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번호부 등재 유무‘정치 성향차이’ 존재…여론조사가 한나라당에 유리한 이유 

“전화번호부에 집 전화를 등재(登載)한 집단과 등재하지 않은 집단 간 정치적 성향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가구’ 만을 대상으로 한 방식은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 한나라당 정당 지지도가 민심과 괴리된 ‘모래성’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조선일보가 정치면 기사로 전했다. 조선일보는 2월 15일자 8면 <여론조사 왜 툭하면 틀리나 했더니…비밀은 ‘전화번호부’에 있었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조선일보가 기사의 근거로 삼은 자료는 14일 발표된 아산정책연구원 보고서이다. 아산정책연구원은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명예이사장으로 있는 싱크탱크이다. 아산정책연구원은 중요하면서도 민감한 자료를 발표했다.

▲ 조선일보 2월 15일자 8면. ⓒ미디어오늘 갈무리
여론조사 기관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전화번호부 여론조사에 ‘오류’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내용이다. 아산정책연구원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11일부터 6일간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RDD(임의번호걸기․Ran-dom Digit Dialing)방식으로 조사했다.

RDD는 현재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번호를 대상으로 조사하는 게 아니라 국번 이외의 마지막 4자리 번호를 컴퓨터에서 무작위로 생성한 뒤 조사하는 방식이다. 전화번호부에 등재되지 않은 가구까지 조사할 수 있다.

조사결과는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가구의 이명박 대통령 지지도는 48%로 나타났지만, 등재되지 않은 가구에서는 42%로 6%포인트 떨어졌다. 현재 여론조사 기관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전화번호부 등재 대상 가구를 상대로 정당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한나라당 36%, 민주당 18%로 나타났다.

그러나 전화번호부에 등재되지 않은 가구를 상대로 한 조사에서는 한나라당 27%, 민주당 18%로 달라졌다. 민주당 정당 지지도는 변동이 없었지만, 한나라당 지지도는 9% 포인트나 떨어졌다.

여론조사 기관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현재의 기법은 이명박 대통령 지지도와 한나라당 정당 지지도가 상대적으로 후하게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선일보는 “집 전화번호를 개인정보 보호 등의 이유로 전화번호부에 등재하지 않은 가구(63%)가 등재한 가구(37%)보다 훨씬 많았다”고 설명했다.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여론조사의 기본은 대상자 선정에 있어 정치 편향성이 개입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특정 정당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이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해놓고, 이것이 보편적인 여론이라고 발표한다면 자체로 ‘오류’인 셈이다.

집 전화를 가지고 있어도 전화번호부에 등재한 가구와 그렇지 않은 가구 사이에 정치적 성향차이가 존재한다는 아산정책연구원 조사는 그래서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여론조사는 한나라당에 유리한 조사라는 것을 반증하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치 성향 차이가 드러났다는 점은 여론조사 신뢰도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전화번호부 등재 유무는 물론 집전화를 가지고 있느냐 휴대폰이나 인터넷 전화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정치적 성향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의 유권자들은 집 전화를 가지고 있지 않고, 휴대폰 또는 인터넷 전화를 이용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고, 집 전화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의 유권자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분석이 다른 곳도 아닌 한나라당 쪽에서 나왔다는 점이 더욱 흥미롭다.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지난해 12월 3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지금 발표되는 여론조사를 보면 보수층들이 한 80%이상 집 전화를 가지고 있고 좀 자유스러운 개방 마인드를 갖고 진보적인 측면의 젊은이들이나 40대들은 이미 집 전화가 없다”고 설명했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미국의 사례를 들면서 집 전화를 두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정치 성향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미국 같은 경우에 최근에 보도를 보니까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들의 발표를 보니까 모바일 여론조사를 하면 민주당 지지율이 공화당 지지율보다 무려 10% 이상 높게 나오고 있다. 그런데 집전화로 여론조사를 하면 오히려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10% 넘게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경우 집 전화 여론조사를 하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공화당 지지율이 10% 포인트 높게 나오지만, 휴대폰 여론조사를 하면 거꾸로 민주당 지지율이 10% 포인트 높다는 얘기다.

집 전화가 없는 가구는 많지만, 휴대폰이 없는 성인남녀는 많지 않다는 점에서 어떤 여론조사 방법이 바닥민심을 더 잘 반영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조선일보는 아산정책연구원 조사의 의미를 리서치앤리서치 분석을 통해 이렇게 전했다.

"RDD는 장점이 많지만 비용과 시간이 훨씬 더 소요되며, 집에서 휴대전화만 사용하는 20% 가량의 가구는 RDD방식으로도 조사에 포함시키지 못한다.…현재 대통령․정당 지지율과 실제 민심의 차이가 난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명박 대통령 국정지지도, 한나라당 정당 지지도는 실제와 다르게 부풀려졌을 가능성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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