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명 칼럼] 경찰청 정문에 권은희의 동상 세워주고 싶은 심정

운동경기를 중계하는 아나운서는 아무리 경기가 엉망이라고 해도 중계를 해야 하는 것이 의무다. 그러나 도저히 할 수가 없어서 마이크를 팽개치고 현장을 떠났다. 어느 정도의 경기이기에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까.

비유를 해보자. 만약에 이번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 방송을 하다가 포기한 방송국이 있다면 국민은 백번 이해를 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부처님 같다 해도 인간의 인내력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TV중계를 포기한 방송사들의 포기이유는 다른 데 있다. 언론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16일 국정조사에서 증인으로 나온 원세훈 김용판 두 사람에 대해서는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게 국민 건강을 위해서 좋은 일이다. 그들은 법이 정한 증인선서도 거부했다. 위증을 하겠다는 공개선언이고 실제로 위증을 밥 먹듯이 했다. 이런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최고위급에 속하는 지도적 인물이다. 눈물이 날 정도로 나라의 운명이 걱정된다. 그래서 국민대열에서 제외했다는 국민이 많다.

▲ 권은희 전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서 수사과장)이 국회 국정원 청문회장에서 증인으로 출석하여 답변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갈무리

19일의 국정조사에서는 27명의 증인과 참고인 등이 출석했다. 모두가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이고 국가의 안위를 책임지는 국정원 직원과 고위 경찰들이다. 총경급 이상 경찰과 사이버분석관이라고 하는 최고의 엘리트들이다. 경찰대 출신들이 태반이라고 한다.

이른바 ‘댓글녀’라는 고유명사를 탄생시킨 유명인이 된 국정원직원 김하영을 비롯해서 말썽의 핵인 박원동과 장막 뒤에 숨어 증언하는 국정원 고위직원들의 양심은 장막을 잘라 절반만 보인 모습과 똑같이 온전하지 못한 불구였다. 장막 뒤에서 서로 입을 맞추어 증언하는 모습을 국민들은 생생하게 목격했다. 그들은 국민의 가슴이 국정원의 신뢰와 함께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었을까. 국민들 가슴에 왕대못을 박았다.

100여 쪽에 이르는 국정원 댓글 분석 자료 폐기는 14명의 분석관이 한결같이 몰랐다고 했다. 모두가 장님이고 벙어리다. 수사국장이라는 최현락, 김병찬 서울경찰청 수사2계장도 보고 받지 못했고 몰랐다고 대답했다. 참 재주도 좋다. 어떻게 이런 재주를 소유하는지 분석 좀 시킬 수는 없을까. 그러나 그들 자신은 분석했을 것이다.

신기남 위원장이 말했다. ‘어쩌면 모르는 것까지 일치한단 말이냐.’ 경찰관인 분석관들은 녹화 테이프를 한 번 보라. 모른다고 대답할 때 자신의 표정을 한 번 보기 바란다. 아마 다 보지 못하고 외면을 할 것이다. 양심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국민들 좀 생각해 줄 수 없느냐.

경찰 수사권 독립을 외치는 경찰들에게 국민은 뭐라고 할 것 같은가. 대답 역시 자신들이 잘 알 것이다.

경찰청 정문에 권은희 동상을

사막에도 꽃은 핀다고 했다. 오아시스도 있으니 꽃은 필 것이다. 그러나 사막에 꽃이 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꽃이 피었다. 국정조사장이라는 황량한 사막에 꽃이 한 송이 피었다. 권은희 송파서수사과장(전 수서경찰서수사과장)이다.

권은희는 이미 국민의 영웅이고 국민의 경찰이 되었다. 한 순간의 영웅이 아니고 국민에게 희망을 준 영웅이고 경찰역사상 가장 빛나는 영웅으로 국민이 기억할 것이다. 국민들은 국정원의 댓글녀(김하영)가 선거에 개입해 불법을 자행한 사실이 들통날 때부터 수사책임자였다. 수사책임자였으니 수사만 끝나면 책임을 다 한 것이다. 그런데 왜 영웅인가.

권은희는 국정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압력을 받았다. 댓글조사 하지 말라고 했다. 양심선언을 했다. 얼마나 미웠을까. 경찰조직이라는 것이 상관의 지시를 거부하기가 힘들다. 김용판의 비열한 행위는 국정조사장에서 온 국민이 지켜보았다.

김용판이나 원세훈의 일그러진 모습과는 달리 당당하게 대답하는 권은희의 모습에서 국민들은 진정한 경찰상을 목격했으며 마치 녹음을 한듯한 분석관이라는 경찰들에게서는 퇴행적 경찰의 진수 보았다. 진면목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수사 독립권을 주장하는 경찰이 이제는 다시 그런 주장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국민이 경찰 수사권 독립에 반대하는 촛불을 들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권은희의 행동은 칭찬받을 것이 없다. 경찰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연한 행위가 국민으로부터 찬사를 받고 영웅으로 추앙을 받는 경찰의 현실은 얼마나 눈물 나는 비극인가.

▲ ⓒ민중의소리 갈무리

국민들은 권은희 과장이 14만 경찰의 명예를 지켰다고 한다. 사실 정치권력에 빌붙어 소신을 굽히는 경찰이 몇 명이나 되랴. 대부분의 경찰이 가슴을 치며 국정조사 중계방송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런 사실을 경찰고위층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새누리당 조사위원들도 알 것이다.

권은희 과장은 분명하게 증언했다.

“경찰 중간수사결과 발표가 대선에 부정한 영향을 미치기 위함은 분명하다”

이 말을 들은 경찰 출신 새누리당 윤재옥의원이 경찰의 명예가 걸려 있다면서 권은희를 제외한 경찰 쪽 증인 모두에게 권은희 과장 발언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14명의 증인은 모두 “동의할 수 없다”, “정치적·정무적 고려 없었다”,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고 답했다. 정말 양심의 거리낌이 없었을까. TV중계에 답변하는 그들의 얼굴은 영원히 남는다.

조명철이라는 기막힌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있다. 북한에서 탈북했다는 사람이다. 그가 권은희 증인에게 던진 까무러칠 질문이 있다.

‘증인은 광주의 경찰이냐’

권은희가 광주출신이라는 의미다. 그 속내야 모르는 국민이 어디 있으랴. 이런 유치찬란한 질문에 권은희가 ‘십자가 밝기’라는 대답을 했다. 조명철이 알아듣기나 했겠는가. 새누리당 대표 황우여가 대신 사과를 했다.

새누리당이나 일그러진 매체들은 국민이 바보인줄 알지 모르나 천만에 말이다. 이번 권은희 과장의 경우 온 국민이 찬사를 바친다. 그냥 맹탕 찬사가 아니다. 혼자의 몸으로 일당백 일당천의 용기를 낸 것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가 생각하면 눈물이 나온다.

▲ ⓒ민중의소리 갈무리

고등학교 학생들이 빵 100개를 사 들고 권은희 과장을 찾았다. 그들은 야무지게 방문 이유를 밝혔다.

“국정조사 전 양심선언을 한 권 과장이 광주 경찰이라고 모욕당하는 걸 보고서 청소년이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찾아왔다”

“기성 언론에선 다루지 않아 인터넷에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일지를 찾아보고 심각성을 깨닫게 됐다”

“청문회를 보니 권 과장이 자기에게 해가 돌아갈 수도 있는데 꿋꿋이 발언하셔서 보기 좋았다. 감사드린다.”

어른으로서 얼굴을 못 든다. 그러나 이들 청소년들의 말은 많은 국민들에게 공감을 주고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국정조사가 끝났다. 아니 법적인 국정조사는 끝났지만 국민의 국정조사는 끝나지 않았다. 국민의 특검이 남았다. 반드시 이번 국정원 선거개입 망동은 뿌리를 뽑아야 할 것이다.

왜 박근혜 대통령은 침묵인가. 침묵으로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믿는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 국민들은 새누리의 정치능력을 조금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로봇이라는 인식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난마처럼 얽힌 정국을 풀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임기 내내 고통스러운 정치속에서 헤매게 될 것이다. 결자해지라는 말이 바로 이 경우다. 침묵으로 해결되는 것은 나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박대통령의 침묵은 결코 금이 아니다.

이번 국정조사서 귀중한 소득이 있다. 권은희라는 책임과 의무를 다 하는 경찰관을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이 국민에게 얼마나 희망을 주는지 새누리당은 아는가. 권은희에게 가해지는 온갖 압력이 있을 것이다. 국민이 용서하지 않는다. 국민이 보호해야 한다.

경찰청 정문에다 권은희의 동상이라도 세워주고 싶은 심정이다.

이기명<팩트TV논설고문>  http://facttv.kr/n_curat/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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