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더 없다, 야당은 살 길을 찾아라

참담한 경험 한 가지를 고백한다. 고교시절 럭비선수였다. 당시 전국에서 몇 개 없는 럭비팀이라 우승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 가운데 우리 팀이 끼어 있다.

전국체전 예선전이 열렸다. 우리와 붙은 팀은 약체팀. 자신감에 경기 전날 연습도 안 했다. 아침에 합숙소에서 일어나니 몸이 무겁다. 선수들 모두가 그랬다. 그래도 까짓 거 했다. 한쪽 팔 접고 상대해도 문제없다고 큰소리쳤다. 패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 ⓒ광주인

경기가 끝났다. 우리 팀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질 수 없다고 생각한 경기에서 진 것이다. 상대는 죽을 각오로 뛰었고 교만으로 꽉 찬 우리들은 숨이 차 허덕였다. 연습을 게을리 한 몸은 천근이었다. 패인은 딱 하나. 교만이었다. 교만은 바로 무덤으로의 직행코스다.

오랫동안 한국정치를 보아 온 원로 언론인이 걱정을 했다. 민주통합당이 오만해졌다는 것이다. 그럴 리가 있느냐고 했다. 오만할 근거가 있느냐고 물었다.

물으면서 생각했다. 근거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그렇게 느꼈다는데 시비 걸 일이 아니다. 사람마다 느낌은 다 다르니 말이다. 느낌이 참으로 중요하다.

초청받아 가기도 하고 스스로 찾아가기도 하는 정치행사가 꽤 있다. 어제도 세종시에서 열린 균형발전 기념식에 갔었다. 사람들 참 많이 왔다.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균형발전과 별 관련 없는 사람들이다. 손에 명함 한 움큼씩 쥐고 있다. 총선에 출마할 예비후보들이다. 전국에서 모인 것이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목표인 듯하다.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섰다. 선거 홍보물에 쓸 모양이다. 노력이 가상하기도, 안쓰럽기도 하다.

노 대통령 탄핵 이후 한나라당 인기가 바닥일 때의 총선보다 더 치열하다는 느낌이다. 그들을 비판할 생각은 전혀 없다. 정치도 경쟁인데 치열하게 열심히 해야 한다. 정당한 방법으로 말이다. 한나라당과 일대일의 구도로만 붙으면 승리할 가능성이 많은 선거라서 예선이 본선보다 더 치열한 것 같다.

민주통합당 지도부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새로 출범한 지도부라서 여러 문제가 많을 것이지만 절대로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교만이다. 창당 초유의 한나라당보다 앞선 지지율 격차가 10.8%지만 축하만 할 일이 아니고 경구로 받아들이는 것이 이롭다.

이유가 뭘까. 지금의 민주통합당의 지지율은 이명박 대통령 덕분이다. 한나라당 덕이다. 민주통합당 잘하는 것이 많아서 지지율 높아진 거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나라당 돈 봉투와 민주당 돈 봉투가 다른 것이 뭔가. 다만, 집권 5년 차에 접어든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에는 정말 기대할 것이 없고 그나마 제1야당이라는 민주통합당이 있어 기대하는 것이다.

국민경선이라는 민주통합당의 전당대회가 국민의 호응을 얻고 한명숙 대표를 비롯해 문성근 박영선 등 개혁적 인물들이 지도부를 형성했고 김부겸이 사지인 대구로 뛰어들고 호남의 다선의원들이 서울로 지역구를 옮긴 것도 긍정적이다. 차제에 호남의 몇몇 의원들이 스스로 물갈이에 자청해 나선다면 상승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다.

▲ ⓒ광주인

이명박 대통령이 운명을 걸고 강행한 4대강 개발은 실패했다는 것이 국내외 전문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하루라도 빨리 폭파해 버려야 한다는 말까지 해외 권위 있는 학자들에게서 나오는 판이다. 결단을 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천안함 사건도 시한폭탄이다. 어찌 그뿐인가.

디도스 사건은 헌법기관을 공격한 국가변란 급 수준의 범죄라 할 수 있다. 지난 지방선거 때 선관위의 투표소 변경사태 역시 반드시 진상이 밝혀져야 할 민주주의 파괴행위다. ‘뉴스타파’ 보도를 본 국민들은 선관위의 동문서답에서 분명하게 불순한 세력이 개입된다는 심증을 가졌을 것이다.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이런 반민주적 행위가 묵인된다면 해외거주자들의 부재자 투표를 비롯해서 하루아침에 투표소가 변경되어 억지로 기권을 해야 하는 수십만 명의 유권자가 발생할 것이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민주통합당으로 여론이 기우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민주통합당으로서는 원님 덕분에 나팔을 분 것이다. 철저하게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교만은 제 발로 찾아가는 무덤이다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라는 경구가 있다. 인간의 마음이란 교활하기 짝이 없어서 조금만 형편이 나아졌다 싶으면 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고생하던 시절은 까맣게 잊는다. 내가 체험한, 교만 떨다가 형편없이 무너진 럭비경기처럼 교만은 참담한 대가를 치른다. 운동경기야 져도 할 수 없지만 이번에 치르는 선거는 문제가 다르다.

지금 민주통합당이 총선과 대선이라는 절체절명의 결전에 임하는 자세는 제대로 되어 있는가. 통합이 됐든 연대가 됐든 한나라당과 일대일 구도를 만들기 위한 정당 간의 조율이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는가. 10% 이상을 앞서는 여론을 빙자해 진보세력에 일방적 양보를 요구하려는 속셈은 아닌가.

선거는 만 표 차이로 지던 1표 차이로 지던 같다. ‘문세표’라는 문학진의 패배는 반드시 남의 일이 아니다. 한명숙을 낙선시킨 노회찬의 서울시장 후보 완주는 이미 고전이 되어 버렸지만 지난 선거 때 강원도 인제에서도 민노당 박승흡 후보와의 단일화 실패로 한나라당은 72표 차이로 승리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30여만 표 차이로 대선에서 승리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50여만 표 차이로 승리했다. 이번 총선에서부터 230만여 명이 해외동포가 부재자 투표를 한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는 유독 부재자 투표에서 패했다. 부재자 투표가 야당이 서울에서 패한 것은 최초라고 한다. 그 이유는 규명됐는가.

갑작스러운 투표소 변경으로 대량의 기권표가 발생한다면 이를 어쩔 것인가. 또다시 디도스 공격을 받는다면 무엇으로 방어를 하겠는가. 이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철저하게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민주통합당은 당력을 기울여 정부에게 촉구해야 한다. 당 지도부에 물어봤다. 성명서도 발표했다고 한다. 성명서로 될 일이 아니다. 완전히 대책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할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야권 단일후보를 위한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가. 협상과정에서 통합진보당의 과욕도 비판받아야 하지만 민주통합당의 협량 역시 매섭게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세상없어도 일대일 구도를 만들어 싸워야 한다.

홍보전략을 완벽하게 세워서 국민에게 설득력 있게 홍보해야 한다. 일과성 홍보가 아니라 선거가 끝나 승리의 축배를 들 때까지 멈추지 말아야 한다.

조중동과 공중파의 의존하던 생각은 버려도 좋다. 지금 조중동이나 공중파의 신뢰성은 말할 필요도 없이 바닥이다. 종편은 0% 대의 애국가 시청률이다. 지난 지방선거도 트위터나 SNS가 없었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MBC가 공정보도를 요구하며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노조의 승리는 시대의 흐름이고 국민의 요구다. 아무리 이명박 정권이 언론을 장악하려고 해도 이제는 안 된다. 노종면 이근행을 비롯한 해직기자들이 만들어 내는 ‘뉴스타파’ 보도는 방송되자 바로 20만의 접속을 자랑한다. 나꼼수는 어떤가. 수백만의 국민이 듣고 있는 방송이다. 이제 이 정권과 한나라당은 몸부림쳐봐도 소용이 없다. 국민의 요구에 순응하는 길만이 사는 길이다.

▲ 문화방송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면서 국민에게 사과인사를 하고 있다. ⓒ미디어오늘 갈무리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가 바로 이리 얽히고 저리 얽힌 연줄이다. 그래서 끼리끼리 정치가 판을 친다. 이걸 칼 같이 끊어야 할 것이다. 새로 구성된 민주통합당의 지도부는 비교적 연줄에 부담이 없다. 있어도 연줄을 끊어야 한다. 내 사람이라고 끼고 도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국민들은 냉엄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만약에 민주통합당이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국민은 돌아설 것이다. 돌아서는 국민들이 가엾지 않은가.

한나라당은 지금 결사적이다. 천 길 낭떠러지 끝에 서 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박근혜는 자신이 버릴 수 있는 모든 기득권을 버릴 것이다. 총선출마도 포기할 것이다. 정수장학회도 던질 것이다. 아버지 박정희의 과오도 시인하고 사과할 것이다. 자신이 집권하면 김정은과 정상회담도 할 것이라고 약속할지도 모른다. 자신과 관련된 비리도 먼저 고백할 것이다. 이명박 정권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할 것이다. 모두 다 던지고 국민에게 심판해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747에 속아 넘어간 순진한 국민이다.

이에 대한 민주통합당의 대책은 있는가.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한다.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민이 민주통합당을 신뢰하도록 해야 한다. 신뢰처럼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 한나라당이 허우적거리는 것도 이명박 정권의 추락한 신뢰 때문이 아니던가.

교만은 무덤으로 통하는 직통코스다. 스스로 자살을 택한다면 무슨 수로 막을 수가 있으랴.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