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만만하게 보면 망하는 게 순리

아예 상대를 안 하던 친구 녀석이 있었다. 피차가 말이다. 고등학교 동창이니 수십 년을 알고 지낸 친구다. 의사소통이 안 되는 불통이었고 내 식으로 말하면 꼴통이었다. 그도 나를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연휴 때 친구들과 점심을 하게 됐는데 그 친구도 나왔다. 입이 근질거려 한마디 안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나오는데 어떻게 다 나왔느냐고 물었다. 그 친구 대답하길 네가 나온다고 해서 나왔단다. 또 좌빨 타령 하겠구나.

늙은 친구들 만나면 하는 얘기 뻔하다. 누가 아프다, 누가 노인병원에 들어갔다, 자식 따라 이민 갔다가 죽었다 등등 심란한 소리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나머지가 시국 얘기 정치 얘기다.

모두가 먹물 먹은 친구들이라 나름대로 세상을 보는 눈이 있다. 저마다 생각은 달라도 말이다. 꼴통 친구가 조용하기에 이상하다 싶어 한마디 했다. “너 얌전해졌구나.”

긴말 하지 않고 나한테 미안하다고 한다.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냐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달라졌다. 세상을 보는 눈을 다시 갖게 됐다고 하는 것이다.

누구나 거짓말은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거짓말은 국민에게 엄청난 상실감을 준다. 지금까지도 이승만 대통령 하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6·25때 자기는 대전으로 도망치고 서울 사수할 것이니 시민들은 꼼짝 말라고 한 거짓말이다.

박정희의 거짓말은 혁명공약이다. 민간인에게 정권 이양한다더니 종신대통령 해 먹으려다 비극을 맞았다. 전두환에게는 그냥 통장에 29만 원 있다는 말만 기억하자.

그 친구가 꼴통에서 탈출하게 된 동기도 대통령의 거짓말이 큰 몫을 했다. 설 전날 작심을 하고 이른바 대국민 방송을 했다. ‘대통령과의 대화 2011’이다. 완전히 손들었다. 친구의 말이다.

‘아무리 일방적이라 해도 그렇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지. 충청권 과학비즈니스벨트 공약 하지 않았다는 거짓말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충격과 상실감을 줬는지 아나. 공약집에 없다고 큰 소리 빵빵 쳤는데 금방 들통났어. 어떻게 대통령이 그런 거짓말을 할 수가 있나.’

한 마디 터지자 여기저기서 봇물 쏟아지듯 했다. 대선 공약에서부터 촛불시위 사과 등등 꼴통 친구가 말렸다. 끝이 없으니 그만두자고. 늙은이들이 저렇게 나오면 일은 심각하다.

방송 5개사가 동시 중계한 것도 치사하다는 것이다. 틀림없이 말이 있었을 거라는 것이다. 누가 보느냐. 똑같이 중계하는 데 안 볼 도리 있느냐. 그냥 강제로 먹인 것이고 했다. 국민을 완전히 개무시 했다는 것이다.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도 실속 없는 뻥튀기라는 사실이 들통나면서 그야말로 막가는 정권이라는 것이 증명됐다고 했다. 주얼리호 사건은 어떻게 방송사마다 그렇게 한결같이 틀어대느냐는 것이다.

구제역 때문에 발이 묶였다 하더라도 명절 때 국민의 이동이 3100만이라고 했다. 이들이 전국에 흩어져 세상 민심을 전한다. 그건 명박산성으로도 막을 방법이 없다.

신문과 방송이 아무리 입 닫고 있어도 소용이 없다. 오히려 입 다물고 있는 것이 더욱 반감을 산다. 정권의 시녀와 나팔수가 바로 그들의 모습이다. 대통령의 대국민 대담방송은 앞으로 무슨 소리를 해도 믿지 말라는 선언과 같다. 언론이 무슨 선전을 해도 그건 가증스러운 거짓말일 뿐이다.

국민은 정치인에게 어떤 존재인가

정치인은 국민을 어떻게 알고 보는가. 수십 년 동안 한국의 정치를 보면서 가슴속에 남은 것은 이번 대통령의 대담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필요할 때 꺼내 쓰는 휴지 같은 존재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쓰고 나면 버린다.

정치인의 안달은 선거 때 뿐이었다. 발바닥이라도 핥을 것이다. 당선된 후 양치질하면 되니까. 선거 때 국민들은 후보자들이 내 놓은 공약으로 배가 터질 지경이다. 공약대로라면 대한민국은 천상의 낙원이 될 것이다. 군의원 시의원으로부터 국회의원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공약이 홍수를 이룬다.

국민들은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가 내 놓은 747 점보기를 타고 미래의 천국을 날아다녔다. 세종시, 반값아파트, 반값등록금…. 또 뭐 없는가. 지금 어떤가. 국민들은 다 잊어버렸을 것이다. 너무 많은 약속이었기에 일일이 기억도 못 할 것이다. 그러나 큰 덩어리로 안다. 거짓말 잘한다는 것을 말이다.

문제는 거짓말에 있는 것만이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거짓말을 하고 하지 않았다고 다시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충청권 과학비즈니스벨트 같은 것이다. 왜 이럴까. 거짓말은 시인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 거짓말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가장 빠른 방법임을 왜 모르는 것일까. 국민들을 건망증 환자로 아는 것일까. 딱하다는 생각을 넘어 연민을 느끼는 국민이 많다.

구제역만 해도 그렇다. 초기대응이 잘못됐다는 것이 드러났다. 살처분이 최선이 아니다. 결국 백신을 썼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은 것이다.

충주에서 한 축산농이 자신의 소가 구제역에 감염된 사실을 알고 집을 나갔다. 그는 야산에서 농약을 마시고 숨진 채 발견됐다. 자살하는 축산농이 늘어난다.

이명박 정부는 이제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모르는 모양이다. 무책이 상책이라는 말이 있다. 그 꼴인가.

기회를 잡고도 제대로 쓸 줄 모른다. 이번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담도 그렇다. 처음부터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방송사에 맡기는 것이다. 무슨 질문이라도 해라. 아는 대로 정직하게 대답하겠다. 국가 기밀이 아니라면 숨기지 않겠다. 이렇게 약속하고 대담을 했어야 하는 것이다.

대담은 대박이었을 것이다. 여론조사를 했다면 80%는 됐을 것이다. 국민들은 유능한 대통령도 원하지만 더욱 원하는 것은 정직한 대통령이다. 국민은 정치인들에게 얼마나 많이 속아 왔는가.

이번 대담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3100만 유동인구가 대통령의 거짓말을 전국에 퍼트렸을 테니 이제 수습할 방법도 없다. 여론이란 한곳으로 쏠려가는 속성이 있다. 이번 명절에 한나라당은 재기 불능에 빠졌다.

서울역 대합실. 대통령 대담프로가 나오는 TV 앞에는 지나가는 사람 1명이 보였다. 바로 그 뒤편에 축구 중계에는 사람들이 버글거린다. 화가 난다고 하지 마라. 이 장면이 전 국민에게 알려졌을 것이다. 자업자득이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살인적이란 말이 있다. 지금의 물가다. 시장에 가면 파는 사람도 미안해한다. 너무 비싸니까 말이다. 사는 사람은 속이 상한다. 대파 한 단에 7천 원 하는 나라가 어디 있단 말인가. 차례 상도 초라하다. 조상님들도 잡수실 것이 없어 화가 나셨을 것이다.

명절이 끝나면 물가는 치솟을 것이라고 한다. 더 오른다는 것이다. 우격다짐으로 물가를 잡을 수는 없다. 통제능력을 상실했다.

비리의 백화점 같은 사람이 지식경제부 장관이 됐다. 청문회에서 5명이 낙방을 했다. 감사원장은 시험장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쫓겨났다. 국민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화를 낸다.

경제성장률이 6.1%라고 기고만장 발표했는데 국민들은 코웃음이다. 왜 코웃음 치는지 잘 알 것이다. 실업자가 얼만데 그따위 소리를 하느냐다.

개헌전도사란 감투를 쓴 이재오가 기자들에게 개헌을 도와달라고 했단다. 기자들이 개헌하는가. 여론을 개헌으로 몰고 가 달라는 것이겠지. 그런 부탁 받을 만하다. 언론이야 늘 그렇게 살았으니까. 대통령도 개헌의 발 벗고 나선 모양인데 기자들 말 들을지 모르겠다. 안 될 것을 뻔히 아니까.

국민은 어떤가. 한 마디로 헌법 나빠서 정치를 못했느냐다. 개헌을 떠들어 대는 간덩이가 얼마나 큰지 궁금하다. 안 될 일을 계속 떠드는 저의가 수상한 데 단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국민은 관심 없다.

이명박 정권의 정치가 국민으로부터 얼마나 신뢰를 받는지는 잘 알 것이다. 이제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합법적으로 당선된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임기가 보장되어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선거다. 투표다. 이제 선거에 기준은 누가 거짓말을 안 할 것인가. 누가 국민을 무시하지 않는가. 누가 반민주적인가. 누가 부정과 비리에 젖어 있는가. 이런 것들을 두 눈 크게 뜨고 살펴야 할 것이다.

여론은 한나라당을 떠났다. 레임덕은 가속화될 것이다. 한나라당도 안다. 속을 만큼 속았고 더 이상 안 속는다. 언론 장악해서 아무리 나팔 불어도 여론 안 바뀐다. 국민은 야당을 선택할 것이다. 단일야당을 선택할 것이다.

야권은 진정 나라를 위하고 국민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단일후보를 내 보내라. 그럼 국민은 주저하지 않고 야당을 선택할 것이다.

국민이 차려 준 밥상은 야당 앞에 있다. 제대로 받아먹을 것인가. 발로 차 버릴 것인가. 선택은 야권에 있다. 차려 준 밥상도 받아먹지 못한다면 다음은 망하는 것뿐이다.
2011년 02월 07일
이 기 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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