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에 그리는 꿈

숙지원을 방문한 사람들은 대부분 잔디밭이 시원스럽다고 한다.
더러 잔디밭 관리가 쉽지 않다는 점을 아는 사람들은 여름철 잔디밭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도 해준다.

물론 잔디 깎는 기계를 밀고 다니는 일만도 족히 4시간 넘게 걸리는데 여름철 잔디밭은 관리가 쉽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관리의 어려움에 비해 보고 느끼는 즐거움이 더 크다는 점만 이야기 한다.

▲ ⓒ홍광석
▲ ⓒ홍광석

잔디밭은 감성적 공간이다.
일상의 잡다한 상념을 지우는 공간이며 탁자에 앉아 눈에 닿는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공간이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주변의 풍경을 만나고, 송화가루가 안개처럼 부드럽게 날리는 앞산의 광경에 혹하는 공간이다. 시원한 바람에 섞여오는 꽃향기와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래에 취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가끔 지나가는 기차 소리에 아련했던 여행의 기억을 더듬고 그곳에서 만났던 그러나 얼굴 잊은 사람들의 안부를 챙기는 공간이다. 지나간 계절에 찾아왔던 사람들의 모습과 이야기를 회상하는 공간이다. 잔디밭을 달리던 아이들을 떠올리며 혼자 웃음 짓는 공간이다.

▲ ⓒ홍광석

내가 반할 수밖에 없는 풍경, 겨울 눈 덮인 잔디밭은 그대로 하얀 여백이다. 마음 내키는 대로 어디에 무슨 꽃과 나무를 심고, 어디에는 잘 생긴 물확 하나에 수련을 담아두고 싶다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여백이다.


사람들은 여름날 무성했던 잎들이 생각하며 잎이 진 나뭇가지를 보며 쓸쓸하다고 말한다. 꽃이 가득했던 겨울 꽃밭은 황량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꽃밭에 숨겨진 씨앗들, 그리고 새움이 자리 잡은 나무들의 꿈을 읽으며 여백이 주는 아름다움을 생각한다.

▲ ⓒ홍광석
▲ ⓒ홍광석

아무리 겨울이 매서워도 오는 봄은 막을 수 없는 법.
단단한 나무 가지에 부드러운 꽃망울이 터지고, 새순이 자란 나무는 풍만한 곡선의 그늘을 만들 것이다.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꽃밭에도 꽃은 아름답게 피어날 것이다.


매화 그리고 자두꽃에 벌은 윙윙거릴 것이다. 눈 덮인 잔디밭은 그냥 여백이 아니다.
마음의 짐을 부려놓을 수 있고 피곤하지 않는 만남이 가득한 공간이다.


아직 보이지 않는 꿈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다.
2011.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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