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툴러도 믿음만은…

문재인이 대중들 앞에서 처음으로 대중연설을 하던 10월 13일, 광화문 광장. 군중 속에는 조용히 지켜보는 침묵의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도 있었다. 세련되지도 않고 약간 어눌한듯한 연설. 그러나 가슴속 분노가 배어 나오는 말 속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 ⓒ민중의소리

문재인의 첫 대중 정치연설을 듣고자 모여든 시민들과 언론인들의 평가는 다를 수 있겠지만 한 가지 그들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신뢰감이다. 어떤 의미에서 문재인의 상표 같기도 하고 어느 누구도 의심치 않는 그의 신뢰성이 사막과도 같은 정치세계에서 어떻게 견딜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연설의 성공 여부는 차치하고 문재인은 박원순을 지지하는 광화문 연설을 통해 공식적으로 정치에 몸을 담았다.

정치는 요즘 서울시장 선거와 부산 동구 선거로 초미의 관심사다. 이 두 곳에 선거는 바로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을 망친 주범, 시장을 바꾼다는 의미도 중요하지만 내년 총선과 대선으로 이어지는 정치 일정이 바로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부산 동구의 구청장 선거는 그야말로 20년 한나라당 아성의 붕괴냐 고수냐가 달려 있는 운명적 한판이다. 영남이 변하고 부산이 변하고 있음은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부산 동구만 하더라도 지난번 구청장은 무소속이었다. 동구는 부산의 양심이라고 평가된다. 노무현 대통령도 동구에서 당선됐다.

민주당의 부산 동구청장 후보인 이해성을 만나 격려라도 하기 위해 부산에 갔다. 20년 가까운 사이, 이해성 후보에 대한 평가는 오히려 새삼스럽다. 그에 대한 믿음은 두텁다. 분명히 좋은 구청장이 될 것이다. 당선이 되길 빈다.

달리는 KTX의 차창 밖으로 황금물결이 넘실거린다. 저 황금의 물결 밑에서 농민의 가슴이 울고 있을 것이다. 낙동강 철교를 지나면서 파헤쳐져 망가진 멍든 강의 얼굴이 아프다. 자연은 그냥 살게 둬 두는 것이 옳다.

도착하자 바로 동구 수정초등학교로 갔다. 가을운동회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문에서부터 시끄럽다. 도열해서 구민들에게 인사를 하는 선거 운동원들이 열심이다.

까맣게 탄 이해성 후보의 얼굴. 씩씩하고 명랑하다. 조용히 후보의 뒤를 따라가며 구민들을 만나 악수를 하는 문재인. 구민들이 문재인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인지도에서는 합격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의원 후보 시절, 정견발표를 하던 수정초등학교 교정이다. 감회가 새롭다. 어르신과 젊은이와 어린이들과도 악수를 나누는 후보와 문재인의 손도 어지간히 피곤할 것이다.

바로 동구 장애인복지관으로 이동한다. 어르신들이 참 많다. 동구는 부산에서 노인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다. 또한 장애인도 가장 많다고 한다. 유명한 산복도로가 바로 동구인데 어르신이나 장애인들은 가파른 언덕길 오르기가 너무 고통스럽다고 한다.

부산 동구의 경우, 평지는 그린벨트로 묶어 놓고 높은 곳은 풀어놔 무허가 건물이 산꼭대기까지 마구잡이로 들어섰다는 지역. 이제는 어떻게 손을 댈 수도 없다는 동구를 이해성 후보는 나름대로 해법을 제시하지만 여기서는 줄인다.

생활이 어려울수록 한도 많고 할 말도 많고 소망도 많다. 하물며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야 오죽하랴. 선거 때가 아니면 유명 인사들이 찾아와 주겠는가. 쓴소리라도 할 법한데 어르신들은 그냥 조용조용 애로사항을 말한다.

거의 무릎을 꿇다시피 하고 어르신의 말을 경청하는 문재인이다. 참여정부에서 일하던 사람으로 충분한 대책을 세우지 못한 점을 사과한다고 했다.

마침 점심시간이다. 그것도 선거운동이고 카메라 기자들의 요구도 있었지만 문재인은 열심히 정성껏 식판을 어르신 식탁에 나른다. 청와대 직원 식당에서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복지관 이사장인 김말순 여사는 장애인 정책에 관한 설명을 식사를 함께하면서 듣는다. 배가 무척 고팠나 보다. 문재인은 밥알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웠다. 아마 선거운동 하면 하루에 대여섯 끼는 먹어야 할 것 같다.

복지관을 나와 지구당에 잠시 들려 휴식. 많은 얘기를 나눴다. 서울선거에서 난무하는 나경원의 무절제한 네거티브 폭로. 그의 얼굴에 분노가 역력하다. 한나라당 후보의 네거티브는 반드시 역풍을 맞을 것이라고 예언했고 사실로 나타나고 있다. 승패를 떠나 정정당당하게 겨뤄야 선거의 후유증이 없다고 했다.

주위에서 잠시 쉬라고 한다. 등의 자에 앉은 문재인은 바로 잠이 든 것 같다. 항상 정치와는 거리를 두려고 했던 문재인이 지금 꿈을 꾼다면 무슨 꿈을 꿀까. 혹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지는 않을까.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문재인이 자신의 저서 ‘운명’에서 말했듯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내 준 숙제 속에서 정치에 발을 들여 놨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랜 세월 그를 지켜본 내 생각은 이렇다. 그는 신념과는 비록 다르다 할지라도 자신이 나서야 할 때라고 결론을 내리면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몸을 던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그가 바로 그렇다.

옳지 않은 것에 대한 불퇴전의 용기. 계산을 따지지 않는 그의 일관된 행동이 가져온 신뢰. 그것이 오늘의 한국정치에서 그의 위치를 특별하게 만든 게 아닌가 생각한다.

오늘의 ‘통합과 개혁’이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문재인이 부산 선거에서 승리를 하고 내년 총선에서 영남을 승리로 이끌고 그리고 다음에 어떤 역할을 하던 그가 한국 정치에 끼치는 영향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큰 자취를 남길 것으로 믿는다.

그를 따라다니며 그의 선거운동 하는 모습을 보면서 선거운동은 저렇게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유권자들에게 부탁했다. 선택은 유권자의 몫이지만 투표는 반드시 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이 정치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선거이고 투표다. 투표의 포기는 정치포기는 물론이고 행복 추구권의 포기라고도 했다. 민주국민의 자격이 없다고 혹평했다.

그의 행동이 항상 그렇지만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는 그의 진실한 모습. 그 이상으로 설득력을 발휘하는 것이 어디 있을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부산이 바뀌면 영남이 바뀌고 영남이 바뀌면 대한민국이 달라진다는 그의 말이 오랫동안 귀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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