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은 무너져도 나라는 살아야 한다

위독한 환자의 상태를 주시하던 의사가 손을 놓는다. 포기한 것이다. 가족들도 포기했다. 이제 장례식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인간도 병이 들어 회복하지 못하면 사망한다. 인간만이 아니라 가정도 잘못되면 망한다. 기업도 잘못 경영을 하면 문을 닫아야 한다. 세상 이치라는 것이 다 그렇다. 잘못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기업은 망하면 그들의 불행으로 끝이 난다. 헌데 좀 복잡하고 심각한 것이 있다. 국가의 경우다. 나라가 망한다고 생각해 보자. 물론 땅덩어리가 어디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일제 36년. 나라가 망했다고 했다. 국민은 살아 있으되 나라는 없었다. 살아도 죽은 자가 있고 죽어도 살아 있는 자가 있다.

요즘 국가위기가 극을 향해 치달리고 있다. 세계경제가 위기라서 그렇다고 억지를 쓰지만 문제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안에 있다. 핑계를 대도 믿지 않는다. 국민들의 얼굴을 봐도 안다.

뭘 알아서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야단치지 말라. 국민들은 어리석은 듯하고 모르는 것 같아도 다 안다. 외환보유액이 얼마인지는 몰라도 강물이 흐르는 방향은 안다. 어떤 바람이 어떻게 어디로 부는지는 안다.

무엇이 국가 위기냐. 대보라고 하면 책 한 권을 써도 모자랄 지경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 경영능력이 있느냐다. 요즘 마치 화산처럼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는 불법과 비리들은 국민들로 하여금 점점 좌절로 빠져들게 한다. 한번 나열해 보자.

정권 실세 비리, 저축은행비리, 전력대란, 사법불신, 언론불신, 등록금대란, 청년자살, 인사정책, 지역소외, 종교부패, 군의 비리 등등. 언론이 진실을 왜곡하고 사실을 감추면 국민이 모를 줄 알지만 국민은 나름대로 다 안다.

위에 열거한 사실들은 국민이 알고 있고 목격한 사실들이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것은 보이지는 않지만 국민들의 마음속에 자리한 불신의 응어리다. 신뢰를 잃으면 모두가 끝이다. 동네에서 가게 하나 하는데도 신뢰가 생명이다. 아물며 국가 경영에서야 더 말해 무엇하랴.

솔직하게 묻는다. 국가공무원들은 자신들이 기획하고 집행하는 일들을 국민들이 얼마나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자신들 스스로는 얼마나 국민들에게 정직하게 사실을 알린다고 믿는가.

유감이다. 모두가 안 믿는다. 공무원도 국민도 안 믿는다. 여야 정치인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국민은 믿지 않는다. 정부가 아무리 공정사회를 떠들어도 국민은 믿지 않는다.

더 이상 부패할 수는 없다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검찰수사, 한명숙 전 총리사건, 곽노현 교육감 기소, 천안함 사건, 한미 협상대표 김종훈의 거짓말, 국민이 정부발표를 믿는다고 믿는 정부라면 희망을 포기한다.

전혀 방향을 못 잡고 방황한다. 도대체 ‘공군전시작전계획’이 행방불명이라니 이런 군대가 온전한 군대인가. 월남이 망할 때 미군이 ‘고 딘 디엠’ 정권 군대에 지원한 무기가 다음 날이면 월맹군이 사용했다고 한다. 장개석 군대가 지원받는 무기를 중공군에게 팔아먹는 얘기는 이제 얘기거리도 안 된다.

우리가 개발했다는 무기를 보자. 창피해서 말이 안 나온다. 갈지자 항진하는 함정, 포신이 휘는 전차포, 물이 새는 군화, 군에 지급되는 불량식품, 군의 학대행위와 자살, 전직 참모총장에게 전투기를 빌려주는 공군, 잃어버린 공군 ‘전시작전계획’… 입을 열기가 무섭다.

책임을 누가 지는가. 이미 책임질 문제를 넘어섰다. 정권 실세에게 백억을 주었다는 이국철의 폭로와 이국철의 입을 막으려는 기도라는 오해를 할까 조사를 못 한다는 법무부 장관. 국영기업체의 간부는 모두가 TK이고 고대고 MB 캠프 출신이라는 국정감사에서 지적이다. 아닌가. 아무리 뻔뻔해도 이런 정부를 믿어 달라고 말을 할 수는 없다.

4대강은 수십 조를 들여 강에 모래를 파냈다. 홍수 방지라고 했다. 지난 장마에 다시 모래가 쌓였다. 모래를 다시 파내야 한다. 4대강 개발에 지천개발이라는 것은 없었다. 이제 지천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몇 십조가 또 든다고 한다. 깨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니라 흐르는 강에 돈 뿌리기다.

그냥 쏟아 붓는다. 이 돈이 어디서 나는가. 이제 외국에서 빚도 안 준다. 신용등급이 떨어졌다. 동네 가게도 신용 없는 집에는 외상을 안 준다. 많다고 자랑하든 달러는 다 어디로 갔는가. 달러 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른다.

지난여름 구제역 난리는 국가경영능력 부재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나라가 가축들의 무덤이 됐다. 전력대란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 전세대란. 청계광장에서는 대학등록금 때문에 투쟁하는 대학생들이 물대포를 맞으면서 밤새 경찰과 싸운다.

하루에 피죽 한 끼를 먹어도 희망이 있으면 산다. 이명박 대통령은 천하에 낙관주의자다. 다 자기가 해 봐서 안다고 한다. 경험은 스승이다. 경험을 한 대통령이 해법을 내 놔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해법 이전에 전제가 있다. 신뢰다. 해법을 내 놨는가. 이명박 대통령이 말했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국민은 83%가 아니라고 한다고 했다.

한나라당이나 청와대도 스스로 한심할 것이다. 트위터나 각종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 들어가 보면 민망할 정도로 대통령에 대한 조롱이 넘쳐 난다. 조롱의 많은 부분이 측근비리와 신뢰와 관련해서다. 이것이 바로 민심 아닌가. 알바들이 조직적으로 대통령을 조롱한다고 생각하는가.

대통령의 신뢰가 무너진 사례들을 일일이 열거하는 것도 번거롭다. 국민들이 직접 알고 느끼고 있다.

김영삼이 벌려 논 IMF 사태는 경제가 망한 것이다. 그때 국민들은 자식들 돌 반지를 들고 나왔다. 함께 국가 난국을 극복하자고 발 벗고 나선 것이다. 그때 왜 국민들이 발 벗고 나섰을까. 국민들은 IMF를 극복하려고 노심초사 애쓰는 김대중 정부를 신뢰한 것이다. 세계가 우리 국민을 칭찬했다.

지금 국민들의 심정은 어떤가. 먹었다 하면 몇십억 몇백억 몇조씩이다. 그 돈 모두 뭘 할 것인가. 자식들한테 물려줄 것인가. 스스로 땀 흘려 번 돈이 아니면 자식들만 버린다. 실세라는 인간들이 부실 기업인들과 외국을 돌아다니며 바람을 잡는다. 다이아몬드 광산이 등장하고 유전이 등장한다. 그러나 결과는 꽝이다. 실세들의 주머니만 불린다.

이런 정부가 망하는데 어느 국민이 발 벗고 나서길 바랄 수 있으랴. 거기다 더욱 기가 막히는 일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 말이다.

“우리 정부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부다.” “조그만 흠집이라도 남기면 안 돼”

이 말을 듣는 국민들의 마음은 어떨까. 여론은 84%가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이나 청와대 참모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알고 있는가. 내가 아는 청와대는 모든 정보의 집산지다. 정말 그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명박 정권의 마지막이 축재로 마감하기를 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런 소망은 사라진다. 이미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장례를 끝낸 지도 모른다.

이것도 ‘운명’이라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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