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인권운동의 맏형’ 이돈명 변호사가 세상을 떠났다. 조선대학교 첫 민주총장이자 대한민국 민주화의 역사를 바꾼 굵직한 사건의 변론을 맡는 등 일생을 민주, 평화, 인권을 위해 살아온 어른이 또 한분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광주와의 인연 또한 깊었던 고인이기에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는 서울까지 찾지 못한 조문객들을 위한 분향소가 마련되었다. 지난 14일, 조선대 병원 장례식장과 서울 삼성의료원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를 찾았다.

▲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 서울병원에 마련된 이돈명 변호사의 빈소. ⓒ광주인

조선대병원 장례식장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12일 분향소가 마련된 뒤 매일 평균 50여명이 넘는 조문객들이 찾았다고 한다. 그곳에는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전호종 조선대학교 총장 등 광주 지역 인사들의 흔적이 남겨져있었다.

이날 하루 일과를 마치고는 조선대학교 민주동우회, 총동아리연합회 등과 함께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시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저녁 7시가 넘어 버스를 타기 위해 조선대학교에 들어서는데 커다란 전광판에 '이돈명 총장'을 추모하는 영상이 나를 맞이하였다.

일행이 서울에 도착한 시각은 밤 11시. 늦은 시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조문객들이 고인의 빈소를 찾고 있었다. 고인의 일생을 반영하듯 벽면에는 화환들과 리본들이 가득 했다. 대한민국 민주진보세력의 총집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고인 앞에 인사를 드리고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돈명이 할아버지>를 펴낸 도서출판 공동선의 문국주씨과 김정남 전 청와대 교육문화사회 수석을 만났다.

▲ 김웅기 조선대학교 민주동우회 회원이 14일 고 이돈명 변호사 서울 빈소에서 분향하고 있다. ⓒ광주인

이날 "고인을 추억하는 ‘우리의 영원한 돈명이 할아버지, 이돈명과 만나다’라는 행사가 열렸다. 오늘 행사 참석자들은 유신독재에 맞서 인권변호사로 살아온 고인의 삶을 함께 되새기는 시간이었다"고 김정남 전 청와대 교육문화사회 수석은 말했다.

고인의 큰 딸 이영심 씨는 “어릴 적 남동생이 굉장히 개구쟁이였는데 아버지는 나와 동생을 앉혀놓고 재판을 하셨다”고 회고했다고 알려졌다.

또한 이들은 지난 1987년 5월 민주화운동으로 수배 중이던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사무처장인 이부영 전 한나라당 의원을 숨겨준 혐의로 구속 기소됐던 사건에 대해 회고했다고 전해졌다.

민주화 역사의 산 증인인 인권변호사이자 어려운 시기 대학을 이끌어 갔던 한 스승을 보내는 이들은 짧은 시간이나마 고인을 회고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 ⓒ광주인

빈소에서 고인을 기리는 추모 책자를 받아보았다. 책자는 문병란 시인의 추모시를 비롯하여 김 전 수석의 추도사, 생전 고인의 인터뷰 등으로 채워져 있었다. 고인을 향한 살아남은 자들의 존경심과 애틋함, 아쉬움까지 얇은 책자 안에 가득 묻어 있었다.

“우직한 촌놈, 승률 0%의 인권변호사, ‘유죄’ 변호사, 그리고 돈명이 할아버지........”
“낮은 자에게는 채찍 없는 아버지였고, 법이 따뜻한 한 그릇의 밥일 수 있다는 걸 깨우쳐주신 스승, 얼어붙은 대지에 식지 않는 지혜를 남겨주신, 이돈명 토마스 모어 앞에 삼가 꽃 한송이를 바칩니다.” - 이돈명 변호사 추모책자 <시대의 느티나무 고 이돈명 변화를 기억하며> 중

짧은 시간의 조문을 마치고 다시 광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다"고 어떤 이가 말했다. 고인을 보내는 마지막 길에 인사 올리고자 했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을 지 몰라도 이날 빈소를 찾은 모든 이들은 남은 시간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책임' 하나씩 마음 속에 안고 갔으리라 생각한다.

고인의 장례는 지난 15일 오전 10시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진 후 경기 남양주시 세종로성당 묘역에서 영원한 잠에 들었다.

▲김정남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고인에 대한 추억담을 말하고 있는 모습. ⓒ광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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