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대가 지난 2007년, 2009년에 이어 또다시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명예철학박사 학위 수여를 추진하고있다. 이에 전남대 철학과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이 매일 1인시위를 진행하고 반대 성명을 발표하는 등 크게 반발하고 있다. 아래 글은 전남대 철학과 10학번 학생이 정몽준 명예철학박사학위 반대 입장을 담은 기고문이다. / 광주인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께서는 나를 이른바 ‘운동권’ 학생이라고 생각하며, 콧방귀를 뀌며 입을 비쭉 내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미리 말하건대, 나는 내 스스로를 운동권이라고 낙인찍어본 적 없습니다.

이러한 말로 글을 시작하는 것은 운동하는 이들을 얕봐서도 아니고, 그 반대편의 이들에게 아첨하고 싶어서도 아닙니다. 다만 나의 이야기를 가능한 편견 없이 들어줬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대학본부에서 정몽준에게 명예철학박사학위를 다시 수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벌써 3번째 시도라고 하는데, 순간 이런 것이 말로만 듣던 ‘삼고초려’인가 싶었습니다.

문득 작년 전남대 학생회 선거에서 한 후보가 “정몽준 학위수여를 철학과 학생들과 운동권 학생들이 반대하고 두 번이나 막아서 우리들 취업길이 막혔다. 이제 더 이상 운동권 학생들은 안 된다.”라는 말을 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만약 이 소식을 들으면 지금은 학생회로 있는 그들과 그들을 뽑아주었던 모두가 박수를 치며 참으로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전남대의 ‘과격한’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다시 찾아왔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모든 기대와 침묵을 뒤로하고 이 같은 사태에 대해서 반대의사를 표명하려합니다. 그것도 최대한 적극적으로 말입니다.

내가 반대하는 것은 학위를 재정적 지원과 맞바꾸려하는 행위입니다. 정몽준이 대학본부에게 요구했든 대학본부가 정몽준을 설득했든, 양쪽 모두 모양이 우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전자는 양반 신분을 돈으로 사려했던 그 옛날 돈 많던 상인들의 모습을 각색한 현대판 <양반전>이고, 후자는 개인의 명예를 챙겨주기 위해 대학과 학문의 명예를 실추시키려는 대학본부가 어리석음을 자인하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적지 않은 이들이 현실을 고려하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말하는 현실이 ‘진리’가 아닌 물질적 ‘실리’를 일컫는 말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작년,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전남대 철학과에 입학하였습니다. 내가 만일 실리만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면 몇 번이고 용을 써서 ‘더 나은’ 학벌사회에 편입했거나 ‘돈 많이 버는 방법’을 강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주 순진하게도, 더 훌륭하고 고상한 가치가 있다고 믿으며, 명품 스테이크를 먹기보단 꿈과 신념을 먹고 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나는 당신이 매우 예리한 사람이라, 지혜(sophia)를 사랑(philo)하는 학문인 철학(philosophy)과에 다니는 것에 대한 나의 굉장한 자부심을, 이 부분에서 벌써 눈치채버렸을 거라 기대합니다. 난 내 신념과 자부심을 외면하면서까지 실리를 추구하고 싶진 않습니다.

만약 정몽준이 철학박사학위를 ‘명예롭게’ 받기 적정한 사람이라면 애초에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학교 측의 달콤한 꼬드김에 “아니오”라고 현명하게 말하며 미련의 싹을 단칼에 잘라내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대학본부의 판단만큼 명석한 위인은 아닌가봅니다. 2007년에도, 2009년에도, 그리고 2011년에도 판단오류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축구로 치면 퇴장이고, 야구로 치면 삼진아웃입니다.

학교에 기금을 제공하고 학생들의 취업길을 다시 열어주는 것을 담보로 내어주는 철학박사학위에 얼마나 진실성이 있을지, 또, 학부생인 내가 그런 ‘철학박사’에게 과연 어떤 조언과 충고를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당신께 호소합니다. 시대와 사회를 책임지라는 거대한 부탁은 하지 않겠습니다. 부질없는 편가르기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인문학은 물론 모든 학문의 분수령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 진리에 대한 사유와 통찰이 있어야할 대학, 이 두 거대한 탑이 전남대에서만큼은 아직 굳건하다는 것만 보여주면 됩니다. 함께 고민하고 표출해야할 때입니다.
2011년 1월 31일

김진영 전남대 철학과 10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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