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덕목은 신뢰와 소통

문재인의 ‘운명’. 처음에 책을 펼쳐들고 대충 뛰어 넘기면서 건성건성 읽었다. 그러다 ‘운명’에 대한 북 콘서트에 몇 번 참석하면서 책을 다시 읽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좋은 나만의 공간이 있다. 아침 화장실이다. 머리도 맑다. 칼럼 구상도 화장실에서 한다. ‘운명’을 매일 아침 10페이지 정도 내용을 씹어가며 읽었다. 나름대로 글에 관해서는 전문가라는 자부심이 있다. 요즘 쏟아져 나오는 출판기념회 책은 거의 읽지 않는다. 대필과 자화자찬이 태반이다. 자기 홍보와 편법 후원금 징수다.

 

▲ 문재인의 운명 표지.

 

그런 책들은 그냥 그렇게 대우하면 된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걸맞은 품격이 있다. 품격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 문재인의 ‘운명’은 읽으면서 ‘운명’에 대한 책으로서 대우가 아닌 예우를 생각했다. 제대로 읽어야 된다는 사명감이다. 밑천을 톡톡히 뺐다. 배운 게 많았다는 의미다.

‘운명’은 공전의 베스트셀러다. 문재인의 모습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슬픔, 분노, 인내 그리고 연민이다. ‘운명’은 자신이 고백했듯이 주위에 많은 도움으로 세상에 나왔다. 방대한 자료를 모으는 데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원래 자신을 드러내길 꺼려하는 문재인이 주위에 권유와 도움이 없었으면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도 했다. 책은 나왔고 책은 서점가를 휩쓸었다.

‘운명’이 이처럼 읽힐 줄은 문재인 자신도 생각지 못했다고 하지만 읽고 난 다음에 한 생각은 읽은 후 누구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란 것이다. 무엇이 ‘운명’을 이토록 읽게 했을까. 노무현의 비극적 운명을 함께 슬퍼하는 국민의 아픔 그리고 그와 함께 살아온 문재인의 한과 아픔을 이해하는 국민들의 마음이 함께 했을 것이다.

신뢰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문재인을 안 지는 거의 20년이 가깝다. 상냥함과는 한참 거리가 먼 그는 오히려 무뚝뚝하다는 것이 옳은 평가다. 더도 덜도 아니고 늘 한결같은 그를 보며 참 저렇게 살기도 힘들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만 속에서 숨 쉬는 그의 숨결은 늘 따뜻하고 눈은 온화하다. 무뚝뚝함이 오히려 점차 살갑게 다가온다.

그가 살아온 60년 가까운 인생은 신뢰라는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여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힘들고 고달팠던 그 여정이 ‘운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읽으면서 몇 번씩 눈물을 닦았다. 그런 나를 아내는 연민의 눈으로 본다.

재미로 읽는 책이 있지만 그냥 재미일 뿐 남는 것이 없다. 읽고 난 후 가슴속에 기쁨으로 남는 책이 있다. ‘운명’이 바로 그렇다. 무슨 이유일까. 그가 살아온 삶과 내용이 일치한다. 책을 읽는 기쁨이 크다.

믿음이 바탕이 되는 ‘사람 사는 세상’

문재인의 ‘운명’은 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독후감을 썼고 우리나라 최초의 ‘북 콘서트’란 형식을 빌어 귀에 익숙한 단어가 됐다. 전쟁의 비극은 만든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고통이다. 모두가 피해자다. 문재인 역시 전쟁의 희생자로 부모는 북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이다.

문재인이 겪은 피난살이 고생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나라가 겪은 전쟁의 비극을 피난이라는 것을 통해 생생하게 목격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동족끼리의 전쟁은 하지 말아야 된다는 신념을 가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피난민의 아들로 태어나 부친은 고향을 가 보지도 못하고 부산에서 별세했다. 전쟁이 남긴 상흔을 몸과 마음에 지닌 문재인의 의식은 책 속 도처에 녹아 있다. 경험은 가장 훌륭한 스승이라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말했다. ‘그 사람 곁에 누가 있는지 보면 그 사람을 알게 된다’ 몇 번이고 무릎을 치면서 동의했다. 특히 요즘 이명박 정권을 보면서 어쩌면 저렇게 잘 골라다 놨을까 할 정도로 놀라는 이유도 바로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권의 말기라고 하지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헌법기관인 선관위원회를 공격해 투표율을 떨어트리려는 기도를 할 수 있는 인간들이 있는 집단이라면 그건 이미 도덕적으로 끝난 정부라고 생각한다.

‘운명’을 읽으면서 순간적으로 책을 덮어 버리고 싶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 이를 악물면서 그 고통을 견딘 문재인을 독한 사람이라고 할 것인가. 난 문재인이 그 순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오죽했으랴.

 

▲ 노무현재단‘송년 한마당’에 참석한 한명숙 전 총리와 문재인 이사장. ⓒ노무현재단

 

그 얘기는 그만하자. 목이 메인다. ‘운명’을 읽으면서 그 저변에 일관되게 흐르는 것은 문재인의 신뢰다. 나를 믿어 달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어도 마치 모래에 스며드는 물처럼 가슴을 적신다. 언제인가 법률에 대해 물어보니 그냥 한마디 대답으로 충분할 텐데도 법전을 펴들고 일일이 짚어가며 설명하는 걸 보면서 감탄을 했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고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란 말을 늘 하던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전적으로 믿는 것은 내가 그동안 지켜본 문재인의 모습이고 ‘운명’을 읽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린 것도 그가 노무현 대통령과 만남에서 일관되게 보여 준 신뢰가 독자의 가슴을 울렸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지도자의 덕목은 소통과 신뢰

신뢰는 문재인의 상표라고 한다. 그 이상 가는 좋은 상표가 어디 있을까. 그에 대한 신뢰가 어려운 난제들을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 설사 자기 의사와 다르다 하더라도 문재인의 설득은 거짓이 아닌 진실과 신뢰가 바탕이기에 경청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문재인이 김해 선거에서 난마처럼 얽혔던 문제를 해결한 것도 그의 신뢰가 아니었다면 어림도 없었다고 믿는다.

첩첩산중 빠져나갈 길이 없다고 보이던 야권통합도 문재인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야권통합이 정권교체의 유일한 길이라는 공감대가 국민들 가슴속에 있었고 시민단체 지도자들의 협력이 있었지만 선두에서 길을 뚫고 나가는 문재인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역시 힘들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소통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이 듣는 것이다. 입 꽉 다문 채 남의 말을 정성껏 경청하는 문재인의 자세에서 무한한 신뢰가 솟는다. 그것이 바로 지도자의 자세라고 믿는다.

오늘날 이 나라가 이 지경이 된 이유가 무엇인가. 국민들은 소통의 부재를 말한다. 이명박 정권을 가리켜 먹통정권이니 불통정권이니 하는 것은 소통의 부재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정권의 불신으로 이어진다. 국민으로부터 불신당하는 정권이 무슨 정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단 말인가.

선택의 잘못을 땅을 치고 후회를 해도 한번 뽑은 대통령은 도리가 없다. 다만, 다시는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 공감이다. 경험처럼 좋은 스승이 없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경우를 두고 한 말 같다.

올해도 다 가고 내년이면 총선이 오고 12월 19일에는 그렇게 기다리는 대선이다. 왜 대선을 오매불망 기다리는가. 이제 정권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오는 것이다. 다시는 지난번 대선과 같은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문재인의 ‘운명’을 마치 내 운명을 씹듯이 읽으며 느낀 결론은 지도자의 덕목은 소통과 신뢰라는 것이다. 또한, 소통과 신뢰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수양과 고통을 이겨낸 인내. 그리고 마음 깊숙이 자리한 인간 사랑이 없이는 절대로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좋은 책을 읽는다는 기쁨은 읽은 사람만이 안다. 오랜 시간, 아침마다 몇 장씩 넘기는 문재인의 ‘운명’ 내게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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