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농사도 호되게 바쁠 때가 있다.
요즈음 같은 수확 철이 그런 시기이다.
더구나 평일에는 해가 빨리 지는 바람에 퇴근 후에는 일을 할 수 없어 모든 일을 주말로 미루다보니 더 힘 들 수밖에 없다.

토요일과 일요일.
멧돼지가 할퀴고 지나간 고구마 밭 일부를 정리하여 비닐을 걷어내고, 평소 물이 고이는 화단에 흙을 퍼다 메우고, 구봉화 밭에 거름 주기, 튤립 심을 곳에 거름주기, 메주콩 거두어 들이기는 나의 일이었다.

▲ 감을 따는 아내. ⓒ홍광석

아내는 팥을 따고, 내년 봄을 기약하며 튤립 밭을 만들어 구근을 심고, 장독대 옆의 꽃밭과 구봉화 밭 주변을 정리하고 싹이 튼 매발톱 등을 옮기는 일을 했다

아직도 토란, 생강, 도라지는 손을 못 대고 있다. 멧돼지의 피해를 입은 고구마 밭은 절반이 그대로 있다. 비닐을 걷어내고 완두콩 심을 자리도 만들어야 한다.

야콘과 하우스 안의 고구마도 캐야하고, 늦게 익은 팥도 더 수확해야한다. 말린 콩도 털어야한다. 하우스 안에 비닐 터널도 만들고 각종 채소 씨앗도 뿌려야 한다. 사람을 사서 시키기에는 일하는 사람 일당도 나오지 않을 적은 일이다. 결국 아내와 둘이 할 수밖에 없는데 일에 속도가 붙지 않는다.

남들은 단풍놀이 간다는데 호미를 잡고 보이지 않는 꽃을 기다리는 아내를 보기 딱해 지나가는 인사말이지만 “다 잡아치우고 가까운 곳 단풍이라도 보러가자”고 했더니 아내는 “여기 보다 더 편한 단풍놀이 장소가 있느냐?”는 답이었다.

그러면서 “돌아다녀봤자 돈만 들고 특별히 볼 것 있느냐?”며 기다란 전정가위를 들고 나와 간식거리로 감을 따기 시작한다. 그런 아내를 뒷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생각하면 벌써 몇 년째, 우리는 주말을 마음 편하게 돌아다닌 기억이 거의 없다.
지난해는 일을 다 끝내고 늦가을 단풍을 찾아 해남 대흥사를 갔었는데 이미 단풍 잔치는 끝난 뒤였다. 단풍 좋다는 내장사도 겨울 첫눈에 갈 수밖에 없었다.
금년에도 단풍놀이는 가기 어려울 것 같다.
아내에게 미안한 노릇이다.

아내의 놀이터.
마을 안쪽의 당산나무, 입구의 정자나무도 잎의 색깔이 곱다.
숙지원 바로 옆 산에는 옻나무 잎이 붉다.
안으로는 백일홍과 모과나무 잎은 이미 남은 것이 없다.
늘 젊은 벽오동나무의 커다란 잎은 바람에 뒤뚱거리며 멀리 날아간다.
은행나무와 뽕나무가 노랗게 물든 잎을 자랑한다.

아무래도 가을을 대표하는 나무는 감나무가 아닌가 한다.
붉게 물든 잎이 지면 노랗게 익어가는 감이 드러나는데 고향의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장독대와 어우러진 감나무 풍경을 담으려고 애써보지만 그림이 시원치 않다.

▲ 천사의 나팔. ⓒ홍광석

참, 뒤늦게 [천사의 나팔꽃]이 피었다.
커다란 키에 소리 없는 노란 나팔이 씩씩하다.
벌레가 먹어 살아날까 싶었는데 파랗게 잘 자라는 무도 반갑다.

자주 하는 말이지만 텃밭 농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재미있고 보람있는 일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풍경을 보는 일도 즐거움이지만 우리가 먹을 채소의 씨앗을 뿌리고 다 자란 채소를 먹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도 즐거운 일이다.
그러면서 아내와 나의 건강을 지킬 수 있으니!

다음 주말에도 아내와 나는 바쁠 것이다.
어쩌면 몸살이 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해야 될 일을 생각하면 주말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

돌아오는데 한씨댁 아주머니가 일부러 찾아와 고구마를 담은 커다란 비닐봉지를 건넨다.
오늘 캔 물고구마라고 한다.
어디를 간들 그런 인심을 접할 수 있을 것인가?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는 분들은 하루쯤 농촌의 일손 돕기도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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