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철 국방부 출입기자 "엠바고 수용, 정답이라 볼 순 없어"

피랍선원 구출작전을 두고 대부분의 언론이 영웅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가운데 국방부 기자단 간사를 맡고 있는 한 기자가 구출 작전 중 국방부와 출입기자단이 엠바고를 유지하면서 벌인 과정에 대해 낱낱이 공개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7일, 국방부 기자단 간사를 맡고 있는 기자의 글을 인용 보도했다.

글에는 군이 기자단과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일이 있었고, ‘인질의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으니 국민이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엠바고 논의과정에서 ‘(엠바고를 지켜서) 한 번 바보되나 두 번 바보되나 바보가 된 것은 마찬가지’라는 ‘이왕 버린 몸’론을 펼친 한 기자의 말도 소개됐다.

이 글을 쓴 기자는 기자단의 엠바고 수용만이 정답일 수 없다면서 청와대와 국방부의 부산일보, 미디어오늘, 아시아투데이에 대한 보복을 두고 “블랙 코미디”라고 풍자하기도 했다.

국방부 출입기자단 간사를 맡고 있는 권혁철 <한겨레> 기자는 27일 <한겨레> 국방전문 웹진 ‘디펜스21’에 실은 ‘[소말리아 피랍선원 구출] 여명작전 엠바고 4박5일간의 뒷얘기’에서 국방부와 기자단이 엠바고를 유지할지 여부를 둘러싸고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을 장문의 글로 소개했다.

권 기자는 지난 17일 군이 엠바고 요청을 하면서 작전 실시 여부도 유동적이라면서도 작전 완료까지 관련 보도를 자제해줬으면 한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모순된’ 설명이었지만 엠바고를 지켜달라는 요구였다.

▲ 청해부대의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이 진행됐던 장면. ⓒ합참 공보실

권 기자는 이를 두고 “국방부 고위당국자가 복잡하게 설명했지만 인질 구출 작전을 펼 준비를 하고 있으며 인질 구출 작전이 끝날 때까지 엠바고를 요청한 것”이라고 평했다.

특히 국방부는 이 때부터 이미 군사작전에 따르는 희생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국민들이 이를 이해해야 한다는 판단까지 기자들에게 내비쳤다. 권 기자에 따르면, 군 당국자는 이날 “작전을 한다면 완전 작전(희생없이 작전 성공)이 이상적”이라며 “하지만 작전을 벌일 경우, 경우에 따라선 부분적 희생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실적으로 군대가 작전하는 경우에는 어느 정도 희생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이를 국민들이 이해해줘야 한다”고 말했다고 권 기자는 전했다.

기자들은 엠바고 수용여부에 대해 회의를 열어 “무엇보다 피랍 선원 안전이 걸려 있는 문제인 만큼 신중한 보도의 필요성에는 공감한다”는 뜻을 모아 수용키로 결정했다. 국방부와 기자단은 엠바고를 지키는 대신 △국방부가 구출작전 개시 전 기자단에 사전 언질을 주고 △작전 종료 뒤 신속한 브리핑을 한다는 조건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하룻 만에 깨졌다. 국방부가 깼다는 것이다. 권 기자는 “1월 18일 밤 8시 국방부와 합참 주요 직위자들에게 비상이 걸렸다”며 당일 밤 7시51분 해적이 근처를 지나던 몽골 화물선 추가 납치를 위해 삼호주얼리호에서 하선해 소형 보트로 움직였고, 최영함이 링스헬기를 출동시켜 공격했지만 해적의 사격을 받아 UDT 작전팀 3명이 다쳤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는 그러나 국방부가 이 사실을 기자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으며, 국방부의 위기조치반 소집과 청해부대의 상황보고에 대해서도 알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기자들이 취재에 들어가 곧 ‘청해부대원 몇 명이 다쳤다’는 사실이 파악됐고, “엠바고 유지는 어렵다”는 입장도 국방부에 전달됐다. 당시 방송기자들은 밤 11시 생방송 뉴스 준비를 위해 부산했고, 신문기자들은 1면 머리기사와 상자기사로 구조작전 실패의 원인과 문제점, 향후 전망 등에 대한 기사를 써내려갔다고 권 기자는 전했다.

그러나 국방부 고위 당국자가 다시 기자실로 내려와 계속 보도자제를 요청해 기자들은 심야회의를 연 끝에 이를 수용키로 했다. 권 기자는 “논란이 있었지만 기자들은 사람 목숨과 직결된 사안이기 때문에 삼호주얼리호의 선원들을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있는데 보탬이 된다면 엠바고를 유지하는 게 맞다고 뜻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권 기자는 이 과정에서 한 기자의 말을 소개했다. 이른바 ‘이왕 버린 몸론’이었다.

“한 번 바보되나 두 번 바보되나 이미 바보가 된 것은 마찬가지다. 이왕 엠바고를 수용해 바보가 되기로 작정했으니 인질 구출작전이 끝날 때까지 지켜보자”.

권 기자는 이를 두고 “인질 구출작전이 실패하든 성공하든 국방부 기자들의 엠바고 수용 결정은 언론계에서 논란이 될 것을 지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문제가 생긴 것은 지난 20일 <부산일보>의 ‘소말리아 해적과 교전 해군 3명 부상’이라는 보도와 이를 인용한 <세계일보> <뷰스앤뉴스> <미디어오늘> 등의 보도가 나오면서부터였다. 기자들은 이미 삽시간에 블로그와 개인홈피, 트위터에 퍼간 기사가 무한 복제돼 이미 1차 구출작전 실패는 공지의 사실이 됐기 때문에 엠바고 지속이 어렵다는 입장을 국방부에 통보했다. 그래도 기자들은 다시 약식회의를 통해 엠바고 유지를 결정했다. 보도경쟁으로 해적에 정보가 들어갈 우려가 있고, 해적들이 선원에게 위협을 가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권 기자는 전했다.

또한 권 기자는 “온라인에 보도되도 주요 신문사와 방송사에서 보도하지 않으면 의제설정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정작 작전에 들어가 성공한 21일, 국방부는 엠바고를 요청하면서 공식 브리핑 실시 2시간 전 공지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권 기자는 전했다. 이날 오전까지는 없던 이명박 대통령의 작전 성공을 알리는 대국민 담화가 4시에 잡혀, 이 보다 앞서 국방부가 브리핑하는 것은 결례를 넘어 불충으로 보고 대통령 담화 이후 브리핑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 권혁철 한겨레 기자(국방부 기자단 간사)가 27일 한겨레 국방전문 웹진에 올린 글. ⓒ미디어오늘 누리집 갈무리

권 기자는 기자들이 “우리가 그동안 힘들게 엠바고를 지켜왔는데 갑자기 이 대통령이 1보를 내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만약 인질 구출작전이 실패했다면 이 대통령이 나섰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결국 이 대통령 발표 5분 전에 국방부 기자들이 1보를 내기로 하는 것으로 했고, 대통령 담화는 3시30분으로, 엠바고 해제는 3시25분으로 정해졌다.

권 기자는 이 같은 과정에 대해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나름대로 민주적이고 체계적인 논의과정과 다양한 고민 끝에 엠바고를 수용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이와 반대 의견에 대해서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국방부 출입기자들의 판단이 정답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매체나 기자에 따라 생각은 다를 수 있고, 더구나 <부산일보>나 <미디어오늘> 같은 매체는 국방부 기자단 소속이 아니므로 기자단의 결정과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권 기자는 “구출 작전 성공 직후 청와대, 총리실, 국방부는 엠바고를 어겼다며 <부산일보> <미디어오늘>에 강도 높은 보복을 하고 있다”며 “정부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토론해 생각이 다른 사람을 설득할 능력이 없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렇게 평가했다.

“블랙 코미디다”. 

권혁철 한겨레 기자가 27일 ‘디펜스21’에 올린 글 [전문]

[소말리아 피랍선원 구출] ‘여명작전 엠바고’ 4박5일간의 뒷얘기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됐던 삼호주얼리호 선원 구출 작전은 끝났지만, 엠바고 논란이 한창이다.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엠바고를 수용한 것이 합당한 판단인지, 청와대가 <부산일보> <미디어오늘> 등을 엠바고를 지키지 않았다고 징계한 것은 언론 탄압은 아닌지 등의 논란을 불렀다.

국방부 출입기자단 간사를 맡고 있는 나에게도 이번 엠바고에 대한 이런저런 문의가 많다.
‘소말리아 인질구출 작전’ 엠바고에 얽힌 4박5일의 과정을 나름대로 정리해봤다.

1월17일 오전 11시 10분.

국방부 고위 당국자가 삼호주얼리호 건에 대해 엠바고를 요청하기 위해 국방부 기자들 앞에 섰다.

굳은 표정의 이 당국자가 말문을 열었다.

“국방부는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관련 청해부대 작전은 확인해 줄 수 없다’가 공식 입장이다. 사안이 중대하고 국가이익이 걸려 있고, 무엇보다 선원들의 생명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국방부는 이런 공식 톤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

이 당국자는 먼저 삼호주얼리호 상황을 설명했다.

“출동한 청해부대(구축함 최영함)가 내일(1월18일)쯤 해적에 피랍된 삼호주얼리호 근처 해역에 도착한다. 삼호주얼리호는 이번 주중(1월21일)까지 해상에 있을 것 같다. 주말 이후(1월22일 이후) 해적 목적지인 육지에 들어갈 듯하다. 만약 구출 작전을 벌인다면 작전이 가능한 시간은 이번 주중까지다. 구출작전을 검토하고 있으나 실시 여부는 대단히 유동적이다.”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현지 기상, 정보 가용성, 성공 가능성 등 작전 여건 등을 검토하는 등 대단히 신중해야 한다. 작전을 한다면 완전 작전(희생없이 작전 성공)이 이상적이다. 하지만 작전을 벌일 경우 경우에 따라선 부분적 희생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언론이 청해부대 이동 상황, 작전 완료까지는 관련 보도를 자제해 줬으면 한다.”

기자들과 이 당국자 사이인 문답이 이어졌다. 

기자 : 구출작전을 할 방침인가?
당국자 : 청해부대가 현장에 도착했다고 작전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종합적으로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소말리아 해적이 한국 언론보도도 세밀하게 모니터하고 있으므로, ‘구출작전 검토’ 같은 보도가 나가면 작전을 아예 못할 수도 있다. 청해부대 현장 이동은 그 이상 확인해 줄 수 없다. 만약 구출작전이 벌어진다면 상황 종료때까지 기사화는 최대한 자제해주길 부탁한다.

기자 : 최근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된 한국선박 피랍 상황은 어떠한가?
당국자 : 2006년 이후 한국선원 탑승 피랍은 이번까지 포함해 8건이다. 이번에 ‘묵과해선 안 된다’는 여론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기자 : 예전 한국선박 납치가 8건인데 그 때도 구출작전 계획을 짰나?
당국자 : 군 당국은 지난 8건의 선박 납치 때에도 선원 구출작전을 구상했고 준비했다. 그때 당시 상황과 여건이 작전을 개시할만한 필요충분 조건이 아니라고 판단해 작전 실시는 하지 않았다.

기자 : 이번에 구출작전 실시에 무게 중심 두나?
당국자 : 아니다. 지난번 8건의 납치 때도 구출 작전을 준비했다. 지난번에는 청해부대에서 5천마일 떨어진 먼 곳에서 피납되거나 해적이 본거지인 육지로 들어가버려 조처를 못했다.

기자 : 삼호주얼리호가 어디로 가고 있나?
당국자 : 아덴만 남쪽으로 가는 것으로 추정한다. 해적이 목적지(육지)에 들어가면 여건상 구출이 대단히 어려워 구출 작전을 벌인다면 해상에 머물 때 해야 유리하다. 삼호주얼리호는 이번 주말이 아닌, 주중에는 해상에 머물 것 같다.

기자 : 피랍된 삼호주얼리호 해법을 두고 ‘구출작전 불사 재발방지 논리’와 ‘몸값 지불하더라도 선원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가 충돌하고 있는데?
당국자 : 인질 구출작전을 편다면 선원 피해가 없는 완전작전을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기상과 조건이 맞아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청해부대가 당장 달려가서 구조하고 싶지만, 희생없이 구조할 수 있는 필요충분 조건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군대가 작전하는 경우에는 어느 정도 희생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를 국민들이 이해해줘야 한다.

국방부 고위당국자는 복잡하게 설명했지만, 인질구출 작전을 펼 준비를 하고 있으며 인질 구출 작전이 끝날 때까지 엠바고를 요청한 것이다.
  
낮 12시30분.

국방부 출입기자단은 국방부의 삼호주얼리호 피랍관련 엠바고(보도 자제) 요청에 대해 첫 회의를 열었다.

나는 기자실 회의 내내 머리가 복잡했다.
무엇보다 국방부는 그동안 한국선박이 8번 납치될 때마다 나름대로 구출계획을 세웠으나 실행하지 않는 인질 구출작전을 왜 이번에 굳이 실행하려고 하는 것일까. 구출 작전 검토의 배경은 인도적 목적 외에도 정치적 이유는 없을까. 이번에 청해부대가 해적을 제압하고 선원 피해없이 끝나는 ‘완전작전’을 펼친다면 어떤 상황이 될까 예상해봤다. △ 지난해 연평도, 천안함으로 실추된 (해)군 명예 고양, △ 이역만리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 청해부대 영웅 만들기, △ 결연히 해적에 맞선 국군최고사령관 MB의 과감한 결단의 부각 등이 예상됐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 낙마 등으로 조기 레임덕 조짐을 보인 MB 정권 입장에선 인질구출 작전이 성공한다면 정국 전환의 호기로 작용할 것이다.

그리고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인질을 데려오는 방법은, 크게 1) 인질 구출작전과 2) 협상을 통한 몸값 지불이 있다. 군사작전은 대한민국은 해적과 타협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충실하고 납치 재발 방지 효과가 크지만 작전 과정에서 인질이나 장병들이 희생될 위험이 상존한다. 몸값 지불은 인질 안전 보장과 석방은 확실하지만 국제사회와 해적에 ‘한국은 봉’이란 인식을 확산시켜 납치의 악순환을 끊기 어렵다.

이처럼 인질 구출 작전과 협상을 통한 몸값 지불 방법은 장단점이 뚜렷히 엇갈리는 방안이다. 이 가운데 하나를 택하는 방법도 논란이 일 수 있다. 사회적 공론 과정을 거쳐 결정해야 할지, 아니면 정부 당국자가 정책적 판단으로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인가. 사람에 따라 판단이 엇갈릴 문제다.

그 자체로 논란이 될 만한 소지가 있는 인질 구출작전에 대해 작전 종료까지 엠바고를 요청하고, 또 기자들이 이를 받아들이는 게 합당한가? 만약 인질 구출 작전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쳐 작전이 실패한다면, 이런 위험한 작전을 비공개적으로 진행한 정부와 군 당국에 대해 국민의 생명을 경시했다는 거센 비판이 일고, 아울러 엠바고 요청을 수용한 기자들에게도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란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무책임하게 군과 한 통속이 됐다는 질책이 쏟아질 것이다.

이런 생각과 걱정이 엠바고 수용 여부를 논의하는 기자실 회의를 하는 동안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기자단 간사를 맡고 있어서 기자단의 총의를 모으는 회의를 주재하는 처지다. 따라서 개인 주장을 강하게 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이번 엠바고 요청은 군사적 측면 뿐만 아니라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하니 다들 여러 측면에서 신중하게 검토했으면 한다”는 원칙적 입장만 밝혔다.

논의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결론적으로 이날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무엇보다 피랍 선원 안전이 걸려 있는 문제인만큼, 신중한 보도의 필요성에는 공감한다”고 뜻을 모았다. 사람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기에 엠바고를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만약 청해부대가 구출작전을 편다면, 1) 국방부가 구출 작전 개시 전 출입기자단에게 사전 언질을 주고, 2) 작전 종료 뒤 최대한 신속한 브리핑을 한다는 2가지 전제 아래 구출 작전 종료까지 관련 보도를 자제하기로 합의했다.

아울러 기자들 내부적으로 엠바고 종료 기준은 삼호주얼리호가 구조돼 선원들의 신병을 청해부대가 확보하는 것이거나 삼호주얼리호가 해적 본거지인 소말리아 항구에 입항해 물리적으로 더이상 구출작전을 펼 수 없는 상황 2가지로 정했다.
 
나는 이런 기자단의 결정을 국방부에 통보했다.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막상 엠바고 수용에 합의했지만, 내심 엠바고가 구출작전 종료 때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한 분위기였다. 국방부 당국자들이 엠바고 유지의 전제인 충실한 사전 브리핑을 해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또 기자들 내부에서도 엠바고에 대한 신문과 방송 매체별로 입장이 다른데다 기자 개인의 성향도 다르다. 따라서 이번 엠바고는 작은 돌발변수만 불거져도 깨지기 쉬운 유리알 같은 존재였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엠바고 수용 하룻만에 ‘난리’가 났다. 

1월18일 밤 8시.

이 시각을 전후해서 국방부와 합참 주요 직위자자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1월18일 오후 2시51분(우리 시각 오후 7시51분) 해적들은 근처를 지나던 몽골 화물선을 추가 납치하기 위해 삼호주얼리호에서 하선하여 소형 보트로 움직였다. 이를 청해부대의 최영함이 확인하고, 링스헬기를 출동시켜 공격했다. 해적들의 관심이 온통 몽골 배와 해적 자선에 쏠린 틈에 최영함의 UDT 특전요원들이 구출작전을 펴기위해 RIB을 타고 삼호 주얼리호에 접근하다 해적들의 사격을 받아 UDT 작전팀 3명(소령 1명, 상사 1명, 하사 1명)이 다쳤다.

기자들에게 엠바고를 요청하면서 충실한 사전 브리핑을 약속했던 국방부는 이 사실을 기자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밤 8시30분부터 몇몇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소말리아에서 뭔가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아채고 여기저기 확인 취재를 하기 시작했다.

국방부는 위기조치반을 소집하고 청해부대로부터 상황 보고를 받고도 기자들에겐 알리지 않았다.

밤 9시45분.

국방부는 “청해부대 우발상황 발생, 내일 설명 예정이니 엠바고를 유지 바란다”는 문자 메시지를 출입기자들에게 보냈다.

밤 10시께 국방부 기자실에 모인 기자들은 국방부의 이런 태도에 짜증과 화를 냈다. 기자들은 그때까지 각자 취재한 내용을 모아보니 이날 인질 구출작전을 펴기위해 삼호주얼리호에 접근하던 청해부대원 몇명이 다쳤다는 사실이 파악됐다. 이때까지도 국방부는 “우발상황이므로 보도를 자제 바란다”는 알맹이없는 이야기만 되풀이했다.

밤 10시30분.

기자들은 즉석 회의를 열어 “사상자가 발생한 상황이라면 엠바고 유지는 어렵다” “국방부 설명 여부와 관계없이 지금까지 취재해 파악된 내용을 토대로 밤 11시 이후 보도를 하겠다”고 입장을 정했다. 나는 국방부에도 이런 결정을 통보했다.

이때부터 기자실은 북새통이 됐다.

방송기자들은 밤 11시 뉴스에 맞춰 생방송으로 보도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방송 중계차량이 생방송 준비를 했고 국방부 브리핑실에서는 조명과 방송카메라를 세팅해 생방송 준비에 들어갔다. 신문 기자들은 1면 머리 스트레이트 기사와 상자 기사로 삼호주얼리호 구조작전 실패의 원인과 문제점, 앞으로 삼호주얼리호 선원이 어떻게 될지 등에 대한 기사를 번개불에 콩 볶는 듯한 속도로 작성하기 시작했다.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국방부 고위 당국자가 밤 10시47분 기자실로 급하게 내려왔다. 이 당국자는 자리에 앉자 마자 “엠바고를 전제로 상황을 설명하겠다”고 운을 뗐다. 여기저기서 기자들의 문제제기가 터져나왔다.

기자 : 인명피해 있다면 엠바고 안 받겠다. 기자들이 왜 엠바고를 유지해야 하느냐?
당국자 : 상황이 진행중이기 때문에 그렇다.

기자 : 인명 피해가 있지만 작전 중이기 때문에 보도를 자제해 달라는 건가?
당국자 : 그렇다.지금 작전이 진행 중이다.청해부대뿐만 아니라 작전 전체가 걸릴 수 있다. 기자단의 인내가 필요하다.

기자 : 대원들이 다치고 초기 작전이 실패해 나중 작전을 펼칠 때까지 시간벌기에 기자들이 동참하라는 것 아닌가?
당국자 : 그런 것 아니다.

기자 : 인질 구출작전이 진행하고 있는 것을 해적들도 이미 알거 아니냐?
당국자 : 현재 뭐라 그럴까. 추가적인 상황이 전개가 될 수 있다. 아직 진행 중이다. 작전이 수시간이 될 수 도 있고, 2~3일이 걸릴 수도 있다. 상황이 엉켜질 수 있기 때문에. 언론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엠바고 유지를 놓고 밤 11시 국방부 기자단 심야 즉석 회의가 열렸다. 일부 기자들로부터 이미 1차 구출작전이 시작됐고 해적도 이 사실을 알고 있고 인명 피해까지 발생한 마당에 엠바고를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는 문제제기가 나왔다. 다른 기자들은 애초 인질 구출 작전 종료까지 엠바고를 수용했는데 아직 작전이 덜 끝난 상황이므로 며칠 뒤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폈다.

논란이 있었지만 기자들은 사람 목숨과 직결된 사안이기 때문에 삼호주얼리호의 선원들을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는 데 보탬이 된다면 엠바고를 유지하는게 맞다고 뜻을 모았다. 지난해 4월 삼호드림호 납치 사건 때 소말리아 해적들이 납치 사실이 국내 언론에 크게 보도되자 해적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협상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인질들에게 살해 위협 등을 했던 ‘전례’도 기자들에겐 부담이 됐다. 어떤 기자는 “한번 바보되나 두번 바보되나 이미 바보가 된 것은 마찬가지다. 이왕 엠바고를 수용해 바보가 되기로 작정했으니 인질 구출작전이 끝날 때까지 지켜보자”는 농담반진담반의 이른바 ‘이왕 버린 몸論’을 펴기도 했다. 인질 구출작전이 실패하든 성공하든 국방부 출입기자들의 엠바고 수용 결정은 언론계에서 논란이 될 것을 지적한 것이다.

1월19일 오전 10시50분.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다시 엠바고 관련 정식회의를 열었다. 기자들은 논란이 많았지만 구출작전 종료시까지 엠바고를 유지하기로 한 어젯밤 결정을 재확인했다.

1월20일 오전 11시.

<부산일보>가 “소말리아 해적과 교전 해군 3명 부상”이란 보도를 했다. 이어 세계일보 인터넷 뉴스(오전 11시28분), 뷰스엔뉴스(오전 11시32분), 미디어오늘(오전 11시48분) 등이 비슷한 내용을 추가보도했다. 네이버·다음 등 주요 포털 사이트와 트위터와 연계돼, 관련 기사가 급속도로 확산됐다. 국방부는 관련 기사가 실린 언론 매체에 연락해 기사 삭제 요청을 하며 다급하게 진화에 나섰다.

낮 12시20분.

국방부는 <부산일보> 등의 보도와 관련해 국방부 출입기자들에게 “부산일보 인터넷 기사는 내릴 예정이고 조만간 인질 구출 작전 실시 예정인데 몇 시간만 기다려주면 시간을 벌 수 있다. 엠바고 유지에 적극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기자들은 약식 회의를 거쳐 “보도가 된 마당이고 인터넷의 속성상 기사를 삭제하더라도 블로그나 개인 홈피, 트위터에 퍼 간 기사들이 무한 복제돼 인터넷 공간을 흘러 다니기 때문에 1차 구출작전 실패가 공지의 사실이 되버렸다. 이런 상황이라면 엠바고 지속이 어렵다”는 입장을 국방부에 일단 통보했다.

오후 1시30분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점심을 먹고 다시 모여 정식으로 회의를 열고 엠바고 유지 여부를 논의했다. 이 회의에서 엠바고 유지 여부를 놓고 기자 개인과 언론사간 입장 차가 있었으나 엠바고를 유지키로 결론을 내렸다. 늦어도 내일(21일) 중엔 2차 인질 구출 작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유지해온 엠바고를 해제해 경쟁적으로 보도를 쏟아낼 경우 해적들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정보를 제공하게 될 우려가 있고, 또한 해적들이 이를 역이용하여 협상력을 높이고자 선원들에게 또 다른 위협을 가하는 등의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예상됐기 때문이다. 일부 매체에서 보도해 엠바고가 사실상 깨졌다고 판단하면서도 엠바고를 다시 받아들인 것은 사람의 생명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또 일부 매체가 보도했고 인터넷에서 관련 기사가 돌아다니지만, 주요 신문사와 방송사들이 소속된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보도를 하지 않으면 의제설정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실제 인터넷 게시판과 블로그, 트위터 등에는 부산일보, 미디어 오늘 등이 1차 구출 작전이 실패했다고 보도했는데 대부분 언론들이 관련 보도를 전혀 하지 않으니 이 기사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여럿 있었다.

오후 2시10분.
기자들은 국방부와 합참에 엠바고 유지 입장을 통보하고 “구출작전 종료 뒤 공식 브리핑은 2시간 이전에 사전 공지해 줄 것”을 요청했다. 방송의 경우 생방송 준비 등에 이 정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1월21일 오전 10시30분.
군 당국은 “한국 시간으로 10시 조금 전에 인질 구출작전을 개시했다”고 알렸다. 이와 함께 사전 협의한 것처럼 공식 브리핑 2시간 전에 브리핑 시간을 공지하고, 브리핑 20분 전에 보도자료 배포하겠다고 밝혔다. 기자들은 엠바고를 풀고 첫 보도를 내는 시점은 공식 브리핑 개시 시간으로 합의했다.
 
오전 11시34분.

일부 매체가 ‘소말리아 해적소탕 작전 재개’란 보도를 내보냈다. 기자들은 어제 출입기자단 소속 매체가 아닌 곳에서 관련 보도를 하더라도 인질들 안위를 고려해 엠바고를 유지하기로 결정한 만큼 더 이상 관련 보도에 괘념치 않기로 했다. 낮 12시께 군당국은 작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있으며 오후 3~4시쯤 공식 브리핑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입장을 비공식적으로 밝혀왔다. 기자들과 국방부는 공식 브리핑 시작 시점에 맞춰 엠바고를 풀고, 삼호주얼리호 구출 작전 첫 보도를 내보내기로 다시 확인했다.

오후 3시.


국방부는 기자들에게 “구출 작전이 끝났으며 오후 4시 전후에 공식 브리핑을 할 예정”이라고 공표했다. 국방부, 합참은 엠바고를 요청하면서 기자들에게 약속한 공식 브리핑 실시 2시간 전 공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기자들은 ‘속보를 내보내고 생방송을 해야 하니 정확한 시간을 확정해 알려달라’고 거듭 요청했지만, 국방부는 “오후 4시 전후”라며 얼버무리며 정확한 시간은 못박지 않으려 했다. 이날 오전까지는 없던 이명박 대통령의 ‘작전 성공’ 을 알리는 대국민 담화 발표가 오후 4시에 갑자기 잡혔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이 대통령의 ‘작전 성공’ 담화 발표 전에 공식 브리핑을 하는 것은 ‘결례’를 넘어 ‘불충’으로 보고, 이 대통령 담화 발표가 끝난 뒤 브리핑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사정을 파악한 기자들은 “우리가 그동안 힘들게 엠바고를 지켜왔는데 갑자기 이 대통령이 1보(첫 보도)를 내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만약 인질 구출작전이 실패했다면 이 대통령이 나섰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기자들은 청와대의 막판 ‘다된 밥에 숟가락 얹기’를 막기 위해 ‘인질 전원 구출’ 첫 보도를 이 대통령 담화 5분 전인 오후 3시55분에 하기로 결정했다. 이 방침을 국방부에 통보하자, 국방부 당국자들의 얼굴은 그야말로 사색이 됐다. 국방부는 기자들에게 1보 시점을 재협의하자는 뜻을 비췄으나 기자들은 이젠 작전이 끝났으므로 1보 시점을 기자들이 알아서 정하는 될 문제라고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청와대는 이 대통령 담화 발표 시간을 오후 3시30분으로 조정했다. 이 소식을 접한 기자들은 1보 보도 시점을 이 대통령 담화 발표 5분 전인 오후 3시25분으로 다시 앞당기기로 결정했다. 이와 함께 기자들은 청와대가 대통령 담화 시간을 또 바꾸더라도 그보다 5분 전에 1보를 내보내기로 했다.

오후 3시10분.

국방부 출입 기자들은 이런 입장을 국방부에 통보했고, 오후 3시20분 합참은 인질 구출작전인 ‘아덴만 여명작전’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5분 뒤인 오후 3시25분 ‘삼호주얼리호 피랍선원 구출’ 첫보도가 일제히 시작됐다. 언론의 첫 보도와 대통령 담화 사이의 ‘5분 시차’엔 이런 해프닝이 있었다. 

국방부가 요청한 엠바고를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나름대로 민주적이고 체계적인 논의과정과 다양한 고민 끝에 수용했다. 엠바고 유지 과정에서도 기자들끼리 갈등도 적잖게 있었지만 기자들간 약속이고 사람의 생명이 달린 문제인 만큼 끝까지 지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국방부 출입기자들의 판단이 정답이라고 볼 수는 없다. 매체나 기자에 따라 생각은 다를 수 있고, 더구나 <부산일보>나 <미디어오늘> 같은 매체는 국방부 출입기자단 소속이 아니므로 국방부 기자단의 결정과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구출 작전 성공 직후 청와대, 총리실, 국방부는 엠바고를 어겼다며 <부산일보>, <미디어오늘>에 대해 강도 높은 보복을 하고 있다. 정부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토론하여 생각이 다른 사람을 설득할 능력이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블랙 코미디다.

권력철 기자(한겨레 국방부 출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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