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늑약 151적’, 그들의 웃음도 들리는가

소설은 가능한 세계에 기록이고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라고 했다. 인간은 왜 역사를 두려워하는가. 사실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을사년 매국을 한 인물이 어찌 5적뿐이랴만 역사는 5적을 기록했다. 대표적 매국 역적이다.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이다.

우리 국민들이 을사늑약 5적 하면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올리는 것이 이완용이다. 을사늑약 5적을 빼고도 매국노는 하나 둘이 아니다. 일일이 다 꼽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이들을 매국노로 역사에 이름을 올리고 역사에서 영원한 역적으로 기록하는 것은 이들이 국가의 녹을 받아먹는 국민의 공복으로 나라를 지켜야 할 책임을 져버렸기 때문이다.

1905년 11월 17일 경운궁 어전회의에서 이등박문은 종이와 붓을 들고 늑약의 가부를 묻는다. 한규설 민영기 이하영 등 대신들이 통곡을 하면서 반대를 썼다.

이때 일본에 매수된 이완용 박제순 이근택 이지용 권중현 등은 찬성을 표했다. 이등박문은 웃었다. 8명의 대신 중 5명이 찬성했으니 조약은 체결된 것이라고 했다. 5적의 탄생이다. 다수결이다.

남은 것은 양국의 서명. 이등박문은 일본공사와 외부대신 박재순을 불러 서명토록 했으니 이로써 나라는 망했다. 후일 이완용이 말했다. ‘찬성을 한 것은 나라를 위해서였다’. 이 나라의 대표적 작가인 이광수도 반민특위에서 말했다. ‘자신이 친일을 한 것은 그래야만 한국이 잘 살 것 같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민 모두가 더 잘 사는 나라, 경제적으로 강국이 되기 위해서 FTA는 반드시 필요한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에 불편한 점이 있다고 해도 감수하고 체결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주장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서명을 했다.

이명박 정부가 강조하는 대로 경제 강국이 되고 잘 사는 나라만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불평등 조약이란 상대국의 이익이 된다는 말이다. 불공정하고 불평등하다는 것이다.

과연 한미 FTA 조약은 얼마나 불공평한가. 얼마나 우리에게 불이익인가. FTA에 반대하는 경제학자들이나 국민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단 말인가. 확실히 해야 한다.

왜 한미 FTA 비준을 ‘을사늑약’에 비유하는가

한미 관계에 있어서 종속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은 언제는 우리가 주장을 제대로 하면서 살았느냐고 자조적 냉소를 한다. SOFA 협정을 예로 들면서 아무리 뛰어 봐야 벼룩이라는 체념이다.

더 잘 사는 나라, 경제 강국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한미 FTA라는 이명박 정권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다소 불평등한 요소가 있더라고 눈 감고 도장을 찍어야 한다는 게 한미 FTA 찬성론자의 입장이다.

▲ ⓒ서프라이즈 갈무리

국가 간 중요한 조약문을 제대로 번역도 하지 못하고 그것을 토대로 조약을 체결하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이것은 어차피 조약은 체결될 것이고 적당히 넘어가자는 발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법관들도 들고일어났다. 대한민국의 주권까지 위협하는 수준의 불평등조약을 맺는다면 큰 화근이 될 것이며 장차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이 초래돼 국가 경제가 도탄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청와대는 ‘불평등을 감수하는 대신 경제적 실익을 추구하자’는 식이다. 정말 ‘실익’이 있을지 제대로 따져나 본 것일까. 한미 FTA를 체결한다고 해서 당장 나라가 망하지는 않겠지만 후유증이 확인되기 시작하는 시점이 되면 한국경제는 이미 손을 쓰지 못할 정도로 망가져 있을 게 뻔하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한미 FTA 비준은 다른 국가들과의 통상협상과는 다르다. 그게 현실이다. 세계 경제 최강국인 미국과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은 재론의 여지도 없이 미국에게 유리하다.

플라이급과 헤비급의 권투경기다. 공정한 경기가 되겠는가. 을사늑약이 떠오르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당시 일본은 헤비급이었다. 헤비급이 플라이급에게 링에 올라오라고 한다. 안 올라갈 수가 없다. 한 편이어야 할 사람들이 자꾸 올라가라고 한다. 5적들이다.

을사늑약의 조문은 어떻게 되어 있나 보자. 을사늑약 핵심내용은 이렇다.

1. 일본국 정부가 동경 외무성을 통해 한국의 외국에 대한 관계 및 사무를 감리하고 지휘한다.

2. 한국정부는 일본국정부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 국제적 조약을 절대로 맺을 수 없다.

3. 일본국정부는 한국 황제의 궁궐에 1명의 통감을 두며 항구와 필요한 지역에 이사관을 둔다. 이사관은 통감의 지휘하며 협약 실행에 대한 일체의 사무를 맡는다.

4. 일본국과 한국 사이의 조약 및 약속은 본 협약에 저촉되지 않는 한 그 효력이 계속된다.


조약이 아니라 노비문서다. 고종은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고 국제사회에도 알렸지만 일본의 칼자루를 막을 수는 없었다.

한미 FTA는 불평등 협정이다

한미 간에 분쟁이 생기면 어떻게 되는가.

“분쟁이 생기면 미연방 법이 우선한다.”

“한미 FTA 협정문의 조항과 특정인이나 상황에 대한 그 조항의 적용이 미 연방법률과 일치되지 않는다면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한국에게는 ‘법대로’ 자신들에게는 ‘우리 맘대로’다. 평등한가.

제소권은 오직 미 연방정부에게 있다. 한국이 미국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면 이를 해결할 유일한 주체는 미국 연방정부다. 자기들 맘대로 하겠다는 이게 평등하다고 하면 개가 웃는다.

분쟁이 생길 경우 미 연방정부가 누구 편을 들겠는가. 미국이 인도주의 국가라서 약자인 한국 편을 들겠는가. 가재는 게 편이다. 미국은 주인이고 한국은 머슴이다. 죽이고 살리고는 미국 마음이다. 아닌가. 정부가 대답해 보라.

한미 FTA에 불평등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정부의 대답은 이렇다.

“양국 간 법체계 차이에서 생기는 오해이며 미국이 일방적으로 FTA 협정을 위반할 리 없다.”

잘도 믿는다. 이미 미국은 NAFTA 협정을 이용해 수백 건의 제소와 이의제기로 미국기업의 이득을 챙겨준 사례가 적지 않다.

‘불평등’을 ‘불평등’이라고 지적하는 것을 ‘오해의 소치’라고 말하는 자들, 이들이 ‘경제 을사 5적’이다.

FTA 협상을 하면서 한국의 대표들은 무엇을 했는가. 기본적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성사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정부의 대표가 무슨 말을 제대로 할 수 있단 말인가.

온 국민의 분노가 끓고 있는 ISD 조항은 초등학생이 봐도 웃을 것이다. 남의 집 부엌에 들어와서 다 뒤져 먹어도 말 한마디 못할 지경이 됐다. 시장에 가서 미국 물건보다 싼 물건 하나 못 사게 됐다. 왜 나보다 싸게 파냐 하면 찌그러들어야 한다. 이게 주권국가냐. 아니라는 것이 국민의 분노다.

국회의원은 누구를 위해 일을 하는가

1905년 11월 17일 경운궁 어전회의에서 을사늑약이 체결된다. 2011년 11월22일.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한나라당에 의해 제2의 을사늑약이 맺어진다. 국회의원 151명. 이들이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다.

을사늑약 이후, 이에 항의하여 외교관인 이한응은 자결을 했다. 민영환, 조병세, 홍만식 이상철, 김봉학도 죽음으로 국치를 통곡했다.

민종식, 최익현, 신돌석, 유인석 등은 의병을 일으켰다. 고종은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하여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고 을사늑약이 강압에 의한 무효임을 알리는 외교전을 펼쳤지만 힘 없는 나라가 어쩌랴.

왜 국민들은 FTA 국회비준 후 분노에 치를 떠는가.

유명한 미국의 “위키리크스”는 최근 한미 FTA 협상과 관련한 미국 비밀 외교문서를 공개했다. 한미 FTA 협상을 총지휘한 것이 김현종이다.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김현종은 협상의 전 과정에서 미국에게 우리나라의 협상정보를 넘겨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말했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죽도록 싸웠다” 자신의 입으로 한 발언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의 이익을 위해 협상대표로 임명된 사람이 상대국의 이익을 위해 죽도록 싸웠다면 역적이다. 믿기 어렵고, 믿고 싶지 않지만 위키리크스는 그렇게 전한다. 거짓말이기를 빌 뿐이다.

김종훈이 죽도록 미국을 위해서 정보를 모두 넘겨주었든 혈서를 썼던 한국의 국회가 한국의 국회의원이 ‘아니다’ 하고 힘을 모아 FTA 비준을 부결시켰다면 김종훈은 죽었을지 몰라도 한국은 주권국가로서 국민의 지지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151명의 국회의원은 찬성을 했다. 묻는다. FTA 비준안 조항을 제대로 읽어 본 국회의원이 몇 명이나 되는지 손들어 보라. 읽어 보고 이해도 못 하는 의원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런 위인들이 늑약을 통과시켰다. 무엇인지도 모르고 통과시켰다. 배를 갈라도 시원찮을 늑약에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촛불이 타오른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 전국에서 을사늑약을 반대 규탄하는 횃불이 타올랐다. FTA 비준 후 광화문 광장과 서울광장을 가득 메운 국민의 노한 함성은 날이 갈수록 거세다. ‘미친 소, 너나 처먹어라’는 국민의 분노에 뒷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불렀다는 국가지도자는 지금도 촛불을 보고 있을까. 감회가 어떨까.

장지연은 是日也放聲大哭(시일야방송대곡)을 썼다. 우리의 언론은 최루탄만 썼다. 조중동이라 불리는 이 땅의 거대신문은 무엇을 느꼈을까. 방송은 무엇을 보도했을까. 혹 자신들이 친일과 반민주와 연관이 있다는 자책감 때문은 아닐까.

연일 터져 나오는 ‘한미 FTA 무효’의 함성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멈출 수가 없다. 을사늑약의 비극은 국민을 36년간의 노예로 전락시켰다.

‘을사늑약 5적’이 1905년 11월 17일 경운궁 어전회의에서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는 있었을까. 2011년 11월 22일 대한민국의 국회의사당, 151명의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을까.

국민들은 기억한다. 후손들도 기억한다. ‘을사늑약 5적’과 ‘신묘늑약 151적’을 역사와 함께 영원히 기억할 것임을. 그것이 역사의 순리다. 

후기 : 칼럼을 쓰면서 김하늘 판사의 글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김 판사님께 고마운 마음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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