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많은 장애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은 1년 중 장애인의 날 하루 뿐일 것이다.

장애인 관련 기자회견을 가보면 늘 ‘그 얼굴이 그 얼굴’이 경우가 많다. 물론 다른 곳들도 비슷한 실정이지만. 또 장애인들의 기자회견은 늘 미리부터 준비가 한창이다.

20여분 가량 되는 짧은 기자회견을 위해서 장애인들은 아침부터 장애인콜택시 예약을 위한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 위에서 ‘위험의 질주’를 하며 모인다.

▲ ⓒ광주인

지난 20일 열린 ‘장애인의 날’ 아니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을 맞이하여 100여명의 장애인, 장애 단체 관계자 등이 모였다.

이날 기자회견 사회를 본 한 장애인 단체 관계자는 “집회 신고 할 때 50명이라 하더니 왜 500명 왔냐고 경찰이 타박이다”라며 “50명만 남으시고 나머지는 자율에 맡기겠다”고 농을 치기도 했다.

평소 외출이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하던 장애인들도 이날만큼은 ‘집 밖 세상’에 나왔다. 곳곳에서 세상을 향한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장애인의 날이 무슨 소용인가. 장애인의 날이 의미가 없어질 때까지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 “모든 장애인 관련법은 장애당사자가 없는 형식적인 그것일 뿐이다”

장애인 교육권 보장 기자회견을 마치고 광주시청까지 행진을 시작하며 이 관계자는 “겨우 행진하고 마느냐는 비아냥거림도 있지만 장애인들에게는 행진마저 목숨을 건 행동이다”라고 말했다.

휠체어에 몸을 맡긴이, 불편한 걸음 겨우 내딛던 이들의 ‘목숨을 건’ 행진은 2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4월 중순의 따가운 햇볕 아래에서 신체 건강한 사람도 갈증이 나고 다리가 아파왔지만 장애인들의 행진은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가 없었다는 표현이 맞다.

이들의 행진이 잠시라도 멈춰지려 하면 여기저기에서 울려대던 자동차 경적 소리, 경찰들의 호각 소리에 머리가 멍해질 정도였기 때문이다.

행진이 1시간을 넘어설 쯤 교차로에서 잠시 정체해 있던 이들에게 시내버스 한 대가 ‘머리부터 들이밀며’ 위협을 가해왔다. 그 버스는 바로 장애인들의 '그나마 있는' 교통수단인 저상버스였다.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도입된 저상버스가 장애인들이 생존권 보장을 외치며 거리로 나오자 위협의 수단으로 돌변한 것이다.

여기저기서 “어머 저 버스 좀 봐”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내 버스는 무리한 진입을 시도하지 않았지만 참 볼썽사나운 광경이었다.

곳곳이 파이고 깨져서 휠체어가 다닐 수 없는 인도, 하루 평균 16분에 그치는 활동보조 서비스 시간, 하늘에 별 따기인 장애인 콜택시 예약, 살짝만 밀어도 넘어질 정도인 건물 진입 경사로 등 이들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던 것들이다.

거리에 보이지 않는 장애인들은 차량을 이용하겠거니 했고 길게 돌아가게 만들어져있는 경사로 육교가 불편했다. 중증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가 "장애 친구가 더 놀다가라고 붙잡는 것이 가장 속상하다"는 이야기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이들도 나와 비슷할 것이다. 이날 이들의 걸음으로 장애인들의 외침이 1년 중 단 하루 장애인의 날에만 세상에 울리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그리고 장애인의 날이 ‘무의미한’ 기념일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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