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이 아니다 국민 모두의 일이다

▲ 17일 아침 MBC 김재철 사장이 출근할 때 삭발을 한 MBC노조 간부들이 김사장의 단협해지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미디어오늘
사람과 짐승의 차이는 어떤 것인가. 일일이 꼽을 수도 없지만 한 가지만 지적하자면 부끄러움을 들 수 있다. 수치를 모르면 짐승이다.

MBC(사장 김재철) 경영진이 기습적으로 단체협약 해지를 선언하고 노조에 통보했다. 노조를 무력화시키고 MBC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정권의 앵무새로 길들이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MBC가 살처분된 꼴이다.

지금까지 보도 교양제작 프로는 보직 국장이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그나마 공정방송의 명맥을 이어 왔다. 그동안 MBC가 PD수첩을 비롯해서 국민의 지지와 찬사를 받는 프로를 방송할 수 있었던 것도 보직 국장의 권한 때문이다. 이걸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정권의 눈에는 가시였다. 촛불시위도 PD수첩 탓이고 4대강 사업이 마음대로 안 되는 것도 PD수첩 탓이었다. 안 되는 것은 모두 MBC 탓이다. MBC만 없으면 만사형통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MBC의 문을 닫을 수는 없었다.

시원찮은 김우룡을 잘랐다. 조인트 사장이 왔다. 김재철이다. 기자 출신이다. 무서운 것이 없는 용사다. 무서운 사람은 오직 하나뿐인 해바라기라고 한다.

이번 MBC의 단체협약 해지는 완전히 공정방송의 숨통을 끊는 방송학살이다. 아예 공정방송의 싹을 잘라버리자는 것이다. ‘삭발을 하려면 해라. 삭발 한 두 번 본 것이 아니다. 기껏 소리 좀 지르다가 지쳐서 쓰러진다는 거 다 안다. 삭발을 하든 혈서를 쓰든 단지를 하든, 편한 대로 해 봐라.’

차기 사장 연임을 위한 과잉충성이라는 것이다. 능히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미 피 묻은 손이다. 후배이자 부하직원들의 선혈이 이미 MBC를 물들였다.

MBC의 대표적인 프로들 중에 살해된 프로가 많다. 사람도 프로도 시퍼런 칼날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그걸 봐야 하는 MBC 식구들의 억장이 무너지는 분노를 이번 삭발에서도 느낄 수 있다.

MBC에는 우리나라 언론사에 찬연히 빛나는 민주언론 사수의 전통이 있다.

지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골병든 언론인들의 분노를 알고 있다. MBC의 고참들 대부분이 그때의 투사였다. 모두가 함께 투쟁했다. 설사 투쟁의 현장에 함께 있지 않아도 그들은 하나였다. 그 단결이 MBC의 모습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 ‘싸우다 목이 잘리면 누가 대신 살아 주느냐. 우리 가족들 먹여 살릴 것이냐. 밥줄 끊어지면 당하는 놈만 손해 아니냐. 자존심 없는 셈 치고 죽어지내면 된다. 윗놈에게 잘 보이면 좋은 보직에 출세하고 잘 사는데 민주언론이 무슨 개 소리냐.’

그렇다. 대신 살아 줄 수도 없다. 처자식 먹여 살려 줄 수도 없다. 직장 잃고 백수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줄 누구나 잘 알 것이다.

잘 알면서도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제할 수가 없고 이렇게 사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고개를 쳐든다. 이건 정말 사람이 사는 게 아니다. 언론인이라는 자부심, 기자라는 긍지, PD로서의 사명감, 사회의 비리를 들춰내고 응징한다는 처음의 기개는 어디로 갔는가. 견디기 힘들 것이다.

어디를 가도 고개를 못 든다. 자신이 취재한 기사를 창피해서 볼 수가 없다. 명함 내놓기도 부끄럽다. 처자식 보기도 민망하다. 친구들은 대 놓고 욕을 한다. 조중동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조중동이다. 이건 정말 사람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몹시 부끄럽다. 삭발을 한 동료가 부럽기도 하고 밉기도 하다. 무슨 좋은 방법은 없을까.

민주정부 시절 마음 놓고 비판을 해도 부당한 압력을 받지 않았다. 밖에 나가면 어깨 펴고 살았다. 윗놈 눈치 보지 않고 기사 쓰고 프로그램 제작했다. 얼마나 신바람 나는 세월이었나.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어깨가 처진다.

이제 남는 것은 영혼이 없는 MBC 

▲ 지난 16일 저녁 김재철 MBC 사장의 일방적 단체협약 해지에 맞서 삭발 투쟁을 결의한 이근행 언론노조 MBC본부장 ⓒ언론노조 MBC본부
MBC의 공영성 후퇴는 이미 한계점에 이르렀다. 마침내 최소한으로 보장된 장치마저 잘라내기 위해 단체협약 해지를 통고했다.

“언론사에서 단체협약을 이렇게 충분한 협상 없이 일방적으로 해지한 것은 초유의 일이다”
“이는 낙하산으로 들어온 김재철 사장이 정권의 눈에 들기 위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현재의 MBC에서 상식을 갖고 살려면 1년에 두 번씩이나 삭발을 해야 하는구나, 라는 개인적인 회한이 밀려온다.”

“뭔가 엄청난 걸 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저 경영자는 경영하고 언론인은 언론정신을 갖고 기사 프로그램 만들자는 것인데 이렇게 두 차례나 삭발을 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 ‘머리털’에조차 미안할 뿐이다.”

MBC 홍보국장 연보흠의 말이다. 차라리 통곡으로 들린다.

한국의 언론현실을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MBC PD수첩이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 여의도 MBC 청사 앞은 PD수첩을 지원하고 언론탄압을 규탄하는 촛불로 메워졌다. 바로 그것이 국민의 한결같은 마음이었다.

공정방송을 무력화시키는 김재철의 기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MBC의 구성원이 이를 용인하지 않는다. 국민들도 용인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이를 저지해야 하고 저지할 것이다.

한 인간이 저지르는 잘못이 세상을 얼마나 더럽게 만드는지 우리는 수시로 보고 있다. 비교하는 것조차도 미안한 정연주와 김재철 김인규다. KBS에 정연주가 사장일 때 KBS는 황금 시절이었다. KBS와 MBC가 버티고 있던 한국의 언론은 비록 조중동이 활개를 쳤어도 살아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말도 하기 부끄럽다. 급기야 MBC는 백주에 능욕을 당했다.

KBS는 이미 이름뿐인 국민의 방송으로 사망신고를 했고 MBC가 뒤를 잇는다. 살아날 길은 없는가. 국민의 힘만이 살릴 수 있다. 깨어 있는 국민의 분노가 언론의 자유를 지킨다. KBS와 MBC가 부활한다.

숨이 막히면 사람은 견딜 수 없다. 몸부림치게 마련이다. 언론자유는 인간에게 숨 쉬는 것과 같다. 지금 우리가 그렇다.

역사의 흐름은 무엇으로도 막지 못한다. 아마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착각 속에서 헤매는지도 모를 것이다. 권력을 등에 업고 휘두르는 칼춤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오는지도 모를 것이다. 권력은 영원하리라고 믿고 있는가. 그럴 것이다. 그러기에 어리석은 머리가 겁 없이 만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언론은 살아 있는 시민의식과 함께 민주주의 마지막 보루다. 지켜 내야 한다. 비록 현장에 달려가지 못해도 우리 국민들은 모두 MBC의 눈물겨운 투쟁을 지원할 것이다.

혼자서는 힘들다. 외로워서 힘들다. 힘을 모아야 한다. 폭발 직전인 KBS 노조와 이미 터진 MBC 노조 전국언론노조 그리고 MBC와 공정한 언론을 갈망하는 모든 국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 싸워야 한다.

‘노란신문’ 문화일보가 남의 알몸을 합성해 전통을 과시했다가 고소를 당하고 결국 8천만 원을 물어냈다. 참으로 얼굴 못 들 망나니짓이다. 이게 한국 언론의 현주소라면 아닌 언론은 열 받겠지. 억울해할 것 없다. 모진 놈 곁에 있다가 벼락 맞는 꼴이다. 그러니 제정신 가지고 신문 만들어야 한다.

용서해서는 안 될 언론이 저지른 죄

▲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200여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이 18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조선·중앙·동아 종합편성채널 선정’ 원천무효를 주장하며, 방통위의 추가 특혜 지원 움직임을 비판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전영일 민언련 부이사장, 지영선 환경연합 공동대표, 임재경 전 한겨레신문사 부사장, 성유보 전 방송위 상임위원, 박우정 민언련 이사장, 이수호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민주언론시민연합
참여연대 등 200여 개 시민단체가 조선·중앙·동아일보에 대한 종합편성채널 선정을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또 종편에 대한 추가특혜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으며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종편 무효 투쟁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기자회견을 한 인사들 중에는 언론사에서 기자를 거처 간부로 근무한 사람들이 많고 대학에서 강의를 한 사람도 있다. 참담할 것이다. 지금의 기자들 대부분이 그들의 제자다. 기개가 넘치던 제자들의 현재의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냥 시대 탓이라고 할 것인가. 많은 반성을 해야 하고 투쟁을 해야 할 것이다.

‘폭발 직전’이라고 한다. 아니 어디서 무슨 일이 또 일어나는가 국민들은 걱정을 할 것이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다. 좋은 폭발도 있다. 내가 살기 위한 자구책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라면 응원해야 한다.

KBS 김인규가 사장이 된 후 징계에 회부된 사원이 74명이라고 했다. 그래서 KBS가 폭발 직전이라는 것이다.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벌 받는 거 아니냐고 하는가. 국민은 다 안다. 김인규가 국민에게 설명 좀 해 줄 수는 없을까. 누가 벌을 받아야 하는가는 국민이 알고 사원들이 안다.

YTN은 박원순 변호사와 인터뷰를 하고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방영을 보류했다. 박창정이 국민한테 설명 좀 해 주면 안 될까. 어째 사장이라는 인간들이 바뀌면 언론이 이 모양이 되는 것일까.

오늘의 오물통 같은 한국의 언론을 보며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정연주다. 더 설명할 필요가 없는 인물이다. 김인규 김재철 등과는 이름도 함께 쓰기가 미안하다. 정연주가 말했다.

‘정치가 역사를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근본적으로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역사의 큰 흐름을 바꾸는 것은 문화운동인 것 같다. 특히 한국에서 제일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어 없이 권력을 가장 많이 행사하는 집단이 언론이다. 언론의 풍토를 바꾸고 개혁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절실한 문제다. 언론개혁을 위한 문화운동. 시민운동이 필요하다.’

한 때 인기 있었던 중국 TV드라마 ‘포청천’이 있다. ‘작두처형’이라는 것이 있다. 한국의 언론이 작두에 목을 늘이고 있는 꼴이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가. 공정한 보도와 민주언론 추구다. 이게 죄인가.

입을 닥치라고 침묵하라고 강요한다. 말 안 들으면 목이 떨어진다. 그러나 작두는 목의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자신의 목을 한 번씩 만져 보라. 소름 끼치지 않는가.

2011년 01월 19일
이기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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