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이번 학기에는 애들에게 '하지말라'는 이야기보다 '왜 그러는지' 더 들어 줄 것을 다짐하자.

자기 인생의 목적을 스스로 정리하지 못할 때일 수록 '들어주기'가 더 중요하다. 영문 모르고 끌려가는 아이들에게 첫번째로 필요한 덕목이다. '학생이니까 해야 한다'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이렇게 하는게 좋지 않겠니.'라고 말하는 존중이 앞서야 한다.

아이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한 대목이 여기에 있다. '나'를 둘러싼 현존재의 실존적 가치에 눈뜰 수 있도록 하려면 '왜 학생인지' '왜'라는 이유를 친절하게 덧붙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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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학교에서 "외부음식반입금지"라면 선생님들도 외부음식을 들여와 먹지 말아야 한다. 애들과는 다른 '선생이니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이들과 교육적으로 소통할 수 없다. 우리 끼리 먹는건데, 냄새풍기면서 '애들은 먹지 말라'는 순간 요즘 아이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애들이나 학부모들이 교사들의 전문성을 신성시 하는 시대는 아니지 않는가. 신성시할 수도 없는 시대다. '헷갈리면 스마트폰 검색'으로 검증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교사들의 역할이 그다지 빛나지도 않을 뿐더러 인간적인 신뢰도 두텁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또 삶의 방식 역시 많이 달라졌다. 상탁하부정(上濁下不浄)의 시대처럼 어른이 모범을 보여야 아이들이 따르는 수직적인 시대가 아니다. 아래물이 맑으면 윗물도 맑아질 수 있는 시대요, 부모조차도 친구같은 수평적인 시대다.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더 당당하고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교육현장에서 교사가 지식을 독점하던 시대가 아니다. 자유가 갇혀서 그렇지 아이들이 더 앞서갈 때가 많다. 지적 호기심을 '선행학습금지법'으로 금지시키는 정치인들의 발상처럼 '왜'를 들어주지 않는 것 역시 시대를 거스르는 일이다.

교실에서 늘 경이로운 것은 아이들이 교사들보다 조합능력이 더 신선할 때가 많다. 어릴 때 던져오던 '저게 뭐야?' 그 '왜'를 다시 깨워주어야 한다. 아이들의 사고는 말랑말랑하다. '왜'를 조금만 더 정리해주면 신명날 때가 많다는 것을 믿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왜'를 감금하는 순간, 아이들이 겪어야 할 성장통의 핵심을 비껴가는 것일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어른들은 교육의 핵심을 놓치고 변죽만 울리는 태도는 아닌가? 학교는 아니 우리 사회는 왜 '왜'를 붙잡지 못할까? 그것이 이번 학기의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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