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지금도 뒷걸음질치고 있다

재난은 예고 없이 닥친다. 예고를 하고 오면 재난이 아니다. 사실 재난이라고 하는 것도 닥치면 엄청 고통이지만 생각만으로는 별 게 아니다. 거기다가 설마 하는 안도감은 늘 재난에 대비하는 경각심을 무디게 한다.

살림이야 어떻든 간에 명절이라고 해서 고향을 찾는다 하고 성묘도 간다 하고 조금씩은 들떠 있다. 오갈 데 없는 늙은이들은 명절이 더욱 서럽고 노숙자들은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이겠지.

추석 연휴라고 해서 돈 많은 사람들이야 해외나들이를 가며 연휴가 한 달쯤 됐으면 좋겠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노동자들은 연휴가 더 무섭다. 좋은 계절에 왜 재수 없는 소리만 늘어놓느냐고 타박을 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런 건 도리 없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이 몹시 고약하다. 10일 밤에는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덜컥 교도소에 수감됐다. 추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할 판이다. 조상님들께 차례도 못 올리겠지. 영장심산가 뭔가는 도주와 증거인멸의 위험이 있는가 없는가로 따진다는데 판사님은 서울시 교육감의 인격을 그야말로 똥으로 알았나 보다.

그러나 고스톱 판에서는 ‘오야’ 맘대로라고 하던가. 영장은 떨어지고 인터넷은 아우성이다. 이제 검찰에 이어서 사법부마저 권력의 시녀가 됐다고 한숨이다. 판사는 법으로 말한다고 하는데 왜 국민은 아니라고 하는가. 상식에 반하기 때문이다. 법관도 상식이 있고 국민도 상식이 있다. 상식에도 그토록 차이가 나는가. 영장 발부 이유를 개소리라고 하는 네티즌이 부지기수다.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고 알아서 기었다는 것이다. 사법부의 치명상이다.

서울시장 오세훈의 도중하차, 안철수의 태풍, 박원순과의 아름다운 타협, 박근혜 인기의 추락, 변변한 시장 후보 하나 마련해 내지 못하는 한나라당의 딱한 처지…. 보나 마나 10월26일 서울 시장 선거는 물 건너갔다. 그렇다면 내년 총선거는 어떻게 되는가.

한나라당으로서는 생각하기도 싫은 소름 돋는 얘기뿐이다. 서울에서는 몇 석이 아니라 어느 누가 살아남느냐가 관심이다. 철석같이 믿는 부산에서도 2명만이 안심이란다. 이야말로 아직 숨도 안 넘어갔는데 초상집이다.

대통령 선거는 어찌 되는가. 졸도를 할 지경이다. 유일하게 자신 있는 것처럼 보이던 박근혜 전 대표는 안철수 바람에 휘청, 기자의 질문에 ‘병 걸리셨어요’ 신경을 곤두세운다. 야권 단일후보만 나오면 끝장이라는 것이 여론이다. 결국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추석이 지나면 여론은 어떻게 될까. 아마 추석이 원수 같을 것이다.

너무나, 너무나 끔찍한 생각

5·16쿠데타는 당연히 예고도 없이 들이닥쳤다. 자유당 이승만 정권이 국민에 의해 무너진 불과 1년도 안 된 시기에 박정희는 총을 들고 민주정권을 강탈했다. 쿠데타의 사회적 통념은 강도다. 당시 내가 졸병으로 근무하던 서울지구 위수사령부인 6군관구는 쿠데타의 본부였고 졸병들은 카빈 소총 한 자루 달랑 메고 졸래졸래 따라다녔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당연히 최고의 권력기관이고 국회는 해산되고 선글라스 낀 박정희는 황제였다. 그로부터 18년. 자유는 이 땅에서 사라졌다. 법은 권력의 시녀였고 대법원의 사형선고 다음 날 형 집행을 하는 사법살인이 저질러졌다. 언론은 입에 재갈이 물리고 잽싼 사이비 펜대는 권력의 밑을 닦아주기에 휴지가 모자랐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리고 79년 10.26 궁정동의 총성. 박정희는 김재규의 총탄에 삶을 마감했다. 지금 공과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헌정의 중단이고 민주주의에 말살을 지적하는 것이다. 참 많이도 죽었다. 많이도 죽였다. 민주주의를 사랑한다는 죄목으로.

민주주의가 오는 듯했지만 전두환이 또다시 총을 들었다. 광주시민의 피를 연료로 독재의 탱크를 굴렸다. 이제 몸서리 처지는 쿠데타 얘기는 그만두어야 하는가.

한나라당이 지금 당하고 있는 사면초가의 민심,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 4대강을 비롯해서 벌려놓은 일들은 내년이면 끝장이다. 야당이 다수를 차지한 국회는 틀림없이 국정조사를 할 것이다. 특검을 할 것이다. 줄줄이 불려나가 카메라 앞에 설 것이다.

4대강은 멈춘다. 언론이 등 돌린다. 벌써 징조가 이상하다. 검찰도 저 살기에 바쁠 것이다. 미국이 봐 줄 것인가. 위키리크스가 전하는 미국의 모습은 이미 등을 돌렸다. 이런 것을 위해서 사면초가라는 말이 생긴 것 같다.

국민들은 벌써 정권이 바뀐 뒤에 이명박 대통령의 행보를 주목한다. 서울시장 재임 시에 퇴임하는 날 아침까지 정상근무를 했다고 자랑하는 이명박 대통령이다. 신념에 차 있다. 그런데 왜 국민들이 그의 퇴임 후를 주목하는가.

궁금한 것이 많다. 동영상까지 존재하는 BBK는 어떻게 되는가. 도곡동땅, 4대강에 퍼부은 20조 원은 다 어디로 갔는가. 부산저축은행, 국회도청, 노무현 대통령 사망관련, 각종 권력형 특혜, 천안함 사건 등등. 보통 신경이 쓰일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마지막이라고 생각됐을 때 무슨 짓이든지 한다. 주한미군 사령관인 위컴이 한 말이 있다. 한국민은 쥐 근성이 있어서 꼬리를 물고 뒤를 잘 따른다고 했다. 오장이 뒤집히는 모욕이지만 반성할 점은 없는가.

마음만 먹으면 밀어붙이는 불도저 성격, 공멸을 면하려는 쓰레기 언론들의 간신배 같은 아첨. 군부라고 다르지 않다. 실타래처럼 얽힌 비리를 숨기려는 속셈은 모두가 한 통속이다.

쿠데타의 단맛을 본 세력과 그의 후예들은 정권 도처에 은밀하게 숨어 있다. 각계 요소에 자리 잡은 그들은 지금도 독재 시절의 짙은 향수를 느낀다. 기회만 오면 오죽이나 좋아할까.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남의 일이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분명하게 뒷걸음질을 하고 있다. 외국의 평가도 같다. 2차 대전 후 가장 빨리 민주주의를 이룩했다는 찬사를 이제 포기해야 하는가. 공포가 침범한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억 하고 숨졌다는 박종철,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이 땅에 다시는 그 같은 비극의 죽음은 없어야 한다.

꿈을 깨야 한다. 나쁜 꿈은 빨리 깨어날수록 정신 건강에 이롭다. 정치는 순리로 해야 한다. 권력도 순리로 주고받아야 한다. 내 놓기 싫다고 붙들고 있을 수 있는 권력이 아니고 갖고 싶다고 해서 차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서로들 어떻게 하면 국민의 행복을 위할 수 있는가를 두고 경쟁을 하고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할 것이다.

여야는 원수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이끌고 가는 두 개의 축이다. 한 쪽이 잘못하면 키를 넘겨야 한다. 넘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쓸 때 갈등이 생기고 비극이 온다.

억지가 사촌보다 낫다는 속담은 있지만 우격다짐이 통하는 세상은 사라졌다. 순리대로 살자. 그게 비극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며 명대로 살 수 있는 길이다. 힘으로 된다는 망상은 즉시 버려야 할 것이다.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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