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완패, 야권연대의 가능성 확인, 진보정당의 약진 등등 숱한 화제를 남기고 4.27 재보궐 선거의 긴 여정이 끝이 났다.

기자라는 이름으로 첫 번째 선거를 겪게 된 나는 지난 한 달여 동안' 10년 동안 군수 선거만 6번째', '부부군수vs형제군수의 오랜 대결'이라는 진기록을 가진 전남 화순에 매진했다.

▲ 4.27 전남화순군수 재선거 민노당 백남수 후보(왼쪽)와 진보신당 최만원 후보.

일주일에 4~5번 화순을 찾아 민심을 살피고 후보들의 활동을 점검하며 온 신경을 화순에 기울였다. 선거 전 날에는 꿈에 '화순 군수 당선자 000'이라고 나올 정도였으니.

화순군수 재선거의 첫 번째 취재는 지난달 15일 “화순의 오명 이제는 씻어보자”고 모인 화순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정당의 ‘화순정치개혁시민모임’ 자리였다.

물론 이날의 자리는 ‘선거법’이라는 장애물에 부딪쳐 제대로 된 신호탄을 쏘아 올리지 못하였지만 새로운 정치, 깨끗한 정치를 원하는 화순 지역민들의 갈망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이른바 '부부군수', '형제군수'로 대변되는 토호세력의 대결로 지칠 대로 지친 화순군민들에게는 새로운 인물이 필요했다.

또 인구 7만, 이중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화순읍에서 7천여 표만 얻으면 당선이 가능한 화순군에서는 소수의 정치세력에 의한 당선가능한 수의 유권자 동원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얼마든지 ‘새로운 인물’의 당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두 진보정당 후보의 단일화 가능성과 기대가 높아져갔고 두 후보 측의 접촉도 여러 차례 진행됐다.

하지만 결국 두 후보의 단일화는 결렬됐다. 두 후보 측에 따르면 세 차례 만남을 갖고 단일화 합의는 이끌어 냈으나 양 쪽의 이해관계 차이로 결국 결렬된 것.

진보신당 최만원 후보 측은 “전국적인 야권연대의 틀에 따라 순천에서 민노당이 야권단일후보로 나섰으니 화순에서는 진보신당의 차례다. 전남도의원 화순 제2선거구 선거도 치러지는 만큼 백남수 후보가 도의원 후보로 출마하기를 권장한다”고 배수진을 친 것으로 알려졌다.

▲ 지난 18일 4.27 전남화순군수 재선거 민주노동당 백남수 후보가 이정희 민노당 대표와 함께 화순읍 국민은행사거리에서 100배를 진행하고 있다. 백 후보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매일 100배 유세를 진행해 큰 호평을 얻었다. ⓒ백남수 후보 제공

한편 민노당 백남수 후보 측은 “화순군수 재선거는 전국적인 야권연대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된 것으로 여론조사 등을 통해 단일 후보를 결정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양보는 있을 수 없다”고 응수했다. 

최 후보는 지난 12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야권연대 과정에서 민주당이 진보정당에게 보이는 행태를 민노당이 진보신당에 강요한다는 느낌을 받는 당원들도 많다”고 말해 두 후보의 단일화 가능성이 매우 낮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토호세력의 대결로 계속되는 화순의 오명을 씻고자 화순정치개혁시민모임은 양 후보 측에 “1대 1 협상 테이블에서 공약과 인물만을 놓고 단일 후보를 결정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화순정치개혁시민모인 한 관계자는 “특정 정당을 지지할 수 없으므로 진보정당의 후보 단일화가 이뤄진다면 군민후보로 추대하고 화순 정치 개혁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노력했지만 양 측의 첨예한 입장 차이로 타결되지 못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백 후보, 최 후보 모두 “변화를 바라는 화순군민의 열망이 높다. 토호세력의 대결로 분열과 상처뿐인 화순의 화합을 이루겠다”고 공언했고 유세 현장에서는 늘 유권자에게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유권자의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입장에서는 다른 정당의 두 후보가 선거를 완주하고 유권자의 선택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응당 옳은 일이지만, 오랜 토호세력의 대결 속에서 지치고 냉담해진 화순군민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대목이라고 본다.

두 후보의 선거 결과는 참패였다. 홍이식 당선자(이제는 군수)가 1만6천523표(49.03%), 무소속 임호경 후보는 1만3천87표(38.84%)를 얻었다. 투표수 3만4천154명(투표율62.0%) 중 두 후보가 2만9천610표로 무려 86.7%를 가져갔다.

반면 백 후보는 3천510표(10.41%), 최 후보는 574표(1.70%)를 얻는데 그쳤다. 두 후보의 표를 합쳐도 4천84표로 낙선한 임 후보의 1/3 수준이다.

득표율을 놓고만 본다면 백 후보와 최 후보의 단일화가 무슨 소용이냐는 회의적 반응이 당연하지만 진보정당의 후보 단일화를 통해 화순 지역에 진보정치, 새로운 정치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면 '군민추대후보'로서 활약도 기대해 볼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진보정당 출신 기초의원 한 명 없는 화순에서 처음으로 군수 후보로 출마해 진보정치의 씨앗을 뿌렸다는 것만으로 이번 선거를 평가하기에는 너무 큰 아쉬움이 남는다. 더욱이 4.27 재보선을 두고 '민주노동당의 승리'라고 평가하기에는 민노당이 화순에서 보여준 모습에 무척 안타깝다.

농민회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민노당이 정치력을 발휘해 시민사회단체의 요구를 안고 진보신당과의 단일화에 적극 나섰다면, 불모지나 다름없는 화순에서 진보신당이 진보정당이 뿌리내리기 위해 한 발 뒤로 물러났다면 4.27 화순군수 재선거는 새로운 양상을 띠었을 것이라 믿는다.

▲ 4.27 전남 화순군수 재선거 진보신당 최만원 후보 선거운동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최 후보를 알리고 있다. ⓒ광주인

최 후보 측이 백 후보의 도의원 출마를 권유한 상태에서 후보 등록을 불과 며칠 앞두고 김기철 후보가 출마 선언을 한 것은 더 이상 양보할 카드가 없는 최 후보 측의 후보단일화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였다고 생각한다.

정책선거는 간데없고 선거 기간 내내 이어지는 홍 당선자와 임 후보 간의 비방전. 부부군수를 향한 비판, 형제군수가 선거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는 주장과 비판이 밑바닥에서부터 불어오는 데도 두 진보정당은 그 바람을 타지 못했다. 

이러한 결과는 비단 후보단일화 실패뿐만이 아니라 화순지역에서 자리 잡지 못한 두 정당의 한계에서 비롯한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진보신당에 비해 조직력이나 인지도에서 우위를 차지한 민노당의 경우 순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김선동 후보가 야권단일후보로 나서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중앙당을 비롯한 광주시, 전남도당이 대부분 순천에 집중 지원을 벌여 화순군수 재선거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점도 있었다.

광주에서 지리적으로도 매우 근접한 화순에 광주지역 16명의 민노당 광역.기초 의원들은 5~6명이 한 두차례 화순을 방문했을 뿐 화순에 대한 지원유세는 거의 전무했다.

소규모의 농촌 도시이기에 더욱 지역민과의 밀착한 생활정치가 필요하고 ‘서민의 당’이라는 두 정당의 이미지와 맞닿아 더욱 유리한 고지를 오를 수 있었음에도 두 정당이 그동안 화순에서 보여준 활동 미약으로 이번 선거에서는 유권자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 

치열했던 화순군수 재선거는 민주당의 승리로 돌아갔다. 형제군수의 개입 여부, 후보들의 불법선거 운동 의혹, 계속된 네거티브 선거전 등 ‘화합’을 외치던 선거를 통해 화순은 또다시 분열과 상처를 겪었다.

과정이 어떠하든 이렇게 나의 첫 번째 선거취재도 끝이 났다. 홍이식 군수를 비롯해 임호경 후보, 백남수 후보, 최만원 후도 '쉼없는 질주'를 마쳤다.

매일 100배를 하며 군민들에게 온 마음, 온 몸을 다해 호소하던 백 후보도, 소수의 선거운동원으로도 진심을 다해 군민을 만나던 최 후보도  하나의 산을 넘은 지금,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화순군은 ‘홍이식’이라는 새로운 군수를 맞이하게 됐다. 지난 28일 홍이식 군수가 취임식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화순, 덩실 덩실 춤 출수 있는 화순을 만들겠다”고 말한 것처럼 화순군이 ‘지방자치 최악의 모델’이라는 오명을 씻고 새롭게 발돋움 하기를, 이제 막 씨앗을 뿌린 화순의 진보정치가 강건하게 성장해 주민들의 진정한 대안세력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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