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승용차들이 씽씽 달리는 강남지역 교차로에 서서 푸른 신호등이 켜지길 기다리고 있을 때 문득 인간은 도대체 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차들만 보인다. 고층빌딩의 숲, 유흥주점의 현란한 네온사인, 물질만능의 파도가 넘쳐 흐른다. 사람이 없다.

몇 십 만원 몇 백 만원 나가는 개가 있다. 혹시나 개가 다칠세라. ‘이 개가 얼마짜린 줄이나 알아요?’ 눈을 부라리는 사람도 있다. 개를 잃어버린 사람이 거금의 현상금을 걸고 눈물로 호소한다. 그럴 때 문득 인간은 개만도 못한 존재가 아닌가 서글퍼진다.

▲ ⓒ서프라이즈 누리집 갈무리

지진이 나면 수 천 명, 수만 명의 목숨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전쟁이 나면 수십만, 수백만의 목숨이 사라진다. 덧없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정말 인생이 한 낱 티끝이로구나 허망한 생각도 든다.

天地之間萬物之衆(천지지간만물지중)에 唯人(유인)이 最貴(최귀)하니,

1541년 정치가이자 학자였던 박세무가 지은 동몽선습(童蒙先習)에 나오는 글이다. 천자문을 익힌 어린이들의 필수 교양서였다. 여기서 가장 강조되는 것 역시 ‘사람’이다.

존재하는 세상 만물 가운데 인간이 가장 귀하다는 말이다. 인간이 없는데 세상이 무슨 소용이랴. 그래서 인간은 존귀하다. 지진으로 고층건물이 무너졌을 때 한 사람의 인명이라도 더 구하려고 위험속에 뛰어드는 구조대의 모습을 보며 인간 생명의 존귀함을 더욱 느낀다.

인간 경시풍조가 시대를 풍미하고 있다. 내 집을 지키겠다고 농성을 하던 시민이 경찰과 충돌, 불에 타 숨진다. 파업을 하던 노동자들이 자살을 한다. 인간의 권리를 주장하며 분신자살을 한다. 왕따를 당한 초등학생 중학생이 학교 옥상에서 투신한다.

박정희 독재 유신시절, 경호실장 차지철은 민주화를 위해 거리로 뛰쳐나온 시위대들을 보면서 박정희에게 큰 소리 쳤단다. ‘탱크로 몇 만 명 깔아 버리면 끝납니다.’

그러나 아니다. 정말 아니다. 독재가 먼저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다’ 아무리 돈이면 안 되는 일이 없어도 ‘사람이 먼저다’. 아무리 권력이 좋다 해도 ‘사람이 먼저다’

사람이 없으면 세상이 왜 필요한가.

정치는 국민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왜 좋은 정치가 필요한가.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다. 자유당 독재시절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가 국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은 것도 역시 인간이 무시된 정치에 대한 저항이었다.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 중에는 ‘국민이 하늘이다’라는 것이 있다. 왜 국민인가. 국민은 누구인가. 사람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먼저다’ 사람보다 먼저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우선의 가치고 선이다.

“이념보다, 성공보다, 권력보다, 개발보다, 성장보다, 집안보다, 학력보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우리 국민은 누구나 원한다. 아니 인간이면 누구나 원한다.

가장 소중하면서도 소외당하는 인간들. 억울하게 소외당하면서도 그저 참고 살아가며 팔자타령이나 하는 국민들, 이제 팔자가 아니라 잘못된 정치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대통령 형님을 비롯해서 측근이란 사람들이 불법 범법 행위로 처벌을 받는다. 대법관 후보자들이 온갖 비리에 솔선수범을 했다. 인권위원장이란 자가 반인권행위에 선봉장이다. 권력에 편에 서서 비리를 덮고 축소수사를 하고 야당인사는 탄압을 받는다고 국민은 믿고 있다.

멀쩡한 민주정부를 뒤엎어버리고 쿠데타를 일으킨 세력들의 행위가 불가피했다고 옹호하고 역사의 심판에 맡기겠다는 사람들은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내 꿈이던 너의 꿈이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내 꿈을 말하기 전에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 꿈을 이루겠다는 것은 거짓이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겠다는 것이다. 쿠데타가 불가피했다는 억지 주장과 다를 것이 없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사람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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