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카보 선생님과의 만남  
   
나카보 선생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작년 여름 일본의 도시 비오톱 답사 중 들른 동경 치바현의 시립 요코도소학교(横戸小學校)의 학교숲과 함께 연결되어있는 시민의 숲은 요코도 시의 숨통 역할을 하는 중요한 숲이었다.

   
  ▲ 시민의 휴식처가 되는 푸른숲  
  
 벚나무류와 상수리나무 등 100종류가 넘는 수목과 초본류 등이 잘 자라고 있었다. 7천여 평방미터의 학교 숲은 그곳의 두 배가 약간 넘는다는 요코도시 시민의 숲과 맞닿아 있었다.

시민의 숲과 교정과의 경계가 특별히 없어 학교 숲은 지역주민에게도 개방되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온 김에 시민의 숲이라도 한번 보자 하여 들어선 곳에서 그이를 처음 만났다.

우락부락한 개와 함께 숲을 돌고 나온듯한 운동복 차림의 그녀가 개를 뒤로 물리고 우리들이 편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한참을 기다려 주었다. 참 친절한 일본 여성이구나 싶어서 별 생각 없이 지나쳤다. 다행히 시민의 숲과 학교 숲은 울타리가 없이 이어져 있어서 학교에서 조성한 비오톱(소생물권)을 잠깐 들러볼 수가 있었다.

학교의 비오톱은 학교 숲 속에 작은 샘과 그것을 연결한 서너 개의 연못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참가자들이 연못 주위에 서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자전거를 탄 그녀가 다시 왔다. 그날은 한창 더운 날씨였다. 이마와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그녀는 얼마나 급히 달려왔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일면부지의 이방인들 앞에서 숨을 애써 고르며 자신이 이곳 학교의 선생님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이곳의 비오톱을 만들 때부터 자신이 이 일을 진행했노라고 잠시 안내말씀을 해주겠노라 자청하는 것이었다. 연못 옆에 세워진 작은 안내판에 의지해 이곳저곳을 들러보며 막막해 했던 우리들에게는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몰랐다

나카보 선생의 아이들 셋 모두 이곳 학교를 졸업했노라고 했다. 30대 후반 정도의 연배로 보였는데 50대 중반이라고 한다. 그만큼 건강한 삶을 누리고 있는 듯 보였다. 자신감이 묻어나는 그이의 삶이 나는 참 부러워 보였다.

이곳 학교 안에 있는 숲 속에서 솟아나던 샘물을 연결해 작은 연못을 만드는 일에 나카보 선생이 쏟아 부었던 노력들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따듯한 사랑의 발현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이들을 위해 이 공간을 만들기 위해 그이는 동료 교사들과 함께 2년여를 이곳저곳의 사례들을 찾아가 모니터링하고, 자료 조사를 했단다. 그런 후에 이곳 주민들과 학생, 교사, 그리고 학교운영위원들을 모아 요코도소학교 비오톱 조성위원회를 꾸렸다. 그런 다음 학생들에게 이 연못을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 공모를 해서 연못의 모양을 결정했다.

   
  ▲ 돌고래 모양을 한 연못  
  
연못의 모양은 아기 돌고래가 어미 돌고래를 뒤따라가는 모양을 앙증맞게 표현하고 있었다. 아이들다운 발상이다. 그런 다음 인근의 논흙을 그대로 떠와 연못의 밑바닥에 깔아주고 주위의 식생을 그대로 옮겨왔다.

아이들은 이 곳 숲 속에서 잠자리를 비롯해 개구리, 우렁이, 소금쟁이 등 생생한 자연을 만나는 살아있는 체험을 한단다. 또한 이 숲 속에서는 매년 소박한 음악회도 이루어지고 지역주민들의 아늑한 쉼터의 역할도 하고 있다고 한다. 90년 중반 이루어진 이러한 조성 작업이 이곳을 거쳐 간 아이들에게 얼마나한 기쁨을 주는 장소였는지는 나카보 선생의 환한 얼굴을 통해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 니카보 선생님과의 만남  
   
그녀는 학교 앞 운동장가에 자라나는 부들을 뽑아들고 우리들에게 만져보라고 하였다. 만져보니 어떤 느낌인지, 부들의 꽃과 열매는 어떤 것인지 질문을 하였다. 질문 끝에 그녀는 만약 이런 자연들이 없다면 이곳 어린이들이 평생 이 사실을 모를 수 있노라고 이야기 하였다.

늘 친근하게 만나는 자연을 통해 아이들은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노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이는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배우고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무척 행복하다고 했다.

자연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가져간 헤아려볼 수 없는 재보는 고스란히 일본 사회를 이루는 건강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그이의 말에서 우리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승에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고, 이름을 빛내고 하는 것이 잘사는 것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인생은 기쁨과 슬픔, 분노와 즐거움의 순환으로 점철되어있고, 이것이 곧 우리의 삶에서 주는 의미가 있다고 나름대로 생각한다.

의식주가 해결되었다고 잘 사는 것인가? 삶의 보람은 무엇인가. 육체적인 만족보다 정신적인 충만을 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무엇이 진정 행복한 삶인가? 여행 기간 내내, 그리고 귀국하여서도 줄곧 나카보 선생이 나에게 던져준 화두가 떨어지지 않았다.

행복의 에너지가 충만한 그이의 삶은 오랫동안 이 사회의 건강성과 공동체의 행복충분조건을 위해 일해 왔다는 시민단체 활동가의 삶과, 시민사회운동의 정체성을 뒤돌아보게 해주었다.

이번 여행에서 정말 우연하게 만난 나카보 선생이 참 행복해 보였던 것은 자신의 삶과 삶의 근간에서 이루어지는 행복하고 신이 오르는 여러 관계와(자연과 숲, 그리고 지역공동체) 활동들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적극적인 참여와 이를 통해 어떻게 삶을 누리고 살아 갈 것인가 하는 그이와 같은 마음의 자세도 중요하다고 본다. 여기에 그이의 행복의 비밀이 숨어있다. 이 외에도 그이의 삶을 이루는 여러 조건들이 충분히 작용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좁은 소견으로 줄곧 생각해서 이룬 결론이 그 정도이다.

일본 치바현 요코도 시의 나카보 선생이 자신의 삶 속에 숲 하나를 들여놓고 행복해하던 모습은 오래도록 나의 삶 속에서 잊혀 지지 않을 환하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나의 여행은 이렇게 마음속에 오래 남을 풍경들을 만나기 위해 늘 길 위에 서서도 쉬지 않고 사색하고 깨달아가는 여정을 반복할 것이다.


김경일(시인/광주생명의숲 사무국장)/ okpoe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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