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다

설마다.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 어떻게 키운 놈들인데 하늘이 버릴 리야 없겠지. 깜박깜박 졸고 있는 닭을 보면서 설마 무슨 일이 있으랴. 약 먹였으니 괜찮겠지. 손 모아 빌고 있는데 하루 밤 자고 나니 닭장이 조용하다. 모두 쓰러졌다. 하루 밤 사이에 몰살을 했다. 옛날에 닭을 한참 기를 때 시골에서 일어난 일이다. 처음 병든 닭은 빨리 처리했으면 괜찮았을지도 모르는데. 버스는 떠났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면 뭘 하나.

흔히 결단이라고 한다. 결단을 해야 할 때는 칼같이 해야 한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흔한 속담도 있고 실제로 설마 하다가 낭패를 보는 일을 주위에서 너무 많이 본다.

‘포청천’을 비롯해서 ‘삼국지’ ‘손자병법’ 등 중국 영화를 TV에서 즐겨본다. ‘손자병법’중 왕의 애첩을 단칼에 목을 베는 장면이 나온다. 군율을 어겼다는 이유다. 개판이던 궁녀 훈련이 시퍼렇게 살아난다. 엄정한 법의 집행이 멍청해진 궁녀들의 정신상태를 싹 바꿔놓은 것이다.

▲ 지난해 7월 28일 국정원 규탄 범국민촛불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국정원 해체하라'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미디어오늘 갈무리

정치인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읍참마속이란 말의 의미를 알 것이다. 지도자가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 될 경구다. 많이 잃는 것과 적게 잃는 것, 모두 잃는 것과 모두 얻는 것, 지도자가 판단해야 할 결단이다. 김영삼 정권 때 인사비밀이 새면 가차없이 취소됐다. 인사비밀이 지켜졌다. 낙하산 인사가 사라지진 않았어도 아무개가 어느 자리로 간다는 것은 사라졌다.

나이를 많이 먹으니 손주 녀석 늙어죽는 꼴을 본다는 옛말이 있다. 세상사 못 볼꼴이 어디 하나 둘이랴. 그러나 정말 못 볼 꼬라지를 요즘에 보면서 산다. 정치를 하는 자들이 하는 짓거리다. 젊은 애들과 자식들이 배울까 겁이 난다. 정치가 이렇게 타락한 것은 예가 없다.

정치를 한다는 인간들이 하는 소리는 대통령 국회의원 할 것 없이 모두가 같다고 국민이 생각한다면 아니라고 할 사람이 있는가. 국회정보위원장을 한다는 서상기나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듣는다면 고개를 못 들 것이다. 서상기는 왜 국회의원직을 그만 둔다고 했으며 김한길은 왜 직을 건다고 했는가. 그들이 국민에게 하는 약속은 바로 지키지 않는다는 ‘부도수표’나 다름이 없다. 국민이 너무나 가엾다. 이제 선거가 코앞에 닥쳤으니 얼마나 ‘거짓의 향연’을 만끽해야 할 것인가. 배가 터질 것이다.

대통령의 공약은 이제 지키는 것 보다 지키지 않은 것을 꼽아보는 것이 더 빠르게 됐다. 그래서 얻는 것이 무엇인가.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게 나온다고 희희낙락 할 것인가. 유유자적 할 것인가.

국민이 보이지 않는가

국정원의 간첩조작 사건은 이제 신물이 나도록 들었다. 국민들 중에는 또 그 얘기냐 하고 진저리를 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새누리 정권과 국정원이 노리는 것이 바로 국민들의 진저린가. 국민들이 듣기 싫다고 촛불이라도 키고 나서는 때를 기다리는가.

남재준 국정원장의 관한 얘기도 같다. 그를 ‘참 군인’이라고 했다. ‘참 군인’은 ‘참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 그가 취임한 이후 그에게 걸었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생각이 틀렸는지 알았더니 그렇지도 않다. 새누리 안에서도 남재준 사퇴하라는 말이 봇물처럼 터진다. 심지어 김용태는 '살이 부들부들 떨린다'고 했다. 대통령 망치려고 작심을 했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명예를 생명처럼 여긴다는 그의 좌우명을 새삼 소개할 필요는 없다. 그는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목숨처럼 여겼을지는 모르되 국민 생각하기는 ‘개그콘서트’보다가 터지는 코웃음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국론이 어떻게 분열되는지 보이지 않는가. 국정원장의 참모 측근 중에 국민의 소리를 듣는 ‘귀’는 없단 말인가. 가치판단의 기준은 자기라고 하지만 그 보다 앞서는 것이 상식이다. 상식이 무엇인가. 보통사람들의 보편적 판단기준이다. 국민은 보통사람들이다. 노태우는 대통령이면서 늘 보통사람임을 자랑했다. 남재준은 보통사람이 될 수 없는가.

하늘처럼 떠받드는 미국도 한국의 정보기관 때문에 골치라고 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상식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국정원이 간첩을 조작했다는 것이 상식일 수 없다. 이것이 국민에게 어떤 형식으로 이해가 되겠는가. 이것을 이해하는 국민이라면 더욱 절망적이다.

이런 글을 쓰면서도 살 수 있는 세상이니 좋은 세상에서 사는 줄 알라는 친구가 있다. 충고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의 트라우마다. 글 한 줄 써 놓고 다시 읽어보고 고쳐야 했던 독재시절, 그 악몽같던 기억을 아직도 완전히 털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죽도록 싫다.

국정원의 행태를 보면 소름이 돋는다. 간첩날조 과정을 보면서 나는 괜찮을까 걱정이다. 저런 식으로 조작을 한다면 대통령인들 무사하랴. ‘간첩이라고 하면 간첩이다’라는 말이 그냥 넘겨지지 않는다.

어느 국민이 나라 잘되는 걸 바라지 않으랴. 설사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당선이 됐으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정치를 잘 해서 국민이 ‘참 잘 뽑았다’ 하고 박수를 쳐야 한다. 국민들은 그러고 싶다. 그러나 보라. 아침신문을 펴 들면 오늘은 어느 국민이 애절한 사연을 머리맡에 써놓고 세상을 등졌을까.

어느 모녀가 70만원을 봉투에 넣어 두고, 어느 엄마가 장애인 자식을 안고 강으로 뛰어 들었을까. 어느 노무부가 자식의 부담이 무거워 나무에 목을 맸을까. 숨이 넘어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런 모든 비정상은 언제나 정상으로 돌아 올 것인가. 국민은 대통령의 입을 바라보고 있다. 한 말씀만 하소서.

많이 늦었다. 벌써 결단을 했어야 했다.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서 정상회담록을 공개했다고 사고를 쳤을 때 잘라야 했다. 명백한 위법행위를 무사히 넘겼다고 안도했을 것이다. 윗분이 믿어준다. 자신감도 생겼을 것이다.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가 국회증언에서 보이던 안하무인의 태도를 국민은 생생히 목격했다. 국회가 군대의 참모회의인가.

간첩날조 경위가 하나 둘 씩 들어 났다. 몸서리가 쳐진다. 그 때 잘라야 했다. 죽어라 아니라고 우겼다. 믿는 국민이 없다. 검찰조사를 믿는 국민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국정원이나 검찰이나 같다는 인식이다. 이 지경인 상태에서 어떻게 정상적인 정치와 이루어 질 것인가. 국민이 안 믿으면 아무 것도 못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장을 해임해야 한다. 국민이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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