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총장 시대'가 끝나기가 무섭게 검찰이 정쟁의 최선봉에 섰습니다.
지난 2일 검찰은 느닷없이 '정상회담 회의록 실종'을 발표하며, 국정원의 선거 개입을 둘러싼 '국정원 정국'과 박근혜 대통령의 노인 기초연금 축소 발표에 따른 '공약 후퇴 정국'을 일거에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다시 정치검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 검찰, 왜 권력이 그토록 채동욱 총장을 끌어내리려 했는지 스스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사초 폐기'란 말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습니다. 검찰에 따르더라도 ‘봉하 이지원’ 시스템에서 회의록을 찾았고('발견본'), 지워진 것으로 보이는 초안도 복구('복구본')해서, 국정원에 보관돼온 '보관본'까지 모두 세 건의 회의록이 존재합니다. 더욱이 나중에 착각이었다고 변명했지만, 정문헌 의원이 청와대에서 봤다는 회의록도 있습니다. 설마 '폐기'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고 사용하지는 않겠지요?
'봉하 이지원' 시스템은 원본이 아니라 복사본입니다. 그런데 복사본에는 있는 회의록이 왜 원본인 나스(이지원 소스코드 및 데이터 저장매체)에는 없을까요? 더욱이 '봉하 이지원' 시스템은 논란 끝에 반납된 후 약 2~3개월에 걸쳐 원본과 대조하여 문제가 없다고 확인된 적도 있습니다.
이 부분과 관련한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는? 당연히 없습니다. 결국 검찰이 무리하게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는 것만 드러난 셈입니다.
이지원에 있는 회의록이 팜스(PAMS) 즉 대통령기록물관리시스템에는 없다는 것과 관련해 두 가지 추정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후임자의 열람을 돕기 위한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이관 배제 가능성, 다른 하나는 실무적 착오나 기술적 누락 가능성입니다. 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노무현재단도 조사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마당에 검찰이 마치 피의자를 소환하는 양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검찰이 정치공세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은 또 있습니다. 삭제된 걸 복원했다는 복구본과 발견된 최종본 사이에 “의미 있는 차이가 있다”느니 "삭제된 원본이 더 대화에 충실"하다느니 정치적 해석을 가한다는 점입니다.
"최종본이 완성되면 초안은 삭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참여정부 관계자들의 논리를 염두에 둔 발언입니다. 그러나 어떤 내용들이 의미 있는 차이인지에 대해서는 정작 밝히지 않는 전형적인 의혹 부풀리기 수법입니다.
특히 검찰의 편파적 태도는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의 법적 지위에 대한 해석이 다른 데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실종사건'을 맡은 공안2부(부장 김광수)는 '봉하 이지원'에서 초안이 삭제된 것과 관련해 "삭제됐다면 큰 문제"라며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의 적용을 시사하고 나섰습니다.
반면 올해 2월 검찰은 'NLL 포기 발언'으로 문제가 됐던 정문헌 의원 등에 대해 공공기록물로 보고 무혐의 처분을 한 적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검찰의 수사는 미진했습니다. 그리고 아직 수사 기간도 남아 있고, 노무현재단도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했으니 좀 더 시간을 갖고 보강수사를 하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마치 지난 대선 때 경찰이 밤중에 수사 결과를 발표한 것처럼 서둘러 수사 결과부터 발표하고 나섰습니다.
그 결과는 마치 경찰의 국정원 댓글 수사결과 발표가 대선 정국을 좌우한 것처럼 현 정국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검찰정국’은 일견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지난 대선 때 국정원과 경찰이 했던 일 때문에 현 정권의 정통성이 위협받는 것처럼 국정원과 검찰을 동원하는 정치로는 현 정권의 정당성이 위협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국정원의 개혁이 미룰 수 없는 과제이듯 검찰 개혁 또한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부상할 뿐입니다. 대한민국을 유신시절로 되돌리는 어리석은 시도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왜 모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