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에게 보복하려던 박정희, '종북사제단'에 선전포고한 박근혜
전·현직 '부녀 대통령' 2대에 얽힌 정의구현사제단과의 악연

정의구현사제단 탄생 배경, 유신정권의 지학순 주교 사건

박정희 대통령: 추기경님, 종교란 마음의 정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 종교가 정치, 경제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고유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고, 정교분리(政敎分離) 원칙에도 맞지 않습니다.

김수환 추기경: 사회가 윤리,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부정부패로 썩어가는데도 교회가 수수방관한다면 그것은 직무유기입니다… 정교분리 원칙은 마땅히 존중해야 합니다. 교회가 정부 인사나 정책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치, 경제 등 사회 모든 문제에서 인간 기본권이 유린당하거나 정의에 어긋나는 일이 있으면 '아니오'라고 말해야 합니다. –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유신정권과 지학순 주교 사건 중 (2004. 2월 1일 평화신문)

박정희 대통령: 추기경님, 종교란 마음의 정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 종교가 정치, 경제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고유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고, 정교분리(政敎分離) 원칙에도 맞지 않습니다.

▲ 천주교 정의구현 전주교구 사제단이 지난해 11월22일 오후 전북 군산 수송동성당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며 시국미사를 올리고 있다.ⓒ민중의소리

1974년 4월 유신정권은 민청학련 사건을 발표하면서 '학생들의 집단행동을 금지하는 긴급조치 4호'를 발령했다. 긴급조치 위반자들을 대량 구속했는데 이 가운데 가톨릭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포함돼 있었다. 교회와 국가권력이 정면충돌하는 불상사가 일어난 것이다.

1974년 7월 10일 청와대에서 김수환 추기경과 박정희 대통령이 만나 시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왜 사제가 정치적 발언을 하는지' 따져 물었고, 김 추기경은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에 충실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나름 회담이 만족스러웠던지 박정희는 선물(?)로 지학순 주교를 풀어주었다. 그러나 풀려 나온 지학순 주교는 '죽음을 각오하고 독재권력과 싸우겠다는 결의'를 내보였다. 상황은 심각해져 갔다. 결국 내·외신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지 주교는 선언한다.

"본인은 양심과 하느님의 정의가 허용치 않음으로 비상군법회의 소환에 불응한다. 유신헌법은 민주 헌정을 파괴하고 국민 의도와 관계없이 폭력과 공갈과 국민투표라는 사기극에 의해 조작된 것이기 때문에 무효이고 진리에 반대된다…."

크게 화를 낸 박정희는 지 주교를 구속했고, 결국 양심을 고백한 죄로 지 주교는 유신정권으로부터 징역 15년을 선고받게 된다. 교계는 거세게 들끓었다. 가톨릭 각 교구는 시국기도회를 열어 유신정권 탄압을 규탄했다. 피가 끓는 젊은 사제들은 타 교구 시국기도회까지 참석하는 열정을 보였다. 지학순 주교는 구속된 지 이듬해인 1975년 2월 석방되었다.

다음은 그와 관련해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후일담이다.

"지 주교님은 옥고를 치르고 이듬해(1975년) 2월 15일 석방되셨다. 그 사건을 겪는 동안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교회분열이었다. 젊은 신부들은 지 주교님 사건에 대한 조직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보고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결성했다. 9월 26일 시국선언을 하고 명동에서 가두시위를 벌였다. 사제들이 주도한 최초의 가두시위였다. 그러나 생각을 달리하는 연장 신부들은 반대편에서 '구국사제단'을 만들어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교회가 이념논쟁에 휘말리는 형국이었다."

-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유신정권과 지학순 주교 사건 중 (2004. 2월 8일 평화신문)

김 추기경 설명대로 1974년 유신정권과 극명하게 맞서 구속되었던 지학순 주교 사건으로 젊은 사제들을 중심으로 '정의구현사제단'이 결성되었다. 사제단의 정신적 지주는 지학순 주교였다. 그런 행동에 반대하는 반대세력이 가톨릭 내부에도 있었다. 일부 나이 든 사제들은 '구국사제단'을 결성해 내부적으로 대립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로 인해 탄생한 '사제단', 끝내려는 딸

박창신 신부의 '연평도 논란'을 키운 사람은 단연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25일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고 전에 없이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저와 정부는 국민들의 신뢰를 저하시키고 분열을 야기하는 이런 일들은 용납하거나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묵과하지 않을 것'이란 표현을 하기 위해 25일 만에 수석비서관 회의에 참석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민주사회에서 다양한 의견과 갈등을 피할 수는 없지만, 대화를 통해 이견을 조정하고 합리적 결론을 내고 그것에 승복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도 오랜만에 참석하면서 '소통' 운운하는 모습이 낯설다. 이날의 발언을 두고 <경향신문>은 '박 대통령 취임 후 최고 강경 발언, 반대세력에 선전포고'로 해석했다.

박창신 사제의 발언을 놓고 이어지는 정부, 여당의 초강경 발언을 보노라면 가장 강력한 권력을 행사한다는 취임 첫해를 '댓통령' 논란과 검찰 수사로 보내고 있는 박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대반격 의도까지 엿보인다. 대놓고 쳐 놓은 그물망에 '신(神)의 사람'이 들어와 앉아 있는 상황인 것이다.

자신의 발언 논란이 확산되자 문제의 발언을 한 사제는 '노인네가 한 마디해서 잡아 가면 잡혀가는 것이고'라고 말했다. 26일 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박 신부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권력의 모든 힘이 집중된 상황에서 박 신부에 대한 수사는 결국 한 개인이 아닌 단체, 정의구현사제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관련해 언론과 보수단체들의 움직임도 매섭다. 방송3사 및 조중동(종편)이 파상공세에 나서고 있다. <조선일보>는 26일 2개 지면을 할애해 '정의구현사제단 파문' 특집을 게재했다. '정의구현사제단' 주제로 3일 연속 사설을 통해 비판하고 있다. 25일자 사설로는 '종북구현사제단'이라고 이들을 칭하는 등 의도성을 가지고 색깔몰이를 하고 있다.

사제단의 시국미사와는 다른 목소리도 가톨릭 내부에서 들린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는 지난 24일 미사 강론 중에 "사제의 직접 정치참여는 금지, 평신도들의 정치참여는 의무"라고 의견을 밝혔다. 보수언론과 권력은 앞 단락을 취했고, 진보언론과 반대세력에서는 뒤 부분을 취했다. 지난 1974년 때 김수환 추기경이 걱정했던 것처럼 '교회의 분열' 현상도 엿보인다. 약 40년 전과 동일한 상황에서 가톨릭이 몸살을 앓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의 존재유무만 달라졌을 뿐, 모든 것이 동일하다.

귀에 거슬리는 말만 하면, 같은 행동하는 아버지와 딸

KBS TV로 전국에 생방송 되는 그날 자정미사 강론에서 말문을 열었다.

▲ 천주교 정의구현 전주교구 사제단과 시국미사 참가자들이 시국미사와 거리행진에 이어 군산 롯데마트 앞 인도에서 거리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민중의소리

"… 정부와 여당에 묻겠습니다. 비상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유익한 일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한테 막강한 권력이 가 있는데, 이런 법을 또 만들면 오히려 국민과의 일치를 깨고, 그렇게 되면 국가안보에 위협을 주고, 평화에 해를 줄 것입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마침 미사중계를 시청하고 있던 박 대통령은 그 충격적 발언에 버럭 화를 내고 방송국에 방송중지 명령을 내렸다. 박 대통령은 날이 밝는 대로 장관들을 소집해서 나에 대한 처리문제를 논의하려 했다는 얘기까지 내 귀에 들려 왔다. 그런데 그날 아침 165명이 사망하는 대연각호텔 화재참사가 발생했다. 그로 인해 청와대에서 내 문제가 흐지부지 묻혔다.

–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내가 만난 박정희 대통령' 中 (2003년 12월 7일 평화신문)

추기경 전언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을 불쾌하게 만든 김수환 추기경에게 보복하기 위해 국무회의를 소집하려 했다. 대연각 호텔 화재참사가 아니었더라면 지학순 주교 사건 이전에 김수환 추기경 사건이 발생했을 것이다. '비상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옳은지'를 물었을 뿐인데 박 대통령은 추기경을 혼내려고 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지금. 사제단이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는 미사를 열었다. 박창신 신부는 26분 강론 중 '연평도 포격사건' 얘기를 지나가듯 짧게 했다. 대통령, 총리, 여당대표 등 모든 권력자들이 앞다퉈 '묵과할 수 없는 일, 처벌 운운'하고 있다. 연평도는 '이명박 때 사건'이다. 지금 이 정권은 전 정권에 대한 비판을 가지고 '사상의 대반격'을 모색하는 중이다.

1년 전 대선 기간으로 돌아가 보면 지금과는 굉장히 특이한 장면과 조우하게 된다. 대선 D-6일 전인 2012년 12월 13일(목) 늦은 오후 해가 지는 한 야산을 박근혜 후보는 오르고 있었다. 그곳은 천주교의 대표적 성지인 '베론성지'. 박 후보는 '지학순 주교' 성지를 참배했다. 당시 새누리당은 박 후보 일정 브리핑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지학순 주교 묘소 앞에 선 박근혜 후보는 흰색 장갑을 끼고 헌화와 분향을 했고, 3분여간 묵념을 했다'

지 주교의 묘소는 평지에 있지 않고 눈 쌓인 언덕 위에 있었다. 박 후보는 지팡이를 짚고 200여 미터를 올라 3분간 묵념했다. 박 후보는 산에서 내려와서 "국민들에게 고마운 마음 때문에 정치를 떠나기 전 행복을 선사해드리고 싶었다"고 참배의 의미를 설명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지학순 주교 사건 때문에 창설되었다. 사제단은 유신독재를 강력히 비판한 그를 지지하면서 활동했다. 즉, 지학순 주교는 사제단의 앞단에 서서 박정희 군사독재와 대립했다. 박근혜 후보는 1년 전 힘겹게 사제단의 우두머리 묘소를 찾아가 3분 동안이나 묵념했다. 1년이 지난 지금 박 대통령은 사제단을 매섭게 몰아세우며 '공안의 법정'에 가두려 하고 있다.

이쯤 되면 오히려 박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정의구현사제단을 '종북사제단'으로 매도하는 집권세력의 수장으로서 1년 전에는 왜 그 사제단의 정신적 지주를 찾아가 헌화하고 분향하고 묵념했는가. 지금도 지학순 주교 묘소를 참배할 마음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유체이탈 화법으로 피해가지 마라.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답할 차례다.


** 도서출판 <일과놀이>는 모든 사람이 서로 아끼고 섬기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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