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권파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신가

희한한 구경이다.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전경들이 가뭄에 콩 나듯 띄엄띄엄 서 있다. 시민들은 얼씬도 못한다. 이걸 전경 알박기라고 한다든가. 시민들이 계단에 앉지 못하도록 한 경찰의 유치한 발성이다. 시멘트 계단에 가래침 발라 놓은 것이다.

더욱 가관인 꼴불견이 있다. 민주당의 정청래가 종로서 경비과장이라는 자와 실랑이를 하고 있다. 합법적인 집회를 왜 못하게 하느냐면서 불법경찰 물러가라고 호통이다. 호통인지 애걸인지 감이 잘 안 온다. 그걸 보고 있는 야당 국회의원들…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다.

국회의원들은 시민들이 밀고 들어갔으면 했을 것이다. 텅 빈 광화문 광장을 시민들이 밀고 들어가 연설장을 확보해 줬으면 좋을 것이라고 간절히 바랬을 것이다.

얼마 후 역시 시민들 힘으로 확보된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자리에는 손학규 이정희 정동영 김진애 의원들이 자리를 잡았다. 날씨 탓인가. 의원들의 모습은 너무 추워 보인다. 마음이 더 추웠을지 모른다. 불쌍했다. 감정 없이 측은했다.

FTA 조항을 꼼꼼히 읽어보고 설명도 듣고 보니 천하에 이런 몹쓸 조약이 없다. 그냥 당하고 죽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유치원 애하고 어른하고 씨름하자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어른이 마음먹기 따라서 이기고 지는 것은 마음대로 아닌가.

특히 농민들이나 중소기업들은 그냥 죽으라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거 그냥 내 버려두면 나라도 아니고 국민도 아니다. 이 조약 체결한 인간은 을사늑약 5적에 못지않다. 알고 했는지 알고 그냥 넘어갔는지 부관참시 감이다.

대통령이야 의례 그런 사람이려니 하더라도 국민이 가만히 있으면 국민이 아니다. 하물며 국회의원이라는 자들이야 더 말해 뭣 하랴. 헌데 국민들은 들고 일어나는데 국민을 대변하고 국민의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은 멀쩡한 등신이다.

한나라당을 언제부터 그렇게 믿었다고 속 편하게 동료의원 출판기념회에 몰려갔다가 날치기 통과를 그냥 넘겨버리는 멍청이 짓을 한단 말인가. 아니면 날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인가.

90명 가까운 민주당 의원 중에서 날치기 통과 때 몇 명이나 의사당 안에 있었는가. 이름 좀 알았으면 좋을 것 같다. 왜냐면 다음에는 이런 국회의원 필요 없으니까 말이다.

염불에는 뜻이 없고 잿밥에만…

정치인들이 권력을 탐한다는 것을 누가 탓하랴. 권력의지는 바로 정치를 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에너지다. 젖 먹던 힘 다 쏟아 붓는다. 그러나 전제가 있다. 대의명분이다. 국민에게 당당하게 제시할 수 있는 대의명분이다. 이게 없으면 설득력이 없다. 꽝이다.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이후 국민들이 느끼는 폐허나 다름없는 절망감. 가계 빚의 이자가 56조라는 상실감을 새삼스레 들먹일 것도 없다. 747 사기극이나 4대강 파괴나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 심화 따위는 이제 체념을 했다. 그러나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이냐.

입만 열면 거짓말인 일당독재 정권의 연장을 그냥 받아들일 것이냐. 민주주의 정권으로 바꿔서 그래도 희망을 기대해 볼 것이냐.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한가지라면 한번 바꿔 보자는 것이다.

국민들은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다. 정치인들이 하나로 뭉쳐주는 것이다. 정당이 통합을 하는 것이다. 후보가 하나만 나와서 한나라당과 싸우는 것이다. 그러면 반드시 이긴다.

누가 뭐래도 민주당이 야당 중에 가장 세가 강하며 민주당이 깽판 치면 통합은 없다. 애걸도 하고 협박도 하고 별의별 짓을 다 한다. 그래도 신통찮다. 처음에는 잘되는 것 같더니 그놈의 당권이란 놈이 대가리를 들고 나온 다음부터 갈지 자 걸음을 걷고 이제는 아예 당권 이외에는 나 몰라다.

당권을 잡은 다음에 통합을 해도 하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독자 전당대회를 한다며 전당대회 소집 인원이 충족됐다며 명단을 흔든다. 그 중심에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도는 인물들이란 이미 국민에게 평가가 난 부정적 인물들이다. 이들이 당권을 잡은들 자기 이기주의에 매몰되어 이익이나 챙길 것은 불문가지다.

이들은 민주화 투쟁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따르던 민주투사들이다. 그때 배운 게 민주주의다. 지금 다 잊었단 말인가. 김대중 대통령의 유지도 잊었단 말인가. 70을 내 주어도 30을 껴안아야 한다는 유언 같은 말씀을 잊었단 말인가. 대답 좀 해 보라.

그래도 귀는 있는 모양이다. 어제 광화문 국민 시위에 당권파라고 하는 인물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국민들 앞에 서서 투쟁하겠다던 박지원은 어디로 갔는가. 시위 때마다 짜지지 않던 박주선의 모습은 왜 보이지 않는가. 그리고 김성곤도 강창일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다. 손학규가 잘하는 것이 아니다. 늘상 한 발자욱 늦은 결정이 오늘의 사태를 불러온 원인도 된다. 그러나 통합이 대의명분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래서 화는 나지만 욕을 안 한다.

박지원의 마지막 선택

이제 박지원이 앞장서야 한다. 통합에 앞장서야 한다. 가 봐야 알겠지만 통합 이후 전당대회에서 당권 경쟁을 한단다. 그나마 다행이다. 하늘이 두 쪽이 나고 땅이 꺼져도 통합은 해야 한다.

통합 이후에 박지원이 당권을 잡던 손학규가 잡던 상관 없다. 이제 하나가 됐고 목표는 분명하기 때문이다. 잃어버렸던 민주주의 되찾고 잘못된 정치 바로 잡으면 된다. 그 길에 장애가 되는 것이 바로 역적이다. 역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나라 못되게 만드는 것이 역적이다.

26일 광화문에 박지원을 비롯한 이른바 당권파가 참석하지 않는 것은 잘한 일이다. 만약에 참석을 했다면 말할 수 없는 비난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란 그런 일에 일일이 마음의 동요를 느끼면 안 될 것이다. 돌을 맞아도 가야 할 것에는 가야 한다.

박지원이 누군가. 김대중 대통령 탄생에 일등공신이다. 민주투사다. 옥살이도 했다. 누구보다 김대중 대통령의 철학을 잘 알고 있다. 지금 김대중 대통령이 살아 계신다면 박지원에게 뭐라고 하셨을까.

정치판에는 별의별 인간이 다 있다. 지도자들은 사람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지금 한나라당의 인기가 똥값이니까 야당 이름만 걸어도 당선이 될 줄 아는 얌체들이 있다. 어림도 없다. 국민들이 그렇게 바보도 아니고 그런 인물을 통합정당에서 자연스럽게 걸러질 것이다.

통합세력 주변에도 별의별 인간들이 다 모여든다. 아무리 사람이 귀해도 버릴 것은 버려야 할 것이다. 썩은 사과 한 알이 상자 속에 사과를 모두 썩게 만든다.

살을 저미는 추운 겨울에 FTA 반대 집회에 참가하려 올라오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권지현 양의 비보를 들으면 가슴이 찢어진다. 우리가 정치지도자를 잘못 뽑아서 죄 없는 우리의 딸이 목숨을 잃었다.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트윗에 올라온 꼬맹이가 촛불을 들고 서 있는 영상을 보자. 어른을 따라온 철부지지만 얼마나 춥겠는가.

아무리 모른 척해도 자신의 처신이 옳은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는 자기가 제일 잘 안다. 잘못된 줄 알면서도 고치지 않으면 남들이 용서하지 않는다.

엄동설한에 물대포를 맞으며 시위를 하는 국민들을 생각해서라도 통합은 반드시 이루고 악덕 정부, 불의한 정부를 몰아내야 한다. 몫은 다음에 챙기자.

밥도 안 됐는데 숟가락 들고 덤비면 어쩌자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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