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는 남이 지켜 주는 것이 아니다

유식한 척 한 번 해보자. 梁上君子(양상군자)란 고사성어가 있다. 말이 점잖아 군자지 이는 도둑을 가리키는 말이다. 후한 말엽, 중국에 진식이란 관리 집에 한 밤중 도둑이 들었다. 그는 가족들을 불러 모아놓고 말했다.

“사람은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악인(惡人)이라 해도 모두 본성이 악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습관이 어느덧 성품이 되어 악행도 하게 되느니라. 이를테면 지금 ‘대들보 위에 있는 양상군자(梁上君子)도 그렇다.”

도둑이 대들보 위에서 내려와 빌었고 관리는 그를 용서했다. 만약에 그 관리가 탐관오리였고 도둑에게 험한 욕이라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어쩌면 위해를 가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도둑이면 네 놈은 허가받은 도둑놈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다.

세상에 돌아다니는 말에 ‘허가 받은 도둑’과 허가받지 않은 도둑‘이 있다고 한다. 허가받지 않은 도둑은 진식이 말한 양상군자(梁上君子)를 말하는 것이고 허가받은 도둑은 언론에 매일같이 보도되는 몇 십억, 몇 백억, 심지어 몇 천억을 꿀꺽 삼킨 도둑들이다. 이 도둑을 일컬어 점잖게 재벌이라고도 하고 고위공무원이라고도 하고 투기꾼이라고도 한다. 심지어 최고의 권력자라고도 하는데 차마 이름은 밝힐 수가 없다.

도둑을 정리하면 남의 재물이나 혹은 나라의 재물이나 국민의 재산을 불법으로 훔친 인간을 말한다. 그 중에는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재물을 훔친 자도 있다. 또 있다. 자신이 해야 할 의무를 다 하지 않고 국민에게 고통을 준 자도 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 선 이후 부쩍 비난을 받는 부류가 있다. 검찰과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재벌이야 원래 욕을 많이 먹었으니까 여기서는 제외하기로 하자. 검찰 권력은 할 얘기가 태산 같지만 여기서는 뺀다. 왜냐면 오늘의 주인공은 언론이기 때문이다.

기자를 무관의 제왕이라고 한다. 긍정적인 의미의 제왕이다. 필검이라 했듯이 펜이라는 칼을 휘둘러 악을 제거하라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국민들은 머리를 가로 젓는다. 언론의 가장 큰 기능인 감시기능과 고발기능은 퇴색하고 부정적 기능인 권력화만이 강화됐다.

그 이유는 대부분이 언론의 권력화 때문이고 권력화가 되는 이유 역시 정치권력의 유혹에 넘어가기 때문이다. 박정희 독재시절, 독재 권력에게 아부·아첨하던 언론인들은 유정회라는 가짜 금배지를 달았다. 그 숫자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릴 것이다.

언론인들 중에는 박정희 전두환을 단군이래 최고의 지도자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양한 자들도 있었다. 박정희 영구 집권 기도에 선봉장이 되었다. 그들 스스로 언론에 족쇄를 채웠다. 불의한 권력을 향해 필검을 휘둘러야 할 언론인들이 불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들이 주는 꿀물을 받아 마셨다.

19대 국회에도 20명이 넘는 언론인이 금배지를 달았다. 정치가 언론인의 출입금지 구역은 아니다. 왜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키느냐는 항의도 받는다. 그러나 칭찬을 하려면 칼럼을 쓸 필요가 없다. 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그들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지금 불의한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불법비리를 저질러 감옥에 있는 언론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한 때 대통령의 멘토라는 최시중도 예외가 아니다. 일일이 손을 꼽을 수 없을 정도의 범법자들의 이름 중에 언론인이 얼마나 많은가.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은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 고 했다. 헷갈린다.

신뢰를 생명으로 해야 하는 언론이 불신의 대명사로 꼽힌다. 그 중심에 조중동이 있다. 3년 전 해운대 태풍사진을 버젓이 신문 1면에 싣고 무고한 청년을 어린이 성폭행법으로 선명하게 얼굴을 신문에 등장시켜 일생을 망치게 한 조선일보의 죄는 무엇으로 갚을 것인가.

기자란 세상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대하는 직업이다. 그 정보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독극물이 되기도 하고 명약이 되기도 한다. 한국기자들이 저지르는 가장 끔찍한 해악이 바로 왜곡과 날조와 과장이다. 그로 인해 언론 자체가 중병이 들고 나라의 꼴을 얼마나 망가졌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는가. 심지어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씻을 수 없는 죄악이다.

군사독재 시절, 군부독재의 말을 듣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웠다. 그래서 양심을 속이고 무릎을 꿇었다고 이해하자. 그럼 지금은 어떤가. 지금도 목숨이 위협을 받는가. 스스로 대답을 해 보라.

언론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때다.

언론에 종사하는 후배들이 아직도 있다. 그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면 서로가 답답하다. 서로들 속마음을 다 안다. 그럴 때 마다 떠오르는 얼굴이 송건호 선생님이다. 고등학교 은사이기도 하지만 언론인들의 사표다.

가장 딱한 것은 젊은 기자들이다. 취재 현장에서 욕설을 들으며 쫓겨나는 젊은 기자들. 그들이 언론에서 펼치고자 했던 푸른 꿈은 지금 산산이 부서졌다. 술이 취해 눈물을 흘리는 그들에게 해 줄 말이 없다.

4.19 혁명 당시 현장에 있었다. 서울신문이 불타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5.18 광주 학살 당시 광주 KBS와 MBC가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불탔다. 그들은 권력의 시녀로서 어떤 보도를 했으며 국민으로부터 어떤 끔찍한 욕을 먹었는지 다 기억한다. 불타오르는 건물을 보면서 국민들이 박수를 쳤고 기자들은 참회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눈물을 흘리는 기자들이 결코 생겨서는 안 될 것이다. 모두가 그들이 할 탓이다.

언론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보장되어야 할 자유는 따로 있다. 왜곡 편파 과장 허위보도는 보장되어야 할 언론자유의 영역이 아니다. 이런 오도된 자유는 국민에 의해 응징되어야 한다.

기자란 직업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얼마나 명예로운가. 그러나 명예는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남이 지켜주는 것도 아니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