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출신 김병학 시인, 카자흐스탄 현대 9인시선집 <초원의 페이지를 넘기며> 펴내

카자흐스탄에 20년 째 거주하는 전남 신안 출신 김병학시인이 카자흐스탄 현대 9인시선집 <초원의 페이지를 넘기며>(인터북스, 2010)를 펴냈다.

다민족국가 카자흐스탄의 위상에 걸맞게 이 책에 실린 아홉 명의 시인들은 카자흐인, 러시아인, 독일인, 고려인, 러시아 카자크인 등 다양한 민족적 색체를 내보이고 있다. 러시아 카자크인은 별도의 민족은 아니지만 11-13세기에 황제의 압제를 피해 러시아변방으로 이주한 농노의 자손으로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언어와 전통을 발전시켜 오고 있다.

이번 시집에는 지금까지 한국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독특한 대초원의 시들이 펼쳐져 있다. 소련시절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고 양심을 지키다 탄압을 받았던 카자흐인의 지성 올자스 술레이메노브의 시편을 비롯하여 전 러시아를 통틀어 러시아적 사상과 서정이 이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은 예브게니 꾸르다꼬브의 시편 등 주옥같은 초원의 시들이 고루 소개되어 있다.

특히 카자흐인의 양심으로 불리는 올자스 술레이메노브의 시 ‘카자흐스탄’, ‘용맹한 여자 무사’, 푸쉬킨과 예세닌 이후 최고의 러시아어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예브게니 꾸르다꼬브의 시 ‘시인 박물관’, ‘악타이온의 개들’, ‘물결과 바람이 끝없는 강가’, 강인한 러시아 카자크인의 후예 나제즈다 체르노바의 시 ‘이주자들’, ‘꼬르꾸뜨’, 발레리 미하일로브의 시 ‘자유로운 나리새밖에 없는’, 바흐트잔 까나삐야노브의 시 ‘말을 타고 산골시내를 따라’ 같은 시편들은 절창이다.

그 외에도 구소련 고려인처럼 강제이주를 당하고 고난의 삶을 살아온 카자흐스탄 독일인을 대표하는 알렉산드르 슈미트의 시, 우리에게 이름도 생소한 카이라트 박베르게노브, 바흐트 까이르베꼬브 같은 카자흐인 중견시인들의 사색의 시편들이 유라시아 특유의 냄새와 맛을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또 작년 3월에 김 시인에 의해 번역되어 나온 바 있는 고려인 시인 이 스따니슬라브의 시편 10여 편도 재수록 되어 있다.

이번 시집에는 풍부한 주석과 부연설명이 곁들여져 있어 독자들에게 전혀 낯설고도 새로운 지식과 다른 세계의 체험을 선사하고 있다. 거기에는 고대 그리스의 전인적인 인간 올페이우스에 비견될만한 중앙아시아의 신화적이고 전인적인 인간 꼬르꾸뜨 설화, 키르기즈스탄의 전설적인 용사 마나스 신화 등과 같은 중앙아시아 고유한 신화나 전설, 러시아의 메시아사상을 신비롭게 보여주는 끼떼즈 같은 신화적 도시, 러시아문학의 기념비적 출발이 된 야로슬로브나의 애가 등에 대한 역자의 풍부한 주해가 단연 돋보인다.

또 눈길을 끄는 것은 중앙아시아에서 거의 20년을 몸담고 있는 김병학 시인이 그동안 겪어온 체험과 사색을 바탕으로 구소련 해체 이후 중앙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학의 새 판짜기와 언어 및 민족문제 등 여러 갈래로 얽힌 거시적 문제들을 여기에 번역, 소개한 시편들을 분석하면서 탁월한 관점으로 해설해냈다는 점이다.

▲ 김병학 시인.

김 시인은 기억과 양심이라는 독특한 키워드를 도입하여 소비에트 패러다임의 붕괴 이후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 나선 시인들의 꿈과 희망을 집에 비유하여 사회적문화적, 문학적, 영적 관점에서 유감없이 파헤쳐 설명해주고 있다.

김 시인은 2010년 봄에 카자흐스탄 고려인 시인 이 스따니슬라브의 시집 <모쁘르마을에 대한 추억>과 카자흐스탄 고전국민시인 아바이 시선집 <황금천막에서 부르는 노래>를 번역한데 이어 지난해 12월에 9인 시집 <초원의 페이지를 넘기며>를 펴냄으로써 카자흐스탄 시문학 소개를 완료했다. 유라시아 초원의 시들이 김병학 시인의 손을 거쳐 한국에 모두 알려진 셈이다.

김병학 시인은 신안 임자도 출신으로 지난 1992년에 카자흐스탄으로 건너가 고려인 최초 강제이주지 우스또베에서 민간 광주한글학교 교사, 수도 알마틔에서 알마틔고려천산한글학교장, 알마틔대학 한국어과 강사, 재소고려인 신문 고려일보 기자를 역임하고 현재는 카자흐스탄 한국문화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김 시인은 2005년에 시집 <천산에 올라>를 펴내면서 시인으로 등단했고 2007년에 재소고려인 구전가요를 집대성한 <재소고려인의 노래를 찾아서 1,2>를 펴내 국내외의 주목을 받은 바 있더. 또 지난 2009년에는 그동안의 체험을 바탕으로 에세이집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 사이에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카자흐스탄
- 올자스 술레이메노브

나라야,
너는 카자흐스탄을 가지고 실험했구나.
오늘, 십자가로 자랄 수 없는
땅이 있어라.
타라스를 실험했구나.
표도르도 실험했구나.
페트로그라드여, 용서하라.
레닌그라드여, 내 땅을 용서하라.
카자흐스탄은 전깃줄이요,
가시줄,
이것은
사라토프와 키예프, 그리고 다시
사란스크였다.
이것은
마르크스의 인용들,
유목, 극장 그리고 제일 좋은
갱도들,
말과 용광로들,
투릌시브와 그냥 시브. 그리고 더위.
나는 산에 나타날 수도 있다
그리고 카자흐인으로 안 불릴 수도
또 골짜기에서 젖소들을 방목하면서,
하얀 집에서 살 수도 있다.
어차피
나를 열차에 태워
제즈카즈간으로 데려왔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여, 용서하라,
아, 인구쉬여, 내 땅을 용서하라!
카자흐스탄아, 너는 거대하다
다섯 개의 프랑스다
루브르와 몽마르트들 없이
네 안에 죄 많은 수도의
모든 바스티유 감옥이 들어있다.
너는 커다란 배를 타고
자그마한 지도에서 헤엄쳤구나.
우리 카자흐인들은 이 배에서
태어났다.
우리는 시험을 치렀다
밤의 골목에서
모닥불 연기와 말발굽으로,
칼을 목에 댄 시험을
언제나 치러냈다
매수된 사람들에 의해
검은 흙은
라듐의 기쁨과
지구인력을
체험했다.
온 땅은 전깃줄과 우주비행장,
헥터와 정거장들이 되어있구나,
만일 비가 오면 그것은 소나기,
그리고 바람은
시험을 치른 사람들의
열풍이다,
나라여, 카자흐스탄인들이라 부르라.
가장 큰 실험을 당한 너의 사람들,
그 충실한 아들들을.
우리는 너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너를 삼키지 않고 귀중히 여긴다,
진실로
이를 악물지 않고
참지 않고
정말로 소리치기 위하여,
초원의 너비로,
알라따우 산맥의 높이로,
바다들의 깊이로!…
묘지들의 깊이로
침묵하지 않으려고.
그리고 웃는다,
땅도 풀도 부드럽다,
자유로운 키예프는 정거장에 있고,
아, 칼루그의 발라라이카들,
아, 모래, 모래진흙이
바위를 흔든다,
모래진흙도,
보습 날 아래 가보고 싶어 하구나…
거친 벌판은 밭이어라!
때가 왔다.
만일 세상이 그리워하지 않는다면
너 카자흐스탄아 슬퍼하지 마라.
세상은 너로부터 시험받았다.
카자흐스탄아 용서할 수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고
만세
실험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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