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한 ‘독서교실’을 위해 학교 도서관을 개방했다.  
그 나라의 과거를 알려면 박물관에 가야하고, 현재를 알려면 시장에 가보고, 미래를 알려면 도서관에 가보라고 한다. 그 만큼 도서관은 아이들의 미래를 준비하는 공간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우리 농촌에서는 미래를 준비할 도서관이 턱없이 부족하거니와 있는 공간도 너무나 열악하다.

지난 해 토요일마다 우리 지역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독서 토론 교실을 운영했다. 혼자 하는 것보다는 엄마들을 주인으로 내세우기 위해 그 분들을 위한 독서 토론 교실도 병행했다.
좋은 책들을 골라 토론 주제를 써보고, 친구들과 모둠별로 발표하면서 아이들은 독서 활동을 한 차원 높일 수 있었다. 때마침 온 나라를 휩쓸고 있는 ‘독서와 논술’ 열풍이 있어서 인지 호응도 높았다.

그래서 올 초에는 엄마 대표와 함께 우리 지역의 면장을 만나 지속적인 관심과 협조를 요청해 보기로 했다. 우리는 지역 도서관과 함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문화적 풍토와 시설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략 수긍을 하셨지만 인근 면단위에 새로 생긴 공공도서관의 이용자가 너무 적어 곤란을 겪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 지역의 노인들은 도서관 공간에 새로 물리치료실을 만들자는 주장도 했다고 하니 당분간의 면단위에 공공도서관이니 독서 사랑방이니 하는 독서 공간을 세우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서울에서 자란 나는 학교 도서관보다는 집 가까운 곳에 있었던 공공 도서관에 대한 추억이 훨씬 크다. 지금으로부터 몇 10년이 더 지난 일이지만 초등학교 시절 독서광 친구와 함께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고르고 책을 읽고 빌려오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독서교실과 독후감쓰기 대회도 참가할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마련한 영화를 봤고, 도서관에서 특별히 마련한 특기 교육에도 참가했었다. 주말에는 도서관에 줄을 서서 공부를 했었다. 대학 전기 시험에 낙방한 후에 눈물을 닦으며 후기 시험 준비를 했던 곳도 역시 도서관이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임용고시를 준비하러 찾아 갔던 곳도 어릴 적 줄곧 갔던 영등포 도서관이었다.

하지만 내 아이들과 방과후나 주말에 찾아갈 도서관이 주변에 없다. 가까운 순천에 기적의 도서관이 있고, 시립 어린이 도서관이 곳곳에 있는 걸 보면 위화감마저 느껴진다. 그리고 도시 초중등학교에 사서 교사가 따로 있어 전문성을 가지고 아이들 독서 지도와 안내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부럽기 짝이 없다. 도서관 시설과 자료 수에 있어서도 도시와 농촌지역의 격차는 어마어마하다.

오히려 교육 시설이 부재한 농촌 지역에 도서관이 더 좋게 건립되고 운영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은 도서관에서 조차 아니 도서관에서도 어김없이 부익부 빈익빈 현상,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원래 도서관을 살리는 운동은 지역 운동 차원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농촌 지역의 아이들과 부모들을 위한 독서 모임이 자발적으로 뿌리를 내린다면 새로운 대안 공동체 문화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1929년 광주 학생운동의 시작도 독서모임에서였고, 전태일이 노동자들과 함께 만든 모임도 ‘바보회’라는 독서 모임이었다. 나를 의식화 시킨 것도 대학 시절 독서 세미나에서였으니 위에서부터 시키는 강제적 독서 열품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시작하는 독서 모임이 필요할 때라고 본다.


   
 
 
** 조경선님은 고흥도화고교 국어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제10회 전태일 문학상으로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고흥민예총 문학분과 ‘시강’ 동인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작은 도서관 세우기 운동, 학부모 독서모임 등을 이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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