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험한 바람을 막아주기를 기원하며

공간을 획정하는 방식으로 울타리와 담장은 같은 개념의 다른 명칭이지만, 울타리와 담장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분위기가 다르게 다가온다.

둘 다 배타적인 공간을 설정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일반적으로 ‘담장’이라는 이미지는 사이가 멀어진 경우를 ‘서로 담을 쌓고 지낸다’ 라고 하는 것처럼 불통의 상징 또 갇힌 곳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리고 ‘담장’ 하면 권력자들과 부자들이 사는 높은 담장이 떠오른다.

반면 우리말의 ‘울타리’는 우선 담장이라는 단어보다 덜 딱딱하고 정겹다.
어쩐지 외부의 시선을 꺼리지 않는 집, 지나가는 사람도 내키면 발돋음을 하여 마당안의 정경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은 허술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 이웃간에 아낙네들이 따뜻한 정을 담은 파전 한 접시 호박죽 한 그릇을 건네주는 그림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리고 상대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표현으로 “너의 울타리가 되어주겠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경우 울타리는 든든한 피난처 혹은 의지처라는 뜻을 포함한다. 아마 상대를 도와주겠다는 표현으로 “너의 담장이 되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타인의 시선이 거북한 사람들에게는 높은 담장이 필요할지 모른다. 드러나는 것이 불편하게 여겨져 감추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담장위에 고압선이 지나는 철조망이 필요한지 모른다. 그러나 보는 이의 입장에서는 시야를 가리는 높은 위압적인 담장이 일종의 과시이면서 허세의 표현이라는 생각도 막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울타리를 치는 일은 집짓기의 마무리 단계에서 하는 일이다. 아내와 나는 집을 짓는 동안 인터넷을 보면서 우리 집의 울타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많은 이야기를 했다. 물론 거대한 저택의 높은 담장, 그 위에 고압선을 두른 담장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었다.

최소한의 경계표시이면서 지나가는 사람과 마당에 나와 있는 사람이 눈인사를 나눌 수 있는 나지막한 높이, 그리고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지 않도록 듬성듬성 틈이 있는 열린, 그러면서 소박하고 정갈한 울타리 울타리를 만들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아예 인공적인 울타리보다 나무를 심어 생울타리를 만들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비록 가진 것도 없고 감출 것이 많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울타리가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사적인 생활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요즘 같은 험한 시대에 생나무 울타리는 아무래도 허전할 것 같았다. 대신 울타리를 치고 안쪽으로 이미 심어진 남천과 연결하여 울타리를 보완하는 나무를 심자고 했다.

그리고 울타리를 칠 바에는 서구적인 목조주택임을 고려하여 시각적인 차원에서 조화롭게 보이는 디자인을 고르고 싶었다. 그래서 깔끔한 [아트 휀스]가 괜찮다는 데 의견을 모았고 공사를 추진한 것이다.

태풍 [볼라벤]이 차고를 무너뜨린 바람에 울타리 공사는 몇 차례 지연되었는데 추석을 앞두고 더는 미룰 수 없어 지난주 금요일(21일) 공사를 강행했다.

높이 1.2m, 길이 80m의 울타리 공사는 이미 설계대로 재단해온 부품을 조립하는 일이었지만 굴삭기가 동원되고도 세 사람이 해가 떨어진 후에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울타리를 친 후의 집의 풍경은 치기 전에 비해 사뭇 다르다. 안에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차량을 다 볼 수 있고 외부에서도 집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그야말로 경계의 의미를 지닌 개방적인 울타리이지만 어수선하고 조금은 뜬 느낌을 주던 집이 정리된 듯한 느낌과 함께 가족들에게는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는 사람들은 물론 그동안 쉽게 마당으로 들어 왔던 마을 사람들도 울타리 안을 보면서 눈이 마주치면 인사는 할지언정 선뜻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주저하게 될 것이다.

사람의 접근을 막고 내부를 향한 사람의 시선을 차단하겠다는 목적으로 높이 쌓은 ‘담장’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웃들에게는 확실한 ‘타인의 공간’을 만들어 적극적인 소통을 제한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게 된 꼴이다.

몇 해 전 주택이나 공공 기관의 담장을 허물거나 낮추자는 운동이 있었음을 기억한다. 그 후 학교, 행정 기관 등 많은 공공기관이 실제로 밖의 시선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저택에 사는 부자들이 참여했다는 소식을 듣지는 못했다.

아무리 저택의 높은 담장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낮은 울타리 역시 인간의 소유욕을 반영한 것이다. 또 낮은 울타리일지라도 내 것을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타인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울타리는 사적 공간을 구별 짓는 단순한 경계 표시만은 아닌, 내 소유의 재산이니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는 금지의 뜻을 담은 법률상 배타적인 권리표시이기도 하다.

더구나 도시에서는 울타리 안의 안전조차 위협하는 흉악한 일들이 빈번히 터지는 세상이다. 시골에서도 주인 없는 틈을 노린 도둑들에게 농민들의 1년 수확물인 고추 참깨 등 농작물이 번번히 털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그걸 잘 아는 부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줄 담장을 허물고 싶었을 것인가!

나 역시 울타리가 사물의 왕래마저 제한하는 폐쇄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점을 알지만 지금 당장 높은 담장을 허물자거나 울타리마저 걷어치우자는 주장을 앞세우고 싶지 않다. 울타리를 없애자고 말하려면 내가 먼저 울타리를 포기해야 되는데 사실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는 나 또한 그럴만한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뛰어 넘을 수 있는 우리 집의 낮은 울타리를 본다. 파도로부터 마을을 지켜주는 방파제나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처럼 험한 세상으로부터 우리 가족의 안전을 지켜주었으면 하는 기원을 담은 울타리이다.

과연 낮은 울타리마저 걷어낼 수 있는 세상은 올 것인지…? 짧지만 많은 생각이 오락가락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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