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하나 내겠다. ‘금 717g(190돈), 은 417.5g, 22K, 자수정, 월계수, 대통령, 셀프’ 중에서 연상할 수 있는 단어는? 최근 포털에 접속해 본 사람이라면 쉽게 답을 댈 수 있을 것이다. 정답은 이름도 황홀 찬란한 ‘무궁화 대훈장’이다.

▲ 김용국 정광고 교사.

사실 워낙 용렬한 재주 밖에 없어 초등학교 시절부터 개근상만 겨우 몇 번 받아 온 터라, 내게 상훈(賞勳)은 그저 먼 나라 이야기였다. 이런 나이기에 우리나라 단일등급의 최고 훈장인 ‘무궁화 대훈장’의 존재도 겨우 최근에 인터넷 포털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요즘 이 무궁화 대훈장이 각종 포털을 뜨겁게 달구고 있기에 나도 모니터에 눈을 가까이 대었다. 큼지막한 제목만 우선 보았다. 헉! 대통령 부부가 의무적으로 받는데 시가로 6,800만원이란다.

내 연봉을 훨씬 웃도는 금액이다. 나는 거의 실신할 정도로 배가 아팠다. ‘사촌이 논 사면 배가 아프다.’다는 속담을 만들어낸 우리 선조들의 인간 본성을 꿰뚫어 보는 혜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사려 깊은 누리꾼 대부분은 배 아픔이 아닌 분노를 보이고 있었다. 이상했다.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았다. 다 읽자 나도 어느 새 누리꾼의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배 아픔도 잊어버리고 어금니를 깨물고 있었다.

내가 어금니를 깨문 이유의 전부는 비상식성이었다. 우선 수여자와 수상자의 동일성 모순에서 오는 비상식성이다. 원래 훈장의 취지가 통치자가 공을 세운 신하나 백성들에게 수여하여 공을 기림으로써 존경을 표하고 사기를 진작하는 것 아니었던가.

그런데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이 단지 대통령이란 이름으로 주체인 자기 자신을 객체화하여 자신에게 셀프 수여하는 발상을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차라리 수여자를 헌법기관이라도 내세우면 그나마 모양새가 낫지 않은가. 대통령이 대통령 자신에게 수여하는 것은 내겐 대통령 자신이 헌법 위에 군림한다는 오만과 몰염치의 극치만을 보여 줄 뿐이다.

두 번째는 평등성의 위배에서 오는 비상식성이다. 왜 대통령급이 받는 무궁화 대훈장은 그 배우자까지 수상해야 하는가이다. 여타 일반 국민은 공을 세운 당사자에게만 수여하면서 말이다. 또한 상훈법에 의거해 뚜렷한 공로도 밝히지 않은 채 대통령이면 헌법에 따라 자동적으로 수상하다니 이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인가. ‘헌법’이란 지고지순한 최상위 용어까지 써가며 아예 수상에 당연지사로 명토박이 해버렸다.

이러니 독재자도 헌정파괴자도 대통령이란 이름 하나로 이 훈장을 수상했다. 분노에 앞서 허망하다. 대통령이란 지엄하신 옥체로 막중한 국사를 돌봤기 때문에 덤으로 훈장 하나쯤 받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란 것인가? 이 상에 내재한 차별성이 역겹다.

세 번째는 금액의 비상식성이다. 대통령 부부가 받는 이 훈장의 시가가 무려 얼추 7,000 여만 원이다. 내 견문이 좁아 훈장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이 훈장의 시가가 기네스 최고 기록이 아닐까? 이 금액은 공로를 기리고 존경을 표하는 훈장의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훈장 수상을 치부의 수단으로 삼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전셋값에, 등록금에, 사교육비에, 혼수비용에 등골이 휘는 청와대 밖 장삼이사들에게 이 금액은 1년, 2년 아니 알바 뛰는 내 제자들에겐 넉넉잡아도 10년 벌이에 해당한다.

이럼에도 언론에 노출될 때마다 진정 국민의 종이 되어 받듦과 섬김을 하겠다고 맹약한 자가 양심이 있다면 어찌 이런 훈장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설령 이바지한 공로가 있다손 치더라도 이런 금액의 훈장을 받는 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우롱일 뿐이다.


네 번 째는 공기업의 제살 깎아먹기 운영의 비상식성이다. 현재 50여 종에 이르는 훈장을 제작하는 기관은 정부 회사인 공기업 조폐공사다. 그런데 조폐공사는 훈장 제작으로 100억 여 원에 이르는 적자를 보고 있으면서도 청와대에 시정을 위한 건의 한 마디 제대로 못했단다.

한 정부 기업 조직의 수장으로서 조직의 고충, 어려움, 폐단 등을 과감히 대통령에게 건의해서 이것의 시정을 요구해야 하는데도 자신의 돈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저 윗선의 환심이나 사려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추태는 국민에 대한 중대 범죄다. 이런 상황을 모르고 이 훈장을 대통령이 받아왔다면 직무유기이고, 알고서도 받아왔다면 뻔뻔함의 극치다.

국민의 휜 등허리에서 나온 혈세가 청와대와 공기업에 의해 자화자찬의 셀프 훈장에 뿌려지고 있다. 걸핏하면 서민행정, 서민행복을 외치던 정권의 수장들은 국민 몰래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은근슬쩍 무궁화 대훈장을 셀프 수상해왔다.

그 수여방식과 금액은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만약 정약용이 지금의 이 모습을 봤다면 어떤 말을 했을까. 아마도 목민심서를 꼭 쥔 그의 입에선 ‘가렴주구’나, ‘가정맹어호’란 말이 튀어 나오지 않았을까. 2백년이란 시간이 흘렀건만 이 땅 권력자들의 위선과 탐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며 혀를 끌끌 차지나 않을까.

내게 진정한 셀프 훈장 대상자를 고르라면 나는 단연코 이 땅의 장삼이사들을 들겠다. 오직 돈 속에서 행복을 찾는 자살률 1위 공화국에서 그래도 모진 목숨 이어온 것이 공로 아니면 무엇인가.

고된 삶 속에서도 자식들 보며 희미한 미소 지으며 가녀린 한 줄기 명지바람을 꿈꾸는 이 땅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무거운 책가방 낑낑대며 삶의 언덕길을 어금니 깨물며 오르는 아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수훈갑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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