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을 두고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책임전가 공방으로 정치권이 시끄럽다.

치부를 덮기 위한 맥거핀 효과를 노린 정치적 술수로 등장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대화록은 정치권에 대한 혐오감만 가중시킨 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것이 정치적 타이밍에 맞춰 실수로, 아니면 고의로 사라진 건지 예단할 순 없지만, 실수든 고의든 이것이 실종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 국가기록물 관리체계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소태를 씹는 심정이다.

국가기록물은 그 무게의 막중함이 사뭇 여타의 뭇 기록물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것이 정상들 간의 회담과 관련된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더욱이 나라 간의 외교, 안보, 국방에 관련된 것이라면 말해 무엇 하랴. 이러함에도 남북정상 간의 대화록이 실종됐다는 사실은 국가기록물 관리에 구멍이 났다는 의미다.

여야는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외면하지 말고 여야 정쟁을 떠나 부실한 국가기록물 관리체계를 점검 보완하고, 법적 공표 기한을 어긴 채 기록물을 정략적으로 이용할 수 없도록 쐐기를 박는 법안 강화를 서둘러야 한다.

또한 검찰도 나서 엄정중립의 자세로 철저한 수사를 통해 실종의 책임을 추상같이 물어 다시는 이런 치욕스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해서 다시는 민생을 외면한 정치권의 소모적 정쟁으로 인한 국민들의 삶의 피폐함이 가중되어선 안 된다.

MB 정권부터 자행된 복지예산 감소와 사회적 일자리 창출 실패, 올라만 가는 생활물가로 지금 국민은 지쳐 있다. 젊은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냉랭한 저기압이 잔뜩 웅크리고 있다. 집값, 등록금, 학원비, 부양비 등으로 서민들은 삶의 가장자리로 떠밀리고 있다.

삶이 이러함에도 한 때 제 국민을 향해 살육의 칼을 휘둘렀던 장본인은 추징금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하더니 부정 축재한 수십억 원을 굴려 매월 1,200만원씩을 수령하며 호의호식해왔다. 국민들은 법 위에 군림한 채 방귀 깨나 뀌는 자들과 경찰차 사이렌 소리만 들어도 새가슴으로 움츠러드는 자들에 대한 불공평한 법의 잣대 적용과 고위층의 모럴헤저드 앞에 상대적 박탈감만 느끼며 분노할 뿐이다.

문득 ‘진평재육(陳平宰肉)’이란 고사성어가 생각난다. 책사로서 한고조 유방 곁에서 유방이 초나라를 제패하고 중국 통일대업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왔던 진평이 손님들에게 고기를 골고루 나누어 주고 나서 “천하의 재상 직책을 나에게 맡기면 이처럼 나라를 공평하게 다스려 태평하게 하겠다.”라고 말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소하 같은 이는 진평을 지략은 출중하나 한 나라를 건사할 만한 능력은 없다고 잘라 말했지만, 사마천 같은 이는 「사기」에서 “처음도 좋았고, 끝도 좋았다. 뛰어난 지략이 없었다면 어찌 가능했겠는가.”라며 극찬하는 등 그 평가는 제각각이지만 지략의 출중함 하나만은 인정했다.

내가 진평을 다시 보는 이유는 지략의 출중함이 아니라 그가 내뱉은 말에서다. 진평재육. 한 마디로 공평무사다. 이런 마음가짐을 지닌 진평이었기에 가난을 무릅쓰고 한 나라의 재상으로 우뚝 설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모든 조직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말이겠으나, 특히 나라와 국민을 위해 사사로움 없이 일해야 하는 이 땅의 모든 공복들이 신심처럼 지녀야 할 최선의 마음가짐이다. 이 땅의 공복들은 마땅히 아침저녁으로 곱씹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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