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의 타지 출장(?)을 마치고 방전된 체력을 충전시키기도 전에 ‘오늘 새벽 어등산 공사현장 대규모 연행’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부리나케 택시를 잡아타고 광산경찰서로. 경찰서에 직접 취재 가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서 어디부터 가야되는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 지 ‘멍’한 채로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 앞에 도착하자 4일 새벽 광주 광산구 운수동 어등산개발 현장에서 연행된 민주노총의 관계자들이 여럿 보였다.

오늘 새벽 6시께 8시간 노동시간 준수, 산업재해예방시설 확보, 건설기계 단가 인상 등을 요구하며 지난달 30일부터 현장 입구에서 농성 중이던 건설기계노동자와 민주노총 간부, 민노당 지방의원 등이 광산경찰서로 연행된 것.

51명이라니! 기자가 된 후 최대 규모의 연행자 발생이다. 그것도 서로의 몸을 동아줄로 엮고 농성 중이던 노동자들을 한꺼번에 연행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죄명은 ‘업무방해’. 트럭 진입을 막아 공사를 방해하는 것이다.

경찰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연행자들이 모여 있다는 4층에 갔다. “문이 열려있네! 무조건 들어가자!” 했다가 쫓겨났다. 수사가 덜 끝났으니 나가달라는 것.

다시 현관에 내려와 민노총 관계자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다시 경찰서 내부를 두리번두리번. 어디 문 열려 있는 곳은 없는지. 어디 나오는 사람은 없는지 뱅뱅 돌아다녔다.

옳다. 저기 민노총 관계자가 한 사무실로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또 무조건 들어가자!

그곳에는 이날 함께 연행된 국강현 광산구의원이 있었다. 광산구의회 부의장실에서 보던 국 의원을 경찰서에서 만나다니.

하지만 이내 곧 쫓겨났다. “어이! 저기 기자 분 좀 나가시라고 해”

결국 별다른 소득 없이 두 번을 쫓겨나고 전화만 ‘엄청나게’ 돌렸다. 경찰서는 처음이니 어디에 어떻게 전화를 걸어 물어봐야 되는 지도 모르고 전화를 걸고 내 소개만 20번은 넘게 한 듯싶다.

그리고 다시 광산경찰서에서 광주시청 앞으로 향했다.

원래 이날 오전 10시에 건설노조는 “안전장치도 없는 살인적 장기간 노동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이날 기자회견은 갑작스러운 대규모 연행 규탄 기자회견이 되었다.

51명, 그것도 민주노총 광주지역본부장, 광산구 의원 등이 포함된 연행으로 인해 많은 언론사에서 기자회견장을 찾았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도 여느 때와 다르게 상당한 숫자였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기사를 검색해 보니 여기저기 언론에 이날 새벽 연행에 대한 기사가 올라 있었다. 저 작은 사실 하나를 알아내기 위해 1층에서 4층 다시 2층 4층을 오르내렸던 것이 허망하면서도 "왜 난 저걸 바로 못알아냈지"라는 '박탈감(?)'도 찾아왔다.

난 비록 스스로 많은 것을 알아내고 속보를 올리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다행히 이날 연행된 51명은 오후 1시께 전원 귀가했다. 그리고 풀려난 노동자들은 다시 천막을 쳤다.

이날 오후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만난 박용순 건설노조 광주전남건설기계지부장은 “건설노동자는 마이너스 인생”이라고 말했다.

이 세상 어디에도 마이너스 인생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오늘 경찰서에서 두번 쫓겨나며(?) 현장을 알아내려고 노력한 것도, 모든 이들이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것이 분명한데 ‘일할수록 빚더미, 일할수록 마이너스’라는 것은 참으로 가혹하다.

마이너스 인생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천막을 친 건설노동자도 처음 간 경찰서에서 두 번 쫓겨나며 '시련'을 겪은 나도 모두 다 '내일은 플러스 인생!'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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