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5인방의 연판장, 결과는?

한나라당 의원 5명이 연판장인가 뭔가를 돌린다는 기사가 났다기에 처음엔 FTA 강행 촉구 서명을 받는 것쯤으로 알았다. 진상을 알고 나서는 역시 머리 잘 굴리는 사람들의 꼼수란 생각이 들었다.

“시저를 죽인 것은 시저보다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살벌한 어휘가 나온 것은 ‘브루투스’가 한 말을 옳긴 것일 뿐이다. 나름대로 머리도 많이 굴렸겠지만 명분도 찾을 수 있고 박수도 받고 그야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일거양득이 아닌가. 그러나 개운치가 않았다. 하긴 이것도 용기라면 용기다.

현직 대통령에다 아직도 서슬이 시퍼런 최고 권력자다. 거기다가 성격도 남달라서 마음먹기 따라서는 엄청난 손해를 당할 수도 있다. 좌우간 정치생명을 건 모험이라고 할 수 있다. 하기야 브루투스는 목숨도 걸었다.

이 정도면 무슨 얘긴지 대충 아는 국민들이 많을 것이다. 보충 설명 좀 하자. 이들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하겠다는 말은 무엇인가. 무슨 내용을 가지고 연판장 서명을 받는 것일까.

그들은 “이번이 국민이 허락한 마지막 기회”며 “지금 민심이 등 돌린 이유가 야당이나 비판적 언론이나 SNS에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연판장 내용이다.

▲ 대국민 사과와 국정 기조 변화
▲ ‘747 공약’ 폐기 선언과 친재벌정책 포기
▲ 청와대 참모진을 포함한 문제 각료들의 교체
▲ 비판적 방송인 퇴출과 민간인 사찰 문제에 대한 엄중 조사와 책임자 처벌
▲ 측근비리에 대한 명명백백한 조사 지시와 검찰개혁 단행 등 5개 요구다.

이들은 대통령에게 최후통첩이라 했는데 최후통첩의 의미가 무엇인가. 아무리 못난 바보라도 알 수 있는 말이다.

이들은 ‘대통령에게 드리는 글’과 ‘당 지도부에게 드리는 글’, ‘동료의원들에게 드리는 글’도 돌렸다고 한다. 이건 ‘안 되면 말고’가 아니라 ‘안 되면 안 된다’는 비장한 각오가 엿보인다. 각오가 어떻게 귀결될지는 모르지만.

ⓒ <서프라이즈> 갈무리

‘정태근, 김성식, 김세연, 신성범, 구상찬’의 다섯 초선의원. 초선이라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몰라서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정태근은 연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이른바 운동권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고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 부시장을 했고 대통령 후보 시절에는 수행단장을 지냈다. 측근 중에 알짜배기 측근이라고 할 수 있다.

김성식도 운동권 출신이다. 손학규가 경기지사를 할 때 정무부시장을 했다. 신성범은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KBS 출신이다. 나머지 김세연 구상찬은 별로 관심이 없다. 좌우간 그들도 비장한 각오를 했을 것이다. 한식에 죽으나 경칩에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어차피 내년에 서울에서 당선이 되겠느냐는 절망감이다. 절망이 용기를 나게 만들었는가.

5인방의 요구는 옳다, 그러나…

집안이 망할 때 효자가 나고 나라가 망할 때 충신이 난다고 했다. 효자야 개인이다. 충신은 다르다. 나라의 운명과 함께한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 국민들은 붕 떠 있었다. 구세주가 나타 나 말 그대로 ‘잘 먹고 잘살게 됐다’고 생각했다. 당선도 되기 전에 국민들은 747을 타고 마음껏 하늘을 날랐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국민의 분노는 촛불로 타올랐다. ‘미친 소는 너나 먹어.’라는 함성은 대통령을 청와대 뒷산에 오르게 했고 ‘아침이슬’을 들었다던가. 그러나 들었는지 불렀는지 그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임기 내내 밀어붙인 4대강 개발. 마무리가 됐다는데 망가지기 시작했다. 경제의 우선순위 따위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냥 불도저로 밀어붙이면 강은 망가지고 시멘트가 물길을 막았다. ‘내가 해 봐서 아는데’ 하던 대통령의 호언장담은 꽝이었다. 언론은 숨이 막혔다. 개념 있는 언론인은 침묵했다.

민주주의는 조종을 울렸다. 이런 현장을 국민들은 목격했고 5인방도 지켜봤을 것이다. 더구나 정태근은 대통령의 최측근 실세가 아니었던가. 김성식도 머리 좋다고 소문난 사람 아닌가. 신성범은 기자 출신이다.

이명박 정권이 지금까지 해 온 비민주적 실정을 일일이 지적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 한마디로 나라가 기울고 민주주의가 죽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바라보는 이명박 정권도 국민의 눈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썩어도 준치다.’ 도저히 그냥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과 사명감이 끓어 올랐을 것이다. 왜 똑똑한 그들이 ‘브루투스 너마저’란 말을 모르랴. 배신이란 독 묻은 화살이 뒤통수에 꽂히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들의 이번 행위가 가져 올 파장이나 결과가 어떤 것이라는 잘 알면서도 거사(?)를 한 것은 ‘안 되면 말고’가 아니라 ‘안 되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믿는다. 모든 것을 걸었다는 비장한 각오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은 그동안 뭘 했느냐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실정과 비민주적 행태를 이제야 알았느냐는 것이다. 그동안 외계 여행이라도 했느냐는 것이다.

그동안 수도 없이 서울 하늘을 밝힌 촛불, 용산에서 불타 죽은 철거민, 분신하고 목매 죽은 노동자들, 등록금으로 자살한 대학생, 몰랐단 말인가. 그들은 속으로만 분노했는가.

국민들은 어리석었다. 속인 자가 나쁘냐. 속은 자가 못 났느냐는 따질 것도 없다. 정치가 사기를 쳤고 언론이 사기를 쳤고 국민은 넘어갔다. 그리고 5인방은 침묵했다.

잠자던 애국심을 누가 흔들어 깨웠는가. FTA의 망령인가. 35미터 크레인 위에서 300여 일 흘린 김진숙의 눈물인가. 망가진 자연이 인간에게 가하는 복수 때문인가. ‘브루투스 너마저’라고 욕을 먹을지 몰라도 그들은 칼을 뽑았다. 그다음은 무엇인가.

태산명동에 쥐 다섯 마리 시체인가

대통령이 기가 막힐 것이다. 외유 중이라도 보고는 득달같이 전달되었을 것이다. 아니 이럴 수가. ‘브루투스 너마저’가 아니라 ‘태근아 너마저’였을 것이다. 충격이 컸을 것이다.

원래 ‘내가 다 해 봐서 아는데’ 가 상표인 대통령이다. 무엇을 잘못 했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런데 정태근이 칼을 뽑았다. 기절을 할 노릇이다.

보지 않았어도 청와대가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당도 마찬가지고 특히 친이계는 이를 갈고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친이계가 나섰다.

장제원 윤상현 김영우 등이 팔을 걷었다. 한 마디로 너희들은 책임이 없느냐는 것이다. 대통령만 사과하면 끝이 나느냐. 집이 무너지는데 기와만 갈면 된다는 말이냐.

현재까지 대통령의 반응은 공식적으로 없다. 무시하는 것인가. 그럴 수가 없을 것이다. 연판장을 돌리고 서명을 받고 이를 공개하는 것은 바로 대통령에게 침묵만으로는 견디지 못한다는 경고요 통첩이다.

대통령이 이들의 요구를 수용한다면 지금까지 이명박 대통령이 해 온 모든 것들은 무너진다. 그렇지 않아도 자연의 복수가 시작됐다. 보를 쌓은 곳은 농경지가 침수된다. 언론은 외면하지만 농민들은 끓는다. 돈을 처들여서 4대강 홍보를 하고 4대강 준공 행사에 선물로 주민을 동원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자연이 복수는 끝나는 것이 아니다. 복수의 결과가 두렵다.

5인방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은 성명서에서 자신들의 대한 언급이 없다. 이미 비장한 각오를 했으니 새삼스럽게 언급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천명했어야 한다. 서명자가 몇 명이 되든 아니면 한 명도 없더라도 자신들의 입장은 명백히 밝혔어야 한다. 그것이 당당하다.

임금에게 충간을 하는 충신들은 사약을 준비한다. 이들 5인방은 다음 총선 출마를 포기했을 것이다. 책임의 통감이다. 그야말로 살신성인이다. 그게 바로 제대로 된 정치인의 자세다. 그래야 공감이 간다. 지지를 받는다. 5인방도 사약을 준비했는가. 소주 한 병 준비했는가.

“시저를 죽인 것은 시저보다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라는 브루투스의 말이 가슴은 울리는 것은 그 말이 옳기 때문이다.

한나라 5인 방. 칼은 뽑았다. 이럴 때 멋진 말 한 번 써 봐라. 박정희가 한 말이다. ‘구국의 결단’ 얼마나 멋진 말인가.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