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명 칼럼] 죽어도 후손은 이 땅에서 산다

며칠 전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놀랐다. 동아일보에 낙동강 관련 기사가 실렸기 때문이다. 놀랄 일도 많다고 웃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니다. 모두 놀랐을 것이다.

4대강 문제라면 지금까지 이명박을 데려온 자식처럼 끼고 돌던 동아일보다. 감싸던 신문이 동아일보뿐이었냐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다른 신문이 모두 비판으로 지면을 채웠어도 동아일보만은 요지부동, 꿋꿋하게 4대강을 옹호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제목을 보자. 동아는 특종이란 이름으로 기사를 올렸다.

“4대강 수문 열면 지하수 말라붙는다”. “4대강사업은 재앙 수준… 대책 막막”

기사내용을 일일이 소개할 필요는 없다. 제목만으로 충분히 알 수가 있다. 동아의 보도 하나로 그렇게 놀랄 필요가 있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유 있는 질문이다. 또한 내가 놀라는 것도 이유 있는 놀람이다. 이유를 말한다면 놀람이 동아의 변화를 염원하는 소망이 담겨 있기도 하고 전혀 불가능한 소망도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차가운 냉소가 주류를 이룬다. 이명박이 팽 당했다는 것이다. 쓸모없는 이명박, 끼고 돌아야 이로울 것 없다는 얄팍한 계산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서글프기 짝이 없는 동아일보의 위상이다. 자업자득인가.

▲ ⓒ동아닷컴 갈무리

1960년대를 산 사람들이 기억하는 동아일보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상징이며 국민의 편에서 보면 진실을 가늠하는 공정한 잣대였다. 쿠데타로 합법적인 정부를 뒤엎은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서 치열하게 투쟁한 신문이 바로 동아일보였다. 박정희 독재의 광고탄압을 백지광고로 격려한 것도 동아일보를 아끼는 민주시민이었다.

대학생들은 동아일보를 들고 다니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동아일보 지면에 실리는 ‘횡설수설’이라든지 ‘단상단하’는 군사독재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비수였고 동아일보는 군사독재 정권에게는 눈에 가시였다.

김동명의 폐부를 찌르는 칼럼과 송건호 선생의 글은 숨 막히는 암흑시대의 한 줄기 빛이었다. 지금의 동아면세점 자리 찌그러진 대포집 드럼통 연탄위에 돼지비계 한 점 놓고 빈속에 소주를 털어넣는 기자들은 텅 빈 주머니에서 찬바람이 나와도 가슴은 뜨거웠다. 국민들은 동아일보 기자라면 물을 것도 없이 존경했다.

독재정권의 동아일보 탄압을 집요하고 잔인했다. 기관원이라는 중앙정보부원들이 제집 드나들 듯하고 그것도 모자라 상주를 하는 판에 기자들은 ‘기관원과 개는 출입금지’라라고 써 붙였다. 결국 군사독재 정권은 동아일보 사주를 협박해 기자들의 목을 잘랐다. 농성하던 기자들은 개처럼 끌려 나가 길가에 내동댕이쳐졌다. 이제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떴고 살았어도 80이 가까운 백발의 할아버지 퇴직기자들은 그때를 생각하며 눈물짓는다. 더욱 슬픈 것은 동아일보의 변신이었다. 이제 ‘정치권력의 개’라는 소리를 듣는 동아일보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언론이 권력의 개가 되면, 개도 부끄럽다.

동아일보의 한몸인 동아방송은 공정방송의 상징이었다. 동아방송이 처음으로 시작한 ‘뉴스쇼’는 방송뉴스의 효시였다. 역시 전두환 독재 정권에게는 눈에 가시였다. 언론사 통폐합이라는 전대미문의 언론학살로 동아방송의 숨통을 끊었다. 고별방송을 하는 동아방송 최종철 정경부장은 울면서 고별사를 낭독했다.

1963년 4월25일 공정한 민주방송으로 국민의 열화 같은 지지를 받으며 전파를 쏘았던 동아방송은 1980년 11월 17일 비극적인 종언을 고했다. 그날 광화문 동아일보 앞을 지나던 사람들은 억장이 무너지는 통곡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동아일보 김병관 회장의 통곡소리였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해직된 언론인들은 어떻게 살았는가. 무엇을 먹고 살았는가. 어떻게 처자식을 먹여 살렸는가. 불가능했다. 사람처럼 살기가 불가능 했다. 해직기자 자신들은 어디 취직도 못했고 용케 취직을 하면 어떻게 알았는지 사업주를 협박해 목을 잘랐다.

살기 위해 아내가 장사를 하려고 해도 그것도 못하게 했다. 사과 몇 개 올려놓고 길가에 앉아 팔면 그것도 단속했다. 결국 죽으라는 것과 같았다. 실제로 해직기자들 중에는 자살이나 다름없는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이부영이 말했다. ‘부모 때려죽인 원수도 아닌데 그렇게 악착같이 못살게 할 수가 있느냐’ 어느 해직기자의 딸은 약을 먹고 다 함께 죽자고 했다. 지금 살아남은 해직기자들을 보면 그 때 밥 제대로 먹고 산 것이 부끄러워진다.

지금은 어떤가. 오늘의 언론을 말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오늘의 조중동을 말하는 것이다. 조중동은 당당한가. 언론으로서 기자로서 당당한가. 이미 당당이라는 말은 그들에게 해당이 안 된다. 그들 자신이 너무 잘 안다. 허세가 눈에 선한 그들의 행동이 가엾다.

조중동, 마음 편하게 국민과 함께 살자.

조중동을 비롯해서 공중파 방송들에게 묻는다. 서울광장에 모이는 수만의 촛불은 뉴스가치가 없어서 보도들 제대로 하지 않는가. 여드름 보도 만 큼도 가치가 없단 말인가. 아무리 권력의 개가 됐다고 해도 최소한의 할 일은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촛불광장에서 꺼지라고 봉변을 당하는 심정은 알고도 남는다. 보는 사람이 딱할 때 당하는 사람이야 오죽하랴. ‘언론고시’합격이라는 자부심으로 기자를 시작했을 때 이 지경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공공연하게 개 라는 욕을 먹을지 상상이나 했겠는가. 개라는 모욕을 당하면서 말 한마디 항변도 못하는 신세가 될 줄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동아일보의 4대강 비판을 보면서 화들짝 놀라는 국민들을 보면 확실히 동아일보가 못되긴 했던 모양이다. 기자들도 욕먹기는 죽기보다 싫어한다. 어느 방송사의 앵커가 전화를 했다. 까만 후배다. 자식뻘이 된다. 그는 애원했다.

‘제발 칼럼에 이름 박아서 욕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자식들이 볼까 두렵습니다. 저도 많이 괴롭습니다.’

이해한다. 그러나 잘못은 밝혀야 한다. 옛날 해직기자들은 처자식의 희생을 감수하며 치열하게 싸웠다. 비록 밥은 굶었어도 그들은 양심으로 허기 진 배를 채웠다. 죽은 친구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칠 지경이다. 살아 있는 이 치욕, 씻을 방법이 없다.

조중동!! 조금만 변해라. 옛날 같지는 않다 해도 그때 동아일보의 절반만이라도 해서 국민들의 존경을 다시 받게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 지금은 그때처럼 잡아다가 죽도록 패지는 않는다. 굶지는 않는다. 자식들이 함께 죽자고 하지는 않는다.

역사학자 전우용 선생이 트윗에 올린 글을 인용한다.

“4대강 공사를 비판하면 종북 좌파라 비난하던 동아일보가 이젠 4대강을 ‘대재앙’이라 하는군요. 진짜 ‘대재앙’은 이런 게 언론 행세를 하는 거고 이런 걸 철석같이 믿는 자들이 ‘정상인’ 행세를 하는 거죠. 타락한 언론보다 더 큰 재앙도 없습니다.”

어떤가. 조중동! 인정하는가. 괴롭지만 인정할 것이다. 너희들도 사람이고 더구나 언론인이니까.

이기명(펙트TV논설고문) http://facttv.kr/n_curat/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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