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스코 동굴벽화

 
보아뱀 그림

 생텍쥐페리(1900-1944)의『어린왕자』(1943년)는 어른을 위한 동화로서 유명하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많지 않다”라고 하였다. 본문 중 보아뱀의 경우가 그러하다.

어린왕자가 여섯 살 때 색연필로 그린, 코끼리를 통째로 삼키고 그걸 소화시키느라 여섯 달 동안 잠을 자는 보아뱀. 그러나 어른들은 어린왕자의 이 멋진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다. 답답한 어린왕자는 귀엽게 투덜거린다. “어른들은 꼭 설명을 해 주어야 해.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거든. 그렇다고 늘 어른들에게 설명을 해 주자니 어린이들로서는 여간 귀찮은 게 아니야”라고.

 상상력과 미술

잰슨은『회화의 역사』에서 상상력을 화두로 서양회화사를 풀어갔다. 그는 시대와 공간을 불문하고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상상하며, 이야기하고, 만들어간다고 생각했다. 상상력의 관점에서 보면, 동굴벽화를 그린 선사인과 컴퓨터 그래픽을 하는 현대인은 서로 다르지 않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인간은 상상하는 동물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심리학에서 상상(想像, imagination)은 과거의 경험으로 얻어진 心象을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하는 정신작용이라고 한다. 새로운 형태의 재구성이라는 점에서 기억의 재생과는 다르고, 이미지에 의존하지 않는 추상적 사고와도 구별된다. 또한 있지도 않는 것을 현실처럼 여기는 망상이나 환각과도 같지 않다.

 선사미술의 상상력

구석기시대부터 인류는 그림을 그려왔다. 기원전 15,000 ~ 10,000년경에 그려진 프랑스의 라스코, 스페인의 알타미라의 동굴벽화에서 금방이라 뛰쳐나올 듯 생생한 들소와 사슴, 말들의 장면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선사인에게 사냥은 생존을 건 두려운 일이었다.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사냥을 나가기 전, 동굴벽면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각오를 다진다. 갈라진 틈새, 울퉁불퉁한 벽면에서 들소와 사슴들이 질주한다. 사냥꾼은 동굴벽면을 질주하는 사슴을 향해 돌창을 힘껏 던졌다. 털썩! 검은 황소가 울부짖으며 쓰러진다. 시나브로 두려움이 사라진다.

마치 어린왕자의 보아뱀을 어른들이 보지 못한 것처럼.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늘 설명을 해주어야 하는 현대인들이, 오히려 그네들은 답답할 듯싶다.


** 배종민님은 미술인연대 교육위원장, 전남공고 교사입니다. 조선시대 회화사를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주요논문은 <조선초기 도화기구와 화원> <강진 무위사 벽화연구> <5월미술과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 등 다수가 있습니다. 현재는 우리 근·현대미술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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