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검사와 판사들

신파극이 있었다. ‘홍도야 울지 마라.’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등이다. ‘검사와 여선생’도 그 당시에 신파극이다. 내가 검사를 멋있다고 생각한 것은 ‘검사와 여선생’이라는 신파극을 보고서다. 초등학교 때, 동네에 이동극단이 들어왔는데 공연작품이 ‘검사와 여선생’이었다.

가난한 제자에게 도시락을 싸다 주던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결혼을 했다가 못된 남편을 살해했다는 과실치사죄로 재판을 받는다.

담당 검사는 초등학교 제자였다. 그는 검사를 사직하고 변호사로 선생님을 변호한다. 선생님을 변호하는 눈물 젖은 제자 검사의 목소리. 관객들은 모두 눈물을 흘린다. 내가 최초로 느낀 멋진 검사의 모습이다.

불의를 파헤치고 응징하며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검사. 드라마 ‘모래시계’에 등장하는 정의의 사도. 기자들과 함께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접은 지는 이미 오래다. 이제 국민들은 정의구현의 사도를 개라고 부른다. 개가 부끄러워할 것이다.

제도적 결함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도둑놈도 핑계는 있다. 검찰의 독립을 외치며 대통령과 맞장을 뜨던 젊은 검사들은 모두 이민을 갔는가. 대통령을 자살로 이끈 정치검찰로 타락하고도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검찰이 바로 오늘의 한국 검찰이라는 비판에 반박도 못 한다.

한명숙 사건을 빠짐없이 방청하면서 검찰의 진면목은 원도 한도 없이 목격했다. 국민의 소리가 무엇인지 모를 리가 없는 머리는 똑똑한 검사들이 검사석에서 한명숙의 죄를 읊을 때 검사의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정의는 머릿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 있음을 새삼 절감했다. 권력의 시종으로 온갖 충성을 다하는 검찰을 보면서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국민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검찰은 과연 모를 것이냐고 자문했다.

눈을 떠라, 귀를 열어라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이 얼마나 병신스러운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을 중언부언 지껄이고 있는 자신이 얼마나 꼴불견인가. 그래도 분명히 신앙처럼 가지고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리 나쁜 놈이 많다 해도 그래도 착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이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검찰이 정치권력의 시녀가 되어 무릎을 꿇고 있어도 어딘가에는 두 발로 땅 굳게 밟고 할 일 제대로 하는 검사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SLS의 이국철이 검사장급 이상의 고위직 11명에게 뇌물을 건넸다고 주장을 해도 전세방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지하철 타는 검사도 많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랜저 검사가 나오더니 이번에는 벤츠 여검사가 등장했다. 450만 원짜리 샤넬 검사가 등장했다. 옥에도 티가 있고 쌀밥에도 뉘는 있다. 그러나 옥에 티 하나가, 쌀밥에 뉘 하나가 전부를 망친다. 더구나 서릿발같이 법을 집행하는 검찰에 있어서야 더 말해 무엇하랴.

대구지검의 백혜련 여검사가 사직을 했다. 더 이상 검찰에 있을 수가 없다고 고백했다. 떠남으로써 고통을 면할 수 있다면 떠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슴 저린 아쉬움은 그나마 피어 있어 향기를 피우던 꽃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더 버텨 줄 수는 없었을까. 남의 말이야 쉬울 것이다. 오죽하면 남들이 껌벅 죽는 검사자리를 던졌을까. 그 마음 헤아리면 더욱더 정치권력에 대한 증오가 타오르고 권력에 빌붙어 인간의 모습을 스스로 지워버리는 그들에 대한 연민을 금할 수 없다.

그들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왜 뒤통수를 찌르는 국민의 시선을 고통으로 느낄 수 없겠는가. 그러나 출세하는 욕망이 수치를 억누를 것이다.

문득 정권이 바뀌었을 때 지금 권력의 시녀가 됐던 검찰, 전직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정치검사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소환되는 대통령을 창으로 내다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던 검사의 얼굴이 다시 떠오른다.

백혜련 전직 검사는 마음이 편할 것이다. 얼마나 아픈 나날을 보냈을까. 그가 검사가 되면서 이루려 했던 꿈은 이제 접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보인 용기는 또 다른 성취를 기약한다.

백혜련 전 검사는 2003년 3월 9일 노무현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 당시 전국 평검사회의 대표의 이름으로 발표됐던 선언문을 소개했다.

“오늘 저희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염원하는 전국 검사들의 뜻을 모아 국민 여러분과 대통령께 전달하고자 합니다. 먼저, 그동안 검찰이 일부 정치적 사건을 투명하고 엄정하게 처리하지 못하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책임이 저희에게 있다는 국민의 질책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 중략 … 저희들은 앞으로 정치적 사건을 포함한 모든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 어떠한 압력도 거부하고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할 것이며 수사과정에서 국민의 인권보장을 더욱 철저히 할 것을 국민들에게 약속드립니다.”

검사들은 기억이 새로울 것이다. 잊고 싶은 기억이 될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기억하고 있다. 백혜련 전 검사는 검찰의 행복을 기원했다. 자신은 다른 곳에서 당당한 법조인으로 바로 서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국민들은 백혜련 검사의 떠남을 아쉬워한다. 그리고 그의 떠남이 남아 있는 검찰이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이 되기를 기원한다. 저도 기원합니다.

“백혜련 전 검사님, 부디 꿈을 이루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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