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이 잡히지 않는다. 물체가 다가온 것인지 내가 물체로 다가선 것인지 도통 알 수 없다.
지겨운 숙취, 세상사 감 놔라 배 놔라하다 정신까지 놓을 심산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찾으면 길이 나온다.

‘못생겨도 맛만 좋은 물메기탕으로 쓰린 속과 어지럼증을 한꺼번에 날려 보내자.’

남해안 대표 청정지역이자 수산물의 보고인 여수의 겨울철 해장국 중 별미로 꼽히는  ‘물메기탕’.

생선이지만 생선으로 취급받지 못한 서러운 신세였던 물메기가 최근 들어 독특한 캐릭터로 인기 절정이다. 수백, 수십년의 무명생활을 딛고 드디어 고지에 올라섰다.

어지간하면 봐줬을 어부들도 내팽개쳤음을 젊은 세대들은 모른다. 

주인 마나님은 물컹 잡히는 물메기 한 마리를 둔중한 연장으로 턱, 턱 내려친다.
생김새처럼 별 반항 없이 적당한 생수가 들어있는 냄비로 잠수한 물메기. 이어 대파와 미나리, 콩나물, 무를 함께 썰어 넣는다.

간은 소금이다. 새끼손가락을 뺀 나머지를 동원해 간단히 집고 차악 뿌린다. 손이 곧 가늠자다. 숟가락으로 국물 한 번 맛보면 간맞춤은 끝이다.

10여분 센불로 끓인 뒤 손님상에서 중간불로 정리하면 된다. 주인장은 알집이나 애를 더 넣어 구미를 당겨준다.

국물이 뽀얗게 일어난다. 조개국물 모양새다. 바글바글 끓는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하고 숟가락은 냄비로 향한다.

한 숟갈, 두 숟갈 뜰 때마다 하아~하는 감탄사가 저도 모르게 난다. 주위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속풀이에 정신을 놓았다. 짜지 않다. 시원할 따름이다.

흰 살점은 부드럽게 넘어간다. 입안서 슬슬 녹았다. 푸짐한 양에 다시 한 번 놀란다. 인근 식탁에서도 반응은 매 한 가지. “어이, 좋네 좋아.” 연신 감탄사다.

물메기탕 마니아들은 껍질을 선호한다. 부드러우면서도 한편 끈끈한 질김이 있어 묘한 맛보기를 선사한다.
두 어 차례의 트림에 이은 식사는 속을 든든하게 한다.

   
 
여수이기에 가능한 다양한 해초류가 밥상을 가득 채운다. 파래지와 꼴뚜기(꼬룩)무침. 톳과 콩나물 버무림, 낙지와 무김치, 달래무침들이 맛을 거든다.

값은 저렴하다. 두 명이 먹든 서너 명이 먹든 간에 혹, 지갑이 얇든 간에 문제가 없다.
속풀이에 이만한 선수 있을까 싶다. 물메기탕은 여수의 먹거리 명물중 하나가 분명하다.

주택가나 사무실 인근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물메기탕을 취급한다. 대표식당 중 한 곳은 여수 문수동 흥화아파트 앞 ‘아리랑식당’(061-654-4629, 010-6623-8228).


▲물메기=쏨뱅이목 물고기다. 최대 28㎝까지 자라며 산란은 12월부터 3월까지다. 남해연안으로 몰려와 알을 낳는다. 알은 해조류나 그물 등에 덩어리 형태로 붙인다. 지금이 제철이다. 전문 통발을 이용해 대량으로 잡기도 하지만 다른 물고기를 잡기 위해 설시한 그물에 같이 잡혀 올라온다. 건조시켜 찜으로 먹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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