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은사, 겨레의 품에 잠들다”
“사상의 은사, 겨레의 품에 잠들다”
  • 조현옥 기자
  • 승인 2010.12.08 2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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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4시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고 리영희 선생의 영결식이 열렸다.

5.18 묘지 '민주의 문' 입구에는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님 영면 하소서’, ‘우리 시대의 큰 스승 리영희 선생님 영면하소서’, ‘우리시대의 참 언론인 리영희 선생님 영면 하소서’, ‘우리시대의 참 스승 리영희 선생님 영면 하소서’, ‘우리시대의 양심 리영희 선생님 영면 하소서’, ‘리영희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 영면 하소서’ 단체별 펼침막이 리 선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매서운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2시가 넘으면서 국립5.18민주묘지에는 ‘민주사회장’으로 엄수 되는 리 선생을 추모하는 조문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3시 50분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 까지 흔들리지 말자’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나오는 것을 시작으로 영결식은 엄수 되었다.

진눈깨비를 동반한 쌀쌀한 날씨를 보고, “비가 오는 것을 보니 하늘도 슬픔을 감추지 못하는 것 같다”고 조문객들이 말했다.

리 선생과 가까이 지냈다는 송기숙 작가는 “근래에는 리 선생께서 나이가 많으셔서 서울에 가면 만나곤 했는데···”라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최만원 조선대 비정규교수는 “고생하시다가 가셨는데 편하게 가시라고 웃고 있다”며 “(리 선생께서)혁명 성지인 중국 연안을 가시고 싶어 하셨는데 돈을 못 버는 강사가 되어서 연안을 모시고 갈 수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또 최 교수는 “혼자서라도 가서 리 선생 영전에 사진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현지 원효사 주지는 “(리 선생의)극락왕생을 발원한다”며 “나는 리 선생 영전에 아무런 말할 자격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양철호 광주시민단체협의회 고문은 “(리 선생께서)너무 고생 하셔서 앞으로 (리 선생같은)분들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사실을 이야기 했다는 이유로 고문까지 당했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고 밝혔다.

또 “70년대 대학시절, 시대와 정치에 대해 느끼고 있었지만 표현을 하지 못했다”며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사상의 등불이라고 느꼈다”고 이찬 유네스코 광주전남협회 부회장은 말했다.

자신을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이라고 밝힌 한 청년은 리 선생을 ‘한겨레를 창간하고 국내, 국제, 한반도 정세를 밝혀준 민주화, 지식인을 대표하는 언론인’이라고 표현했다.

조진태 시인은 “리 선생께서는 베트남전의 역사,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해주셨다”며 ‘충격 그 자체’ 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림추섭 광주교육희망네트워크 상임대표는 “(리 선생은)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이다”며 “우리 역사에 리 선생 같은 분이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리 선생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황정아 여성단체연합회 대표는 “생전에 리 선생을 뵌 적은 없지만, 우리시대의 지평을 넓혀 주셨다”며 “올 한 해 어른들이 너무 많이 가셔서 빈자리가 너무 크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날 조시를 낭송한 김준태 시인은 “연평도 사태를 보고 있으면 답답하다”며 “세계를 향해 외치자, NO War! Only Peace, Forever Korea!”라고 말했다.

정연주 전 KBS사장은 리 선생과 고 송건호 한겨레 초대사장의 묘역에 참배하며 “두 분이 같이 마실 다니시면 되겠다”라고 말했다.

또 정 전 사장은 “사상의 스승, 겨레에게 많은 깨우침을 주신 리 선생께서 광주에 와서 편히 쉬셔서 위로가 된다”며 “이제 고통 없는 세상 가셨으니 편하실 것 같다”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리 선생이) 광주에 묻히고 싶은 것이 선생님다운 결정”이라며 “민주화의 성지 광주에서 많은 분들과 함께 엄수된 영결식에 리 선생도 흡족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70년대 송 초대사장의 비서였다는 김은희 한겨레 통일문화재단기획의원는 송 초대사장의 묘역에 참배하며 “두 분이 늘 함께 다니셨는데 뜻을 세우면 대쪽 같은 분들이셨다”고 회고 했다.

이어 김 기획의원은 “(송 초대사장은) 고문 후유증으로 글을 못 쓰셨는데 대필을 해주며 용돈으로 2~3만원을 받았다. 한겨레 신문이 인쇄되는 것을 보고 함께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셨다”라고 담담하게 회고 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리 선생께서)생전에 광주에 오시겠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는데, 이제 이곳에서 제2, 제3의 민주주의 불길을 지폈으면 좋겠다”고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대한민국의 양심을 깨우친 참스승 리영희 선생님 민주와 민족이여 영원히 기억하라’
‘꽃보다 아름다운 양심과 지성 리영희 맹목과 광기의 대한민국, 다시 어둠을 밝히리라’
한양대 신방과 학생들은 리 선생의 민주사회장이 엄수되는 내내 펼침막을 들고 서있었다. 내리는 진눈깨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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