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 캄보디아를 방문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다리 잘린 어른과 아이들, 그리고 학살 현장에서 발굴했다는 인골을 보면서 비록 내전이라고 했지만 전쟁의 참혹함을 실감케 했기 때문이다.

아마 보이지 않는 죽음과 부상은 보이는 현실보다 더 많을 것이다. 전쟁은 게임이 아니다. 모든 사물을 파괴하는 것은 물론 국민의 생명을 무참하게 앗아가는 비극이다.

살아남은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절망이다. 과거 6.25의 경험은 그렇지만 세계에서 전쟁을 겪은 나라치고 잘 사는 나라가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노릇이다.

그래서 이제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 경우 한반도는 석기시대로 돌아가고 민족은 소멸할 것이라는 경고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는 사실에 공감한다.

그런데 너무 전쟁을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의 어떤 교수는 지금이야말로 북한을 폭격해야할 시점이라는 글을 유력지에 올렸다는 기사도 보았다. 그래서 미국이 북한을 접수할 수 있다는 것인지! 한심한 글을 쓴 사람이나 그런 글을 올린 신문이나 같은 수준이라는 생각을 한다.

외교의 마지막 수단이라는 전쟁은 이성적인 논리를 배격한다. 아무 원한 관계도 없는 생면부지의 사람을 상대로 무기를 겨누고 목숨을 노리는 오직 동물적인 광기만 존재할 뿐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라는 명분만이 정당성을 갖는 잔혹한 광기에 노출된 힘없는 사람들이 먼저 죽는 비극이다.

그럼에도 그런 비극의 파국을 원하는 사람들과 집단이 있다는 사실이 불안하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남북이 갈등을 넘어 전쟁의 위기 국면으로 치닫는 데는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혹자는 한반도 불안의 원인 중 하나가 미국과 북한의 대립이라는 주장이 있다. 북한은 미국과 수교를 원하고 미국은 북을 트집 잡기로 일관하다보니 미국에 정치 군사적으로 종속된 남한이 뒷전으로 밀리면서 위험한 치킨게임으로 치닫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물론 미국의 뒤에서 처분만 바라는 남한의 친미 사대주의에 사로잡힌 위정자들, 인민의 자유와 권리를 희생하가며 권력의 세습과 체제유지에 목숨을 건 북한 당국도 책임이 있을 것이다.

북한과 대결구도를 만든 미국은 물론 한국 정부, 그리고 북한 당국자들은 현재 위기 국면의 원인이 무엇인지 살피면서 최소한 위험하고도 불행한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

그러나 글은 이렇게 쓰지만 국가가 추구하는 명분과 이익에 집착하는 국가의 속성상 국가 간에 양보 없는 현실을 안다.

남북 긴장을 빌미로 미국은 한국에 무기판매에 열을 올리고, 일본은 한국 전쟁이 터지는 시간을 기다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이름 없는 백성의 한 사람이지만 정말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불행을 자신들의 경제적 위기를 회복할 기회로 삼을 미국과 일본을 떠올리면 지나간 역사와 겹쳐지면서 분하고 원통한 마음을 참을 수 없다.

불쌍한 나라, 불행한 국민이라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조선말 서울 남산에 주둔한 일본군은 궁궐을 향해 대포를 설치하고 고종황제를 협박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헌법상 대통령이 국군의 통수권자라고 하지만 사실상 한미연합사의 통제를 받는 전시작전권도 없는 나라, 만약 미국이 북을 공격하면 그 전쟁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 우리 정부의 선택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이 서글프기만 하다.

북도 냉정해져야 한다. 극단적인 말로 상대방을 자극하는 언사는 삼가야 한다. 남한의 현실을 이해하면서 대결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길을 모색하기를 바란다. 민족의 멸망을 자초하는 전쟁은 정말 안 된다. 더 이상 남북 모두 선제공격이니 타격이니 하는 공격적인 언어부터 삼가자.

남북이 만나 7.4 공동성명 6.15 선언을 다시 확인하자.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우리 정부가 보다 능동적이고 자주적인 자세를 보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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