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부터 4년 간 미국의 정치는 매카시즘이라는 야만의 수렁을 헤맸다. 정치적 반대자나 집단을 공산주의자로 매도하는 매카시즘의 광풍은 그러나,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 혼자만의 악업이 아니었다. 부패하고 부도덕한 정치인과 상업주의 신문 간 야합의 산물이기도 했다. 미국을 적색 공포정치로 몰고 간 이 매카시즘은 정언 합작품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이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나는 297명의 공산주의자 명단을 갖고 있다.” 궁지에 몰린 매카시가 1950년 2월 정치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공화당 당원대회에서 근거도 없이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폭로를 했다. 전쟁을 부추겨온 보수·수구언론과 마감 시간에 쫓긴 신문은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대서특필했다.

폭로가 크게 보도되고 상원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으나 매카시는 아무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매카시는 계속 거짓 폭로를 이어갔고 ‘공산주의자’ 숫자도 늘어났다. 신문은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큰 제목으로 보도했고, 그런 신문은 불티나게 팔렸다. 매카시는 진보주의자와 공산주의자 등에 맞서는 용기 있는 정치인처럼 부상했다.

한국에서 환생한 매카시즘

그러나 매카시즘의 광기가 걷히는 데도 한 언론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54년 3월 CBS 에드워드 머로우 기자는 시사 프로에서 매카시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을 하나하나 밝혀나갔다. 뒤 이은 육군-매카시 청문회에서도 매카시 주장의 허위가 드러났다. 마침내 반공주의로 사상의 자유를 짓누르려는 매카시즘이 종말을 맞았다. 몰락의 길을 걷던 매카시는 3년 뒤 48세로 사망했다. 그가 고발한 수 천 명의 ‘빨갱이’ 중 정식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잊어도 좋을 법한 매카시 얘기가 길었다. 그것은 매카시는 단명했지만, 특히 한국에서 매카시즘은 여러 형태로 환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난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해 ‘신종 매카시즘’이라고 명명했다. 국정원이 근거 없이 무차별적으로 종북 딱지를 붙이는 신종 매카시즘의 행태를 보였고, 북한과 유사한 주장을 하는 사람과 단체에 낙인을 찍었다는 것이다. 또한 그릇된 종북관을 갖고 국민을 상대로 여론전을 벌였으며, 이는 국정원의 존재 이유에 반할뿐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였다는 것이다.

모두 냉철하고 적확한 지적이었다고 생각된다. 역사에서 오래전에 매장된 매카시를 추종하는 한국의 신종 매카시스트는 누구인가. 정치적으로 보수·수구의 길을 걷지 않거나 진보적 이념을 지닌 이들에게 습관적으로 ‘빨갱이’ 혹은 ‘종북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이는 모리배일 것이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 이래 이런 신종 매카시스트를 너무나 자주 본다.

최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의혹 사건 이후 신종 매카시즘 광풍이 한층 거세지고 있다. 충격적 사건이었다. 충격과 함께 ‘매카시즘 광기가 사회의 지성과 언론보도 태도를 더 황폐화시키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일었다. 물론 이 의원 쪽에 문제가 많다. 그들이 북한 김정은의 기만적 세습체제에 기운 것부터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들의 자폐적인 지식, 현실과 동떨어진 상황분석, 소영웅주의적인 협량 등은 차라리 측은해 보이기도 했다.

부끄럼 없는 매카시즘의 언론

그렇더라도 공허한 기대와 가상일 뿐, 실천력이 없어 보이는 그 토론 내용이 내란음모라는 거창한 죄목에까지 해당할 지는 지켜볼 일이다. 문제는 또 다시 언론 쪽으로 향한다. 언론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하고 정보기관에서 제공했을 녹취록을 여과 없이 크게 보도했다. 으레 매카시즘에 따라붙는 여론재판과 마녀사냥의 악역을 부끄럼도 없이 수행한 것이다.

두려운 것은 이제 언론이 양심과 사상의 자유, 인권 등 국민의 기본권을 위해 국가정보 기관 등을 감시하고 견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니, 언론은 국가기관과 동일한 가치관을 지니고 보수적·반공적 국가주의를 앞세워 사고하고 행동하고 대변하고 있다. 이런 보도 태도에서 ‘이적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사회주의를 따르는 자체가 범죄’라는 매카시즘적 망령의 부활을 보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 조선일보는 예민한 시기에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을 보도함으로써, 권언유착과 언론공작의 본모습을 스스로 드러냈다. 조선일보가 국가권력과 공

모하여 국정원 부정선거의 진상규명을 막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1950년대 미국 언론이 매카시의 조역에 머물렀다면, 지금 한국 언론은 무서운 주역으로 권좌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가 존속할 것인지가 판가름될 매우 첨예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궁극적으로 밝혀내야 할 국정원 대선공작 사실을 앞에 두고, 반대되는 두 세력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단과 냉전을 이용한 매카시즘적 반공주의와 마녀사냥 등으로 무장한 세력과, 촛불집회와 시국선언 등으로 평화와 정의를 갈구하는 시민세력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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