그것도 정도 문제다. 안철수는 허수아비란 말인가.

도대체 안철수의 ‘새정치’라는 것이 무엇이냐. 근본적인 물음이 다시 제기되는 이유가 바로 실체가 없는 모호성이다. 그는 백신을 발명해서 젊은이들의 우상이 된 이후 정치에 발을 디뎠다. 그러나 정치가는 백신바이러스 연구하다가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는 실험실의 과학자가 아니다. 정치가 망가지면 국민이 피해자다. 그의 모호성, 무모성이 문제가 되는 건 바로 거기에 있다.

만취한 운전자의 난폭운전을 막을 방법은 무엇인가. 기초의원 무공천이라는 당시 박근혜 대선 후보의 공약사항을 헌신짝처럼 폐기한 새누리당의 폭거에 얌전하게 깔려 죽겠다는 고집은 용기인가 만용인가. 즉시 기호 2번 찾아와야 부활하는 독재를 막는다. 손가락 빨면서 ‘새정치’타령만 할 것인가.

빈대를 박멸한다는 명분으로 집을 홀랑 태운 다음에는 찬바람 눈보라 어디서 막으며 살겠는가. 신당의 무공천은 야당의 전멸을 의미한다. 만취난폭 운전사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김한길의 철학 없는 요령주의와 안철수의 무개념 철부지 정치가 결합되어 국민들은 다시 한 번 절망의 늪으로 떨어진다.

신당의 정채성은 사라졌다.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남북정상선언의 정신도 사라지고 4.19 묘역과 광주 망월동 5.18 묘역에서는 통곡소리가 들린다. 안철수의 ‘새정치’ 실험실로 전락한 한국 야당은 이제 장송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간판을 내려야 한다.

‘안철수의 새정치’ 실험을 위하여
꽃들은 저렇게 피를 흘렸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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