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명 칼럼] 칼은 빼긴 뺐는데 너무 녹이 슬어…

눈을 뜨자마자 두 눈에 꽉 찬 활자 <내란음모>. 아니 이게 무슨 소린가. 내란 음모라니. 드디어 북한에서 내란이 일어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어럽쇼 그게 아니다. 이 땅에서 내란음모가 있었다는 것이다.

어느 놈이 우리 모두의 조국 금수강산 대한민국을 엎어버릴 내란을 음모했단 말인가. 이놈들을 당장에 요절내야지, 활자를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점점 가슴이 떨려온다. 이럴 수가.

“지난 5월 통진당 당원 130여 명이 모인 비밀회합에서 통신ㆍ유류시설 등의 파괴를 모의했다”

‘유사시에 사회기반시설을 총기를 사용해 점거한다.’ ‘유사시에 대비해 총기를 준비하라’, ‘국가 기반시설을 타격하라’ ‘사제 총 만드는 방법’


▲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 앞에서 국정원이 밝힌 녹취록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민중의소리 갈무리

우선 이런 어마어마한 국가번복 기도 사건을 적발해 낸 국가정보원에 대해서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머리 숙여 무한한 존경과 격려를 보낸다. 얼마나 장한 국정원인가.

2010년부터 지금까지 3년여에 이르는 긴 기간 동안 나라를 엎으려는 내란음모 사건을 추적하고 적발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으며 얼마나 많은 예산이 드렸겠는가. 내란음모를 꾀한 자들이라면 목숨도 서슴없이 버릴 인간들이다. 그런 악착스런 인간들을 잡아내려면 자신의 목숨도 던져야 할 것이다. 그러니 더욱더 국정원 직원들의 조국 사랑에 고개가 숙여진다.

더구나 지금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라는 최대의 불명예와 악재가 국정원 개혁이라는 국민적 요구로 전면에 부상되어 있는 시기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국가를 사랑하는 일념으로 한시라도 늦추면 안 된다는 비장한 결단을 내린 남재준 국정원장의 ‘육사3년생’이라는 별명에 걸 맞는 용단에 역시 다르다는 생각과 함께 국가 장래에 대한 안도감을 더욱 갖게 한다. 아마 모든 국민이 그렇지 않을까.

‘내란음모’ 먼저 정신병원부터 거쳐야

‘내란음모’라면 그야말로 대한민국을 뒤집어엎어 버리자는 음모다.

“지난 5월 통진당 당원 130여 명이 모인 비밀회합에서 통신ㆍ유류시설 등의 파괴를 모의했다” “유사시에 사회기반시설을 총기를 사용해 점거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국토를 참절하고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한 폭동’형법 87조 내란죄)을 범할 목적으로 음모를 꾸민 내란음모죄(형법 90조)에 해당된다.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비록 국가안보를 지키는 것을 의무로 아는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혐의로 국회 ‘국정조사’를 받기는 했지만 3년이라는 기간을 추적해 ‘내란음모’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을 밝혀낸 나라다. 어디 그뿐인가.

▲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 앞에서 통합진보당이 연 '국정원 내란음모 조작, 공안탄압 규탄대회'에서 이정희 대표와 오병윤 원내대표, 이석기 의원등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민중의소리 갈무리

한국의 국방력은 세계 7위라고 한다. 경찰병력이 13만이나 된다. 시국선언 촛불집회를 막고 순식간에 명박산성을 쌓는 능력이다. 최루액과 물대포를 발사해 한 순간에 수만 시위대를 해산시키는 경찰이다.

이런 나라에서 ‘유사시에 통신ㆍ유류시설 등의 파괴를 모의했다’니 그야말로 한국의 국력을 ‘졸’로 본 것이다. 이게 정상적인가. 아무리 후하게 점수를 줘도 우선은 정신병원에서 감정을 받아야 죄지 않을까. 게다가 가장 은밀해야 할 내란음모에 130여 명이 몰려 떠들어 내는 판단력이라면 진짜 미친놈 수준이다. 하기야 미친놈이 더 무섭긴 하지만 말이다.

폭탄이 제대로 된 폭탄이 되려면

칼럼을 쓰면서 자꾸만 웃음이 실실 나온다. 코미디 대본을 쓰는 작가가 요즘 사태를 기록해 둔다면 몇 년 동안 소재가 없어 코미디 못 쓰는 일을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이것이 코미디인가. 비극인가 방향이 잘 잡히지 않는다.

국정원이 발표한 녹취록을 보면(어디까지나 녹취록이다) 끔찍하다

▲ KT혜화지사와 분당인터넷데이터센터(IDC) 등 국가 통신시설 파괴 ▲ 주요 철도 시설 파괴 ▲ 경기평택물류기지 타격 ▲ 미군기지 현황 파악 ▲ 폭탄 제조법 등 무기 준비 등을 모의한 내용이 고스란히 담게 있다. 통진당 조직원들이 한 말이다.

▲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쓴 휘호 ‘이민위천'. ⓒ진실의길 갈무리

이런 말을 한 조직원들이 TV 만화영화를 즐겨보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자신들을 ‘6 백 만 불의 사나이’로 착각을 하지 않았느냐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더욱 맹랑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정원이 이들의 위험성을 예견하고 미친놈들이 내란을 일으키기 전에 서둘러 손을 쓴 게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다가도 좌우간 양 쪽이 모두 대단하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그럼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우선은 겁이 난다는 것이다.

겁이 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내란음모’라는 흉측한 얼굴이 33년 만에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1980년의 ‘내란음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주인공이었고 이는 전두환 독재가 날조한 ‘정치탄압’ 이었다. 그 후 한 번도 적용된 적이 없는 반갑지 않은 죄명이 이번에 등장한 것이다.

언론은 이번 ‘내란음모’가선이 핵폭탄이라고 한다. 진짜 핵폭탄인지 지금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민주당이 해야 할 일

야구장에서 주자 일소 만루 역전 홈런을 볼 때가 있다. 시원하다. 역전이 됐으니 얼마나 좋은가. 보너스도 두둑이 받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시비 걸 수 없다. 시비 걸면 미친놈이다. 이번 ‘내란음모’ 사건, 아니 ‘내란 예비음모’라고 해도 좋다. 사실 국정원은 누가 뭐라고 해도 야구에서 리드 당하던 팀이라고 할 수 있다. 승리가 막막한 게임이었다.

누가 역전 홈런을 칠 수 있는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헌데 쳤다. 국정원은 화를 낼 것이다. ‘내란음모’라면 국가의 운명이 걸려 있는 변고인데 게임에 비교하면 되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역전이라고 그들 스스로도 생각을 하고 말 잘하는 정치평론가 시사평론가도 그렇게 평가한다. 하물며 조중동이야 말해 뭘 하리오.

그럼 과연 만루 홈런인가. 그런 건 상관없다. 만루홈런과 국정원 개혁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내란음모를 적발해 냈다고 해서 국정원의 대선개입이 사라지는가. 댓글이 사라지는가. 국민의 뇌리에서 국정조사를 받던 원세훈과 남재준이 사라지는가.

NLL 대화록을 오로지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서 공개했다’는 남재준 원장의 방약무인한 태도에 국민이 박수를 보내는가. 내란음모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국정원은 개혁되어야 하고 국민의 뇌리에 박혀 있는 음습한 그림자는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야당의 임무가 있다.

▲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 앞에서 통합진보당이 연 '국정원 내란음모 조작, 공안탄압 규탄대회'에서 이정희 대표와 오병윤 원내대표, 이석기 의원등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민중의소리 갈무리

민주당은 제1야당이고 국정원 개혁은 그들이 국회를 박차고 시청광장에 천막당사를 친 이유다. 김한길 당대표가 노숙을 하는 이유다. 지금 무엇이 달라졌는가. 내란음모가 국정원을 개혁시켰는가.

국민들은 이 시점에서 ‘내란음모’ 사건이 터진 것을 묘한 시선으로 본다. 오이 밭에서 신발 끈을 고쳐 맺기 때문이다. 3년을 내사했다는 진보당에 대한 내란음모 적발이 국민의 개혁요구로 곤경에 처한 국정원을 일시적으로 숨 돌리게 했을지는 몰라도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민주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국정원 개혁은 반드시 이루어 내야 한다. 민주당에 이롭고 해로우냐가 문제가 아니라 정의로운 민주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국정원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민주당의 장래도 이 나라 민주주의 장래도 희망이 없다. 민주당은 더욱더 국정원 개혁을 위해 당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국민도 함께 해야 한다.

국정원이 ‘이민위천(以民爲天)’이란. ‘백성을 하늘처럼 여기라’는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경구에 대해 문제를 삼지만 얼마나 유치한 발상인가. 국정원장은 백성을 하늘처럼 여기지 않고 땅처럼 여기는가.

세상사 억지로 되는 것은 없다.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

이기명(팩트TV논설위원장) http://facttv.kr/n_curat/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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