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붙은 “양심을 팔지 맙시다”

사무실 건물 화장실에는 어느 곳에나 벽에 붙어 있는 글이 있다. 8자로 된 문장이다. “양심을 팔지 맙시다.”
화장실에서 무슨 양심을 판단 말인가. 누가 화장실 양변기라도 떼어 간단 말인가.

눈치 빠른 분들은 벌써 알았을 것이다. 이 건물 화장실에는 ‘양심을 팔지 말라’는 과격한 표현을 했지만 어떤 화장실에는 ‘한 발만 더 앞으로’라든지 ‘신사는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정 조준’등의 부드러운 표현이 있다.

매일 몇 번씩 자의든 타의든 화장실에서 양심을 점검한다. 아주 적절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요즘 양심의 실종을 탄식하는 소리가 도처에 넘쳐 나기 때문이다. 심지어 양심이란 말은 사전에나 있는 말이란 소리까지 나올 판이다.

저 문장을 청와대 화장실이나 국회, 정부청사, 혹은 정당의 화장실에 써 붙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아마 펄펄 뛸 것이다. 전혀 해당이 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하루에도 몇 번씩 양심의 통증을 느껴야 하는 정신적 부담을 겪기가 너무나 싫기 때문일 것이다.

신이 인간에게 양심을 부여한 뜻을 어리석은 머리로 헤아리기 지난하지만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면 ‘양심’은 꼭 있어야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도 생각한다. 왜냐면 양심이 없으면 세상은 바로 짐승의 세계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어제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를 했다. 머리를 깊이 숙여 사과를 했다. 국민들은 이대통령 사과에 익숙하다. 이미 5번이나 사과를 받았고 이번이 6번 째 사과다. ‘사과 전문 대통령’이란 씁쓸한 비아양도 나온다. 사과전문 특별 보좌관을 둬야 할 판이다. 딱한 일이다.

어느 누가 즐겨서 잘못을 저지르랴. 더구나 잘못을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국민이 하늘이라고 하지만 대통령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다. 벼슬이 그렇다는 것이다. 국정의 많은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국가의 대표다. 대외적으로 대한민국의 간판이다.

이런 대통령이 사과를 하고 더구나 여섯 번 씩이나 공개적으로 사과를 했으니 대통령의 표현대로 억장이 무너질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억장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사과 같은 것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대통령의 성질이 보통인가. 그리구 보면 여섯 번임에도 불구하고 사과는 해야 되겠다고 결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억장이 무너진다는 것은 ‘죽을 맛’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닌가.

광우병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서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서울 시내를 촛불이 대낮처럼 밝혔을 때 이명박 대통령은 깊은 밤, 청와대 뒷산에 올라 ‘아침이슬’인지 ‘님을 위한 행진곡’인지를 불렀다고 했던가.

그리고 국민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했다. 그 다음 사과들은 일일이 다 기억하지도 못할 지경이다. 그러나 사과를 밥 먹듯 하면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시들해서 약발이 떨어진다. 받는 사람은 ‘또 사과냐’ ‘이번엔 배로 바꿔라’하면서 웃을 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왜 사과를 했는지 국민들은 다 안다. 상왕이라고도 하고 만사형통이라고도 하는 형님 이상득 전 의원이 구속되면서다. 사실 이상득이 구속되기까지는 그대로 버틸 힘이 있었는데 덜컥 쇠고랑을 찼고 그 후 소문 안 난 실세라는 문고리 비서 김희중이 구속되고 금덩어리 선임행정관 김세욱이 또 구속됐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 곁에서 실세라고 목에 힘주던 인물들의 구속은 줄을 이었다. 그러다가 이상득과 김희중 문고리 부속실장. 금괴행정관 김세욱이 구속되면서 정점을 이루었다. 대통령의 멘토라는 최시중을 비롯해서 신재민 김두우 등 언론인 출신 실세 걸레들도 고랑을 찼다. 쇠고랑 찬 측근 실세들이 너무나 많아서 누가 누군지도 잘 모를 판이 됐다.

좌우간 판이 이렇게 되니 진짠지 가짠지는 모르겠으되 결국 억장이 무너지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까지. 이명박 대통령은 고개를 깊이 꺾은 것이다.

억장이 무너지는 것은 국민이다

어느 험구가 친구가 한 소리가 아프다. 어쩌면 이명박 정권은 그렇게도 골고루 썩었느냐는 것이다. 북한을 가리켜 공평하게 가난하다고 했는데 이명박 정권은 피차 억울할 것이 없이 공평하게 부패한 정권이라는 것이다. 틀린 말이 아닌 것이 입법 행정 사법부 할 것 없이 이론을 제기할 건덕지가 없다.

박희태 국회의장이 의장직을 사퇴하면서 허리를 꺾어 공개 사과했다. 돈 봉투 돌린 사건이다. 김병화 대법관 후보 청문회에서 나타난 온 갓 지저분한 비리들, 논문 쓰면 박사 감이다.

이들이 지녀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을 그들은 팽개쳤다. 양심이다. 사실 양심은 상식과 다름이 없다. 국민들로부터 욕먹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이들이 잘 난 인간인가. 아니면 욕하는 국민이 못 난 인간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되는 것을 창문을 통해 보면서 환하게 웃고 있는 이인규 홍만표의 양심은 그 때 화장실에 갔는가. 그 때 화장실에 우리 사무실 벽에처럼 ‘양심을 팔지 말자’고 써 있었다면 이들의 양심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7월25일 뉴스는 MBC 김재철 사장이 무용가 J와 작년에 일본 오사카 휴양지 호텔에서 동숙을 했다고 보도했고 J의 남편인 변호사가 이를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남편은 이 사실을 공개했다. J가 혼자 자기 무섭다고 해서 부득이 동숙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상식은 이를 그냥 지나쳐 버릴 수가 없다. 그러나 예상했듯 김재철은 부인했다. 이 역시 양심을 팔아먹은 것이다.

여성들 화장실에는 들어가 본 적이 없어서 어떤 글이 쓰여 있는지 모른다. 아내에게 물어 봤다. 없다고 했다. 그러나 사실 화장실이라는 곳이 혼자서 조용히 생각하고 그 생각 중에는 반성과 후회와 그리고 미래에 대한 설계도 있다.

남이 취재한 소중한 자료를 몽땅 빌려다가 자기 이름으로 책을 써서 베스트 셀러가 되고 떼돈도 번 작가가 대법원에서 표절이라고 패소 판결을 했는데 그 얘기는 너무 지저분하니 그만 두자. 그러나 진짜 소망하는 것은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반성을 하고 양심이 회복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5.16 군사반란이 피치 못 할 선택이라고 하다가 이제 ‘국민의 선택’이라고 하는 것은 분명히 양심과는 등 진 판단이라는 생각이다.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5.16 쿠데타를 ‘50% 국민의 선택이라고 해서는 이건 정말 양심을 파는 것이다.

오늘도 칼럼을 쓰다가 화장실에 갔다. 역시 ‘양심을 팔지 맙시다’ 라는 경고는 나를 꼬나보고 있었다. 니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다고 화장실에 붙어있는 나까지 들먹이며 수선을 떠느냐고 야단을 치는 것 같다. 할 말 없다.

“그동안 저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를 지켜보면서 하루하루 고심을 거듭해왔다”며 “근자에 제 가까운 주변에서, 집안에서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나서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드렸다”고 말했다

억장이 무너진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다. 이를 보며 억장이 무너진 사람들이 참 많을 것이다. 전혀 사과할 생각이 없는 사람의 사과라고 억장이 무너진 국민들이 많다.

사과를 하려면 자신의 진솔한 사과를 온 국민이 가슴으로 느낄 수 있도록 미리 시간을 정확하게 예고하고 방송을 했어야 한다. 그러나 기습적이다. 물론 빨리 사과를 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 때문일 것이라고 좋게 해석을 해야 되겠지만 그렇게 안 되는 것이 바로 양심 때문이다.

뉴스는 저축은행 관련 뇌물받고 복역중인 은진수가 가석방 된다는 소식을 전한다. 전직 검사인 은진수를 설명한다는 것은 그에 대한 모욕이다. 유명인사다. 이명박 대통령의 억장이 무너지는 대국민 사과는 이런 형식으로 속내를 들어냈다고 한다. 어떤 친구가 ‘엿 먹어라’ 하는 표현을 써서 야단을 쳤다. 국가 원수에게 그런 버릇없는 말을 하면 안 된다고 말이다. 이 정도는 되야 예의를 아는 사람이다.

대통령의 억장이 무너지는 사과에 역시 억장이 무너진 또 다른 인간들이 있다. 기자와 방송사 앵커 들이다. 앵커가 아니라 앵무새지만 아마 양심의 통증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 앵커들도 대국민 사과를 해야지. 하긴 이 정도 밖에 쓰지 못하는 나도 대국민 사과를 해야겠다.

사무실 화장실에 붙어있는 ‘양심을 팔지 맙시다.’ 이걸 복사해서 청와대를 비롯한 언론사 화장실, 특히 조중동 화장실, 국회, 정부청사, 검찰청 등등에 보냈으면 좋겠다.

과연 양심이란 팔아먹을 수 있는 것일까. 아니다. 양심은 죽은 듯 되살아 나고 팔린 듯 되돌아오고 구박을 받으면서도 사라지지 않는 불사조라는 생각이다. 영생불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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