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가 패하면 불의가 정의가 된다

전쟁에 이기면 악마도 천사가 된다. 그러나 늑대가 양이 될 수 없듯이 악마도 천사는 될 수 없다. 히틀러가 유럽을 휩쓸었어도 그는 독재자였다. 악마였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그들도 독재자다.

악마는 천사로 위장한다. 듣기 좋은 말로 선량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상냥한 미소로 유혹한다. 정치집회에 갈 기회가 많다. 많은 얘기를 듣는다. 좋은 말은 골라서 쓴다.

▲ 문재인.

최근 당권을 다투는 정치집회에 몇 번 가 봤다. 열기가 뜨겁다. 대회장을 가득 메운 당원들 머리 위에 열정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온갖 아름답고 훌륭한 말들이 난무한다. 말이 의미하는 그대로라면 장내는 감동이 휩쓸어야 한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감동이 없다. 이유는 무엇일까.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목청을 올려서 떠들어도 공허하다. 언행일치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스럽게 느낀다.

문득 지금 저렇게 열변을 토하고 있는 바로 당사자는 자신의 말을 믿고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도 자기 말을 믿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자신도 믿지 못하는 말을 남에게 믿어 달라는 사람도 참 불쌍하다. 그게 우리 정치인들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 비극이다.

인간사회에서 신뢰는 참으로 소중하다. 지금 세상이 온통 불신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은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한국정치의 최정상에 있는 대통령이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국민들의 평가다. 대통령이 불쌍하게 느껴진다.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해도 국민들은 웃는다. 웃는 이유를 대통령은 모를까. 지금 뜨겁게 다시 불붙고 있는 BBK 사건. 이 사건으로 국민으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정치인의 한 사람인 일명 ‘깔때기’라는 정봉주 전 의원이 1년이라는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됐다. 이건 전 세계에 조롱거리라고 한다.

대법원이 판결했는데 세계적인 조롱거리라면 국민들이 불쌍하다. 법이 존중받지 못한다면 국민은 의지할 곳이 없다. 정봉주 전 의원이 검찰에 출두하는 날 검찰청 청사 앞에는 구름 같은 인파가 몰렸다. 그들은 울고 웃으며 정봉주를 보냈다. 웃음 속에 눈물이 배어 있다. 쥐를 잡으러 교도소에 간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군중들의 얼굴은 웃고 가슴은 운다.

군중들은 묻는다. 박근혜는 무사한데 왜 정봉주만 구속이냐. 박근혜도 정봉주와 똑같이 BBK가 이명박 소유라고 하지 않았던가. 더구나 이명박 자신이 BBK는 자신이 만들었다는 동영상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거의 전부 보았다. 이러니 정봉주의 구속은 부당하다는 국민들의 주장은 지극히 정당한 것이다.

땅에 떨어진 대통령의 신뢰는 이 나라 정치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비상이 걸렸다. 대타자로 나온 박근혜는 비대위를 구성했다. 한나라당 의원 7명이 다음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는데 마치 살신성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관이다. 한나라당 의원 전원이 불출마 선언을 해도 국민들은 놀라지 않을 것이다.

국회의원의 존재 의미

국회의원들은 열 받겠지만 국회의원들의 값은 얼마나 될까. 사람의 값이 얼마나 되느냐고 따지는 것이 잘못인 줄은 안다. 허나 값을 따지게 만든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정치 집회장에 가면 모두가 국회의원 지망생이다. 명함을 받으면 무슨 직함이 그리도 많은지 어지럽다. 빠지지 않는 것이 향우회 직함이다. 순수하지 않다. 요즘은 선거철이 되어서 출판기념회가 많다. 하루에도 많은 초청장이 온다. 꼭 축사를 해 달라는 사람도 있지만 거절이다. 축사를 해 줄 말이 없다. 있긴 있다. 제발 국민 위해서 국회의원 꿈 좀 접으라는 당부다.

막대기만 꽂아놔도 당선이 되는 곳이 있다. 호남과 영남의 후보들이다. 지극한 내 고장 사랑이 사람이야 됐든 안 됐든 상관없이 꾹꾹 찍어준다. 나라 꼴 망치는 지역감정이다. 그래서 당선된 후 4년 동안 국회에서 말 한마디 못해 우리말도 잊어버렸다는 우스개도 있다. 이러니 국회의원을 누가 제대로 대접을 해 줄 것인가. 대접해 달라고 하면 정신 나간 인간이다.

지역감정이란 난공불락에 대항해서 보통 배짱으로는 출마할 염두를 못 낸다. 나가면 딱 미친놈 소리 듣는다. 그러나 지역감정의 벽이라는 것이 나라를 망치는 망국병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한 정치인이 있다. 노무현이었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김부겸 의원이 당선이 비교적 수월한 군포 지역구를 버리고 대구로 내려갔다. 역시 장한 일이다. 이렇게 벽을 계속 두드리면 벽은 깨지게 되어 있다.

부산은 난공불락의 한나라당의 철옹성이었다. 감히 어느 누구도 넘보지 못할 한나라당의 성지. 부산이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지방선거 때 김정길 전 의원이 시장선거에서 44.5%를 득표했다. 고무적이다.

그동안 자신의 정치 행보에 부정적이던 문재인이 출마를 결정했다.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오히려 구차하다. 어느 누구도 문재인의 출마를 부정적으로 생각지 않는다. 지극히 당연하다. 출마해야 한다.

부산·경남 민주세력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문재인은 야당의 황무지인 영남에서 거부감이 가장 희석된 정치인이다. 영남 정치인을 거부하는 호남에서도 우호적인 정치인이다.

자신이 정치인으로 불리는 것도 거북해하던 문재인이 마침내 출마를 결심하게 된 것은 잘못 뿌려진 정치의 씨앗을 걷어 드려야 한다는 의무감이라고 믿는다. 말로만 떠들면 그것은 도리가 아니고 신념에도 배치된다.

부산·경남에서 심판 받음으로써 야당의 뿌리를 내리고 출마만 하면 쥐나 개나 당선이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보자는 것이다. 당선된다는 보장이야 없지만 그가 출마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아울러 문성근의 부산 출마 역시 애절하고 비장한 소망이 있다. 이들의 출마야말로 정치인으로서의 신념과 명분을 모두 갖춘 당당한 출마라고 할 수 있다.

민주통합당이 국민의 기대를 받으며 출범했다. 민주통합당은 출범하자 바로 지지율로 한나라당과 어깨를 같이했다. 이는 바로 민주통합당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말하는 것이며 야권통합과 정권교체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도 국민이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동안에 계파와 지역주의 구태정치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민주당이 이제 환골탈태의 모습을 보여주게 됐다. 지역주의에 안주하여 당선된다는 보증수표가 사라지는 과정을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민주통합당이 국회의원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당당하게 보여주게 될 것이다.

문재인 출마의 시대적 의미

아마 이런 질문을 할지 모른다. 문재인이 국회의원에 출마를 하는데 무슨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느냐고. 대답하겠다. 문재인의 출마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노무현은 지역구도 타파에 온몸을 바쳤다. 정치를 시작한 이래 부산이라는 강고한 지역적 장벽을 부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 했다. 부산에서 초선 이후 다음 선거에서 낙선하고 시장 선거에서 떨어지고 세 번째 북강서을에서 떨어졌다.

세 번째 경우는 의미가 깊다. 정치 1번지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 서울 종로에서 무난히 당선될 수 있는 조건이었지만 그는 부산으로 내려왔다. 당선의 보장이 없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 노무현의 정치철학이었다. 그리고 떨어졌다. 얻은 것은 ‘바보 노무현’, 피눈물 나는 별명이었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평생을 떨어져도 정치를 단념하지 않는 한 부산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노무현이 정치를 하는 의미는 민족의 화합이었다.

정치라면 손을 저었던 문재인이 부산에서 출마를 한다. 출마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이명박과 한나라당 정권의 잘못된 정치를 종식시켜야 된다는 사명감이다. 참여정부 시절 그렇게도 정치에 몸담지 않겠다던 문재인이 왜 정치에 몸을 던졌는가. 그것이야말로 국민의 명령이고 노무현의 간곡한 당부였다.

지금 이 시대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을 문재인 자신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혹한 죽음을 목격한 문재인으로서는 노무현이 걸었던 지역갈등이 바로 망국의 길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이를 타파하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문재인은 이제 국민적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는 정치인이다. 노무현 대통령과는 한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철학을 공유하고 있으며 야권의 강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문재인이 부산에서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세우느냐 여부는 바로 이 나라의 정치 지형의 변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고 믿는다.

부산 시민들도 이 점을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선택은 부산시민이 하지만 명분은 문재인이 가지고 있다.

원칙의 고수를 생명처럼 여기는 문재인의 정치적 출발은 험난한 길이다. 온갖 박해와 음해와 상상도 못할 방해공작이 뒤따를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믿을 것이다. 인간으로서 겪어야 할 최악의 비극을 체험한 문재인이 어떠한 난관이라도 반드시 뚫고 나가리라는 것을 굳게 믿는다.

깨어 있는 시민은 진실한 사람의 편이고 하늘 또한 진실한 사람의 편임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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